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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따마하위

곽미란

1

   계단을 두 층도 올라가지 못한 채 경희는 주저앉다시피 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근만근이었고 무릎에 힘이 빠졌다. 점심을 먹고 회사에 들어올 때면 1층부터 계단을 걸어 올라서 50층까지 갔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10층에 있는 회사로 들어가는 건, 출장이나 외근을 가지 않는 날이면 경희가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오던 운동이었다. 그것은 경희의 루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경희는 계단 손잡이에 몸을 지탱하고 서서 한참 숨을 고른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어깨가 축 처진 채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경희의 얼굴은 정교하게 화장을 했음에도 나이에 비해 십 년은 늙어 보였다.

2

   딸 가은이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고향으로 훌쩍 떠나버린 지 사흘째, 경희는 무슨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모른다. 남들은 딸이 어느 대학 붙었소, 아들이 어느 중점대학 갔소 하고 잔치판을 벌이는데 경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딸아이가 어릴 적부터 좀 유별나긴 했지만 그래도 별탈 없이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면 순리대로 수능을 봐서 대학에 진학할 줄 알았다. 상하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 남자와 결혼해 상하이에 보금자리를 트는 것, 이것은 경희가 딸을 위해 설계한 ‘멋진 인생’이다. 경희는 머나먼 흑룡강에서 태어나 상하이로 왔지만 상하이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상하이 호구를 부여받았으니 서류상으로는 명백히 상하이 사람이었다. 왜 훤히 펼쳐진 꽃길을 마다하고 고집 피우며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경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대학입시 기회를 딸아이는 스스로 포기했다. 어쩌자고, 대체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를 경희는 처음 경험했다. 마흔일곱 인생을 통틀어 이처럼 막막한 적은 없었다. 더욱 경희를 화나게 만든 건 딸아이가 계획적으로 경희를 속였다는 점이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사흘 동안, 딸아이는 천연덕스럽게도 매일 고분고분 수험장에 다녀왔다.
   “어때? 시험 잘 봤어?”
   가슴을 졸이며 경희가 물어보면 가은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어느 문제가 어려웠고 어느 문제는 확실하게 답을 맞췄으며 어느 문제는 알쏭달쏭하더라고 자세하게 말해 주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경희는 두루뭉실하게 대답하는 딸아이의 태도에 살짝 실망했다.
   수능시험 성적이 나오기를 고대하던 경희는 2주 뒤 성적이 발표되는 날에야 가은이가 백지를 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아무 대학에도 원서를 넣을 수 없게 되었다. 경희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러 놓고 정작 본인은 함구하는 가은이 때문에 경희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왜 그랬어?”
   경희는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딸아이를 우격다짐으로 의자에 눌러 앉혔다.
   “왜 그랬어? 말해 봐."
   가은이의 어깨를 흔들며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다그쳤지만 가은이는 고개를 들어 경희를 일별하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왜 그랬냐니까? 너 엄마가 미치는 꼴 보고 싶냐?”
   경희는 거의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질렀다.
   “너 이제 인생 끝났어, 알아? 이 바보 같은 기집애야! 엄마가 어떻게 만든 상하이 호군데, 넌 스스로 복을 차 던졌어.”
   가은이는 동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제풀에 꺼억꺼억 울음이 터진 건 경희 쪽이었다. 딸아이 앞에서 종래로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강한 경희가 오열하는 모습을 경희의 남편은 곁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웅 하고 울리는 오래된 냉장고의 소음이 경희의 울음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받쳐주었다.
   이십 대 초반, 처음 이 도시로 나올 때 경희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은 경희의 오랜 로망이 현실화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경희가 시간의 개념을 알기도 전에 집의 안방 마루 한쪽 벽에 세워진 커다란 벽시계도 메이드 인 상하이였고 경희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보물 1호도 메이드 인 상하이 손목시계였으며 경희의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29인치 영구표 자전거도 상하이에서 만든 거였다. 경희는 초등학교 때 그 자전거로 자전거타기를 배웠다. 상하이에서 만든 상품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다. 경희는 집에 있는 동안 그 물건들이 고장 나는 경우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한번 사면 평생 쓸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이제 경희는 그런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연해 도시 상하이, 중국에서 제일 크고 번화한 그 도시에서 살게 된다는 생각에 마치 자기가 상하이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 속에 사로잡혔다.
   아직도 경희는 상하이 기차역에 내렸을 때의 그 벅찬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불야성을 이룬 도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빌딩들, 이곳에서라면 어떤 꿈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가대로가 놓여지기 전이었고 푸둥공항이 없었던 그 시절, 푸둥은 거의 벌판이나 다름없었다. 푸둥공항이 지어지고 푸둥이 마천루 숲을 이루는 신(新)금융중심지구로 발전하는 동안 경희는 이십 대에서 사십 대 후반이 되었고 상하이 말이라곤 눙호우(侬好)밖에 모르던 처녀에서 이젠 웬만한 상하이 말은 다 하는 신상하이인(新上海人)으로 거듭났다. 경희의 청춘은 상하이의 격변기와 함께 했다.
   경희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이 도시의 교육과 의료 기술과 서비스와 문명은 단연 국내 1위였다. 상하이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처럼 경희의 눈에도 상하이 사람들 빼고 중국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다 촌뜨기처럼 보였다. 경희는 상하이를 떠나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도시의 희뿌연 하늘과 눅눅한 공기마저도 사랑했다. 경희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보다 상하이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매번 출장이나 여행을 마치고 푸둥공항에 도착하면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경희를 포근하게 감쌌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경희에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둥공항이 생긴 이래로 경희는 이 길을 수없이 오갔다. 그때마다 늘 설렜고 행복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왼쪽에는 커다란 ‘중국몽’ 광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경희에게 ‘중국몽’은 곧 ‘상하이몽’이었다. 경희는 ‘상하이몽’을 이미 이루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3

   코로나 때문에 딸아이가 대학 수능시험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상하이 정부에서 수능시험 날짜를 한 달 뒤로 미뤘을 때 경희는 역시 실용성을 추구하는 상하이인들다운 처사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호구(户口)가 상하이였기에 타지 수험생들에 비해 상하이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았다. 경희는 가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부터 이미 마음속에 몇 개의 대학을 점 찍어뒀다. 그 목표는 가은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재점검의 과정을 겪었지만 그래도 ‘인 상하이(in Shanghai)’ 대학 입학의 목표는 명확했다. 경희는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그건 경희에게 평생의 한이었다. 수능을 치렀더라면 경희는 어느 대학에든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희는 그때 대학 시험을 포기하고 일어전문학교를 선택했다. 그랬기에 경희는 하나뿐인 딸아이에겐 어떻게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경희는 딸아이가 말을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영어와 중국어를 병행해서 가르쳤고 네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으며 그 외에도 발레, 민족무용, 그림, 수영을 가르쳤고 초등학교 3학년부턴 올림픽수학 학원에 보냈다. 딸아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경희도 같이 수업을 들었다. 이런 경희를 두고 친구들은 유난을 떤다고 했지만 경희는 자신이 그냥 평범한 ‘상하이 엄마’ 수준이라고 여겼다. 매일 40분씩 엄격하게 시간을 지키며 피아노 연습을 시켰고 예술적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주말마다 딸아이를 데리고 상하이예술단의 딸아이 또래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공연을 관람시켰음에도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들이 다 따는 피아노 레벨 시험 6급도 통과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피아노 연습은 흐지부지해졌고 경희가 성급하게 거금을 들여 산 피아노는 거실 중앙 벽을 장식하고 있다가 어느 날엔 중고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경희 인생의 첫 번째 좌절감은 가은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진학시험(中考)에서 가은이는 커트라인 점수에 미치지 못하여 공립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었다. 경쟁률이 50 대 50인 치열한 입학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경희는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서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경희는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사립고등학교에 딸아이를 입학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립고등학교에 간 후 가은이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경희는 그것이 처음으로 집을 떠나 단체 생활을 하는 데서 오는 생소함이나 혹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일 거라고 단정했다.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가은이를 위해 경희는 남편을 달달 볶아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차렸다. 고등학생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체력이고 따라서 영양이 적절하게 배합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속셈은 식탁에서 가은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가은이는 180도로 변하여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놔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경희의 질문에는 그냥 단답형으로 응, 혹은 아니로만 대답했다. 밥을 먹고 나면 자기 방에 들어가서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경희는 가은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차려놓은 밥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에 나가서 햄버거를 사먹기도 했다.
   “에휴, 웬수가 따로 없네, 웬수가 따로 없어. 내 뱃속에서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지?”
   그때마다 경희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그래, 참자, 내가. 삼년만 참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경희가 가은이 앞에서는 초인간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4

   경희는 두 번 유산한 끝에 가은이를 얻었다. 임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전무했던 경희와 남편은 처음 임신이라는 사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것은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실외 공용 개수대에서 채소를 씻을 때면 느끼는 아득함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경희는 난생처음으로 살을 에는 고통을 참으며 아이를 지웠다. 첫 번째 유산을 경험한 후 조심한다고 했지만 젊음의 혈기를 주체 못한 경희와 남편은 밤이면 일인용 침대 위에서 늘 엉겨붙었고 두 번째로 임신을 했다. 웬만한 일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경희도 이번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인공유산의 아픔보다는 소중한 생명을 또 한번 강제로 지워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갈마들었다. 하지만 경희는 결국 또 한번 이를 악물고 수술대에 올랐다. 가구 하나 변변치 않은 단칸 월셋방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진 않았다. 안 돼, 아직은 아이 낳을 시기가 아니야. 아이는 태어날 때 자기가 먹을 걸 다 갖고 태어난다며 남편이 낳자고 설득했지만 경희는 남편 몰래 병원에 가서 유산을 했다. 그 일로 남편은 처음으로 경희와 대판 싸웠다. 경희는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그 무렵 경희는 사소한 일에도 곧잘 울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초가을 날씨엔 울적해서 울었고, 코딱지만 한 월셋방에서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올리고도 이빨이 딱딱 마주칠 때면 추워서 울었다. 대학을 못 다닌 자신의 신세가 벽 구석에 핀 곰팡이 같아서 서러워서 울었고 여자의 로망인 웨딩드레스도 입어보지 못한 채 덜컥 결혼을 해버린 것이 짜증나서 울었다.
   경희는 친구들 중에서 결혼을 가장 일찍 했다. 일어전문학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십 대 초반에 상하이로 나온 경희는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에 온 동창들은 세 부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도시를 전전하다가 상하이로 온 동창, 타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로 온 동창, 세 번째 부류는 운 좋게 상하이에 있는 대학에 붙어서 학창시절을 상하이에서 보낸 동창들이었다. 경희의 경우는 이 세 부류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굳이 학력으로 따지자면 경희의 가방끈이 제일 짧았다. 일어전문학교 졸업장은 별로 내세울만 한 게 못 되었고 고1만 다닌 경희의 최종 학력은 결국 중졸에 해당했다. 하지만 경희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일일이 연락하여 동창 모임을 조직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동창 모임은 산 설고 물 선 상하이에서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모임이었다. 동창들의 처지는 대체로 비슷했지만 상하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출발점이 달랐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던 그 시절, 경희가 직업소개소의 아줌마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일자리를 소개받았다면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빵빵한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따라서 드러내놓고 자랑을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씀씀이만 보아도 경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월급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희는 소속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라이벌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지면 안 된다는 그의 승부심이 한몫을 했다. 학창시절 경희는 중간체조 시간이면 전교생 앞에서 체조를 리드했고, 학업 성적도 상위권에 들었다. 특히 일어는 학년 1등이었다. 상하이에 온 동창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집을 사고 차를 뽑은 사람도 경희였다.
   세 번째로 임신했을 때 의사는 경희에게 협박 비슷한 권유를 했다.
   “이번에도 유산하면 자궁벽이 얇아져서 나중에 아이를 못 낳을 수도 있어요.”
   “낳을 거예요.”
   대출을 받아서 선분양 주택 구매계약을 한 지 한 달 조금 더 되는 시점이었다. 입주하려면 아직 1년 반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한 번만 이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면 평생 옮겨 다니지 않고 자기 명의로 된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딸아이가 태어났고 드디어 인테리어를 한 새집에 들어갔을 때 경희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제야 상하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동안 창고 같은 월셋방을 전전하며 지금의 집에 오기까지 이사를 열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경희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상하이로 모셔왔다.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했기에 가은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았다.
   가은이는 경희를 닮지 않았다. 생김새도 남편을 닮았고 승부욕이 강한 경희와 달리 가은이는 뭣에든 크게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경희는 그것이 요즘 세대들의 ‘과잉 풍요’ 때문이라고 나름 판단 내렸다. 성격이 내성적인 가은이는 유치원에 보냈을 때 솜바지에 소변을 누고도 선생님에게 말을 하지 않아, 집에 와서 잠옷으로 갈아 입힐 적에야 알게 되었다. 축축한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나서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따져보았지만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일이 다 챙기기는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변이 마려우면 얘길 하지 그랬어요, 화장실이 바로 코앞인데.”
   “말 안 하면 우리야 모르죠. 말을 했더라면 유치원에 여분으로 있는 바지를 갈아 입혔을 텐데요.”
   선생님은 바지에 오줌을 누고도 말을 하지 않은 네 살짜리 가은이 탓을 했다. 경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는 그것이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 선생님들의 소양 차이라고 했지만 고만한 일로 굳이 돈을 들여 사립에 보내고 싶진 않았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가은이는 별탈 없이 넘겼다.
   그런 가은이가 대학 입시를 포기했다니, 경희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경희의 히스테리를 경험한 후로 가은이는 자신을 방에 가뒀다. 화장실을 갈 때나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경희는 가은이와 말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식사시간을 이용하여 딸아이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매번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했다. 달래도 보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구걸하다시피 하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경희는 화가 나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요가를 해도 『논어』를 읽어도 마음의 평정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찾아올 수가 없었고 코로나에 걸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불쑥불쑥 열이 솟구쳤다. 그러는 경희를 보며 남편은 갱년기가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지금이 어디 농담 따먹기 할 땐가? 딸아이의 인생이 걸린 일인데, 경희는 남편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이십 년 넘게 같이 살았어도 이 남자는 대책이 없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 분유 브랜드를 선택하고 기저귀를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상하이 호구를 만들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딸아이의 학교를 정하는 굵직굵직한 일에까지 전부 경희가 나서야 했다.

5

   경희는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땡그랑 땡그랑, 문을 열자 풍경 소리가 울렸다. 따마하 물고기가 좌우로 흔들리고 그 아래에 달린 방울이 빙그르르 돌았다. 잘 정돈된 가은이의 방을 보며 경희는 한참 서 있었다. 텅 빈 방을 보니 드디어 딸아이가 집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경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귓전에선 댕그랑 댕그랑, 풍경의 여운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따마하 목각 풍경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경희가 열네 살 되던 해 가을, 처음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때,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기도 했다. 경희는 집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현성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엄마는 시장에서 솜을 타와서 새로 이불거죽을 대고 이불을 두툼하게 만들었다. 하도 두꺼워서 개어 놓으면 도저히 폼이 나지 않고 갓 쪄낸 식빵처럼 부풀어올라 침실 실장 은주는 그때마다 경희에게 아니꼬운 눈길을 던지면서 각 나게 개라고 했다. 경희의 이불 때문에 매주 평가하는 우수침실에 당선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희는 은주와 대판 싸웠다. 그랬던 경희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은주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고 둘의 인연은 상하이에서까지 이어졌다.
   엄마는 그때 경희에게 새 양말과 새 옷, 새 책가방도 사주었다. 심지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울긴 뭘 울어? 내가 먼데 가는 것도 아니고 두어 달에 한번은 집에 올 수도 있는데.”
   우는 엄마가 괜히 호들갑을 떠는 거라고 생각했다. 경희의 인상 속의 엄마는 늘 바쁜 농촌 아낙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경희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준 적 한번 없고, 운동회가 되면 솔로 운동화를 박박 문질러 씻은 후 잉크를 푼 물에 담가 놓는 것도 경희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용돈 한번 넉넉하게 준 적도 없었다. 생전 살갑게 군 적이 없는 엄마가 울다니, 경희는 아이러니했다. 경희는 마냥 신나기만 했다. 현성에 가면 영화관도 있고 식당도 있고 백화상점도 있었다. 이제 경희는 맘대로 돈을 쥐고 쓸 수 있었다. 경희의 아버지는 객지에 나가서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 하는 말과 함께 나무토막 같은 걸 내밀었다. 받아 들고 보니 그건 물고기 모양이었는데 물고기라기보다는 비행기 같았다. 그것은 그때까지 경희가 그려오던 배가 볼록한 물고기와는 달리 배도 납작하고 일자형인 데다가 잘 다듬지 못해서 굴곡이 진 부분은 꺼칠꺼칠했다. 벼 가을을 하던 아버지의 손처럼 투박했다. 눈도 비늘도 없는 목각 물고기였다. 물고기의 길이는 15센티미터 정도로 경희의 손바닥 길이와 맞먹었다.
   “이거 아버지가 만들었어요?”
   “응”
아버지는 경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참 못생겼다.”
   경희는 무심코 내뱉었다.
   “이게 따마하위(大马哈鱼)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은 말을 또 한마디 내뱉더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더듬었다. 경희는 아버지가 손재주가 없어서 가장 깎기 쉬운 따마하를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따마하는 경희에게 익숙한 냉동생선이었다. 겨울철이면 먹을 수 있는 몇몇 냉동 생선 중 하나였다. 경희의 엄마는 꽁꽁 언 따마하에 삼겹살을 넣고 갖은 양념을 해서 푹 끓였는데 생선의 산뜻한 맛과 삼겹살의 고소한 맛이 어울려서 국물에 밥을 말아서도 두 그릇을 후딱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겨울철 별미 음식이었다.
   따마하 목각은 관상용으로 꺼내 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트렁크에만 넣어놓자니 또 내키지 않았다. 경희는 마카펜으로 목각에 눈을 그려놓고 비늘을 그렸다. 그제야 조금 물고기 모양새가 살아났다. 사감실에 가서 송곳과 망치를 빌려 물고기 몸통에 구멍을 냈다. 여러 겹으로 꼰 실을 구멍으로 통과해 아래에다가 방울을 하나 다니 그럭저럭 풍경이라고 부를 만했다. 경희는 따마하 풍경을 침대머리에 걸어놓았다. 그것은 경희를 따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일어전문학교로, 나중에는 상하이로 오는 트렁크 안에 넣어졌다. 상하이에서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그 풍경은 잊지 않고 챙겨서 들고 다녔다. 경희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왜 이 물고기 목각을 깎아주었는지 묻지 않았다.

6

   가은이는 자라면서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다. 집에 가훈 같은 건 없었지만 금기어는 있다는 걸. 그건 바로 상하이를 떠난다는 말이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그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금순이네도 곧 무석으로 이사 가고 영화네는 고향으로 간다네. 영화가 결국 상하이 거주증 못 만들었나 봐.”
   가은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식탁에서 경희와 남편의 주된 대화는 상하이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마다 경희는 가은이에게 재삼 상기시켜 주었다.
   “넌 상하이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지?”
   경희는 하나님을 믿진 않았지만 축복이라는 말을 가끔 썼는데 그것은 물론 상하이와 연관된 일에만 사용되었다. 경희의 논리대로라면 상하이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축복받은 인간이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한 부류는 상하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지금 상하이로 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가회의 지하철역에 걸려 있는 대형 광고판의 문구라면서 경희가 이 말을 가은이에게 들려줬을 때 가은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그럴 법했다. 가은이가 만난 상하이 친구들, 그 친구의 부모들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유치원 때는 몰랐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가은이는 곧 자기가 반의 친구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들은 가은이가 상하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걸 알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가은이가 부모의 고향이 흑룡강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면 자기들끼리 상하이 말로 대화를 나눴고 선생님과 대화할 때도 스스럼없이 상하이 말을 썼다. 그럼으로써 가은이에게 다름을 인식시켜 주었다. 가은이 또한 그들과 노는 것 자체가 달랐으므로 스스로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다. 친구들이 줄넘기를 놀고 공놀이를 할 때 가은이는 화단에 있는 흙을 파헤치거나 꽃잎 개수를 세고 지렁이를 관찰하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자연스럽게 가은이는 혼자가 되었다.
   친구들은 다들 바빴다. 방과 후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가거나 학원으로 갔다. 친구들과 잘 지내냐고 가끔 엄마가 물으면 가은이는 다들 바쁘다고 말했다.
   “난 학교 다닐 때 항상 문화부장 했고 전교생 앞에서 체조를 리드했어.”
   경희는 가은이가 반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길 내심 바랐지만 가은이는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반장이 될 기회도 그에겐 돌아오지 않았다. 가은이 인상 속의 경희는 목소리가 큰 여자, 고집대로 하는 여자, 일을 완벽하게 하는 여자였다. 경희는 루틴대로 하루를 엄격하게 보냈다. 아침 여섯시에 기상을 해서 아침 준비를 하고 샤워를 하고, 식구들이 샤워를 마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청소를 마친 뒤에야 출근했다. 경희는 음식 솜씨는 별로였으나 ― 경희의 말을 빌린다면 어릴 적에 어머니로부터 맛있는 걸 별로 얻어 먹어본 적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 정리정돈, 스케줄 짜기에는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경희는 속옷이나 양말은 물론 옷장의 옷도 색상 별로 정리해서 걸었고 해외여행을 갈 때에는 1년 반, 2년 전부터 티켓과 뮤지엄 입장권을 구매했으며, 여행 갈 나라의 지도를 손금 보듯 꿰뚫을 정도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경희는 심지어 모 브랜드의 립스틱이며 아이섀도는 세계 어느 공항의 면세점이 제일 싼지조차도 알고 있었다.
   집에서 경희의 말은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가은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가은이네 학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었는데 가은이의 준비물을 챙기던 남편이 텀블러를 찾다가 경희에게 물었다.
   “텀블러 주문 안 했어? 이거 자기가 주문 넣기로 했잖아.”
   “응, 내가 깜빡 했네.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써.”
   그 순간, 가은이는 경희와 남편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치는 걸 보았고 경희의 레이저 같은 눈빛 앞에서 겁먹은 양 같은 남편의 눈빛이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았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처럼 가은이의 뇌리 속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경희는 상하이에 온 후 회사를 딱 한 번 바꿨는데 두 번째 입사한 회사에서 23년째 근무하고 있다. 10주년이 되었을 때는 손목시계를 타왔고 3년 전 20주년 기념으로는 신형 아이폰X를 타왔다.
   “호호, 새로 입사한 사원이 95년생이야. 울 가은이보다 아홉 살 많아. 다들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는데 새로 입사한 친구가 이모라고 부르겠단다.”
   남편은 경희처럼 운이 좋지 못했다. 남편이 먼저 그만두지 않으면 회사가 먼저 망하곤 하다 보니 경희의 남편은 늘 회사를 옮겨 다녀야 했다. 남편은 5년 전에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경희에게 고향으로 가거나 다른 도시로 가자고 했으나 경희는 펄쩍 뛰었다. 상하이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며 이젠 상하이에 뿌리를 내렸기에 다른 곳으로 가면 죽는다고 했다. 나무처럼.
   그날 저녁 가은이는 경희 부부의 다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화장실을 가려다 말고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거실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나라고 상하이에 안 남고 싶겠어? 가은이 교육을 생각해서라도 상하이에 남고 싶지. 근데 어쩌라고? 난 당신처럼 상하이 호구도 아니고, 대학 졸업장도 없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취직이 쉽겠냐고.”
   “다 자기가 재간이 없어서 상하이 호구 못 받은 거지, 나처럼 빨랑빨랑 움직였으면 자기도 벌써 상하이 호구 만들었을 거잖아. 그니까 애초에 왜 내 말을 안 듣고…….”
   “가짜 대학 졸업장 만든 거 부끄럽지도 않아? 혹시라도 나중에 가은이가 알게 되면 떳떳하냐고.”
   “그만해! 이게 다 우리가 상하이에서 뿌리 박고 살자고 한 짓이지, 나 혼자 잘 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
   경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경희의 남편이 또 뭐라고 말을 했지만 가은이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가짜 대학 졸업장이라니? 그래서 여태 엄마는 나에게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말해 주지 않았구나. 가은이는 순간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머나먼 고향 땅을 떠나 상하이에 와서 어떻게 고생했고 어떻게 처절하게 노력했는지에 대해 가은이 앞에서 자서전을 쓰던 경희가 가짜 졸업장을 만들다니? 가은이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잘난 상하이 호구가 뭐라고? 상하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은근히 가은이를 쪽 가르던 친구들의 모습에 경희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가증스러웠다. 경희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면서도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면 무리해서라도 비싼 프랑스 코스 요리를 먹었다. 그런 날이면 경희의 위챗 모멘트에는 앞가슴이 깊게 트인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칼질을 하거나 와인잔을 든 사진이 올라왔다. 하지만 가은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경희가 집에 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신라면 봉지를 북 뜯으며 투덜거리던 목소리를.
   “더럽게 비싸네, 인당 600위안씩이나 하는데 배에 기별도 안 가.”
   그리고 냉장고에서 친정어머니가 고향에서 보내온 김치를 꺼내 냄비에 끓인 라면과 함께 먹었다. 인터넷으로 모든 걸 다 살 수 있어 세상 편하다면서도 경희는 고춧가루와 김치만은 고향에서 보내온 것만 고집했다. 인터넷에서 산 건 어떻게 만들었는지 믿고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며칠 후 경희의 남편은 요리학원에 등록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경희는 처음에는 남편이 요리학원에 등록한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더니 남편이 스파게티며 달팽이요리며 양송이수프, 대구살구이 같은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자 신이 나서 주변에 자랑하기 시작했다. 경희의 남편이 요리학원에 등록한 후 최대의 수혜자는 실은 가은이었다. 똑같은 생선을 구워도 경희가 구운 것과 남편이 구운 건 맛이 달랐다. 한번은 구운 연어가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아니고 몸통의 가운데를 잘라서 구운 거였다.
   “이거 먹어봐, 연어보다 더 맛있을 거야.”
   “연어 아니에요?”
   가은이는 연어처럼 주홍빛을 띠는 생선살을 집으며 물었다.
   “아니야, 이건 아빠랑 엄마의 고향에서 나는 따마하위다. 흑룡강의 특산이지. 연어랑 같은 과이긴 하지만 연어와는 달리 죽어야 살이 발갛게 변하는데 아빠는 어릴 적에 따마하위 많이 먹었다. 지방이 많고 영양이 풍부해. 따마하위는 태평양과 북빙양 해역의 바다로 향하는 입구와 흑룡강 중류의 우쑤리강에 분포되어 있는데…… 흑룡강의 어민들 말을 빌리자면 따마하위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서 살다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물고긴데, 그것은 따마하위가 어릴 적 자신이 태어난 강의 물 냄새를 기억해 내기 때문이라고 하네…….”
   가은이는 대여섯 살 적에 엄마를 따라 갔었던 고향의 강을 떠올렸다. 여름이라 강가에는 수초가 우거지고 빨강, 노랑, 보라색의 들꽃이 만발했다. 가은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강에 물고기잡이를 갔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강물엔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가 떼를 이루고 있었다. 가은이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몇 번이나 손을 뻗었으나 번번이 허탕을 쳤다. 허허, 우리 가은이 손이 너무 작아서 그렇구나, 할아버지가 잡는 걸 보거라. 할아버지가 숙련된 솜씨로 반두질을 할 때마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끌려 올라왔다. 가은이는 경이로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경희가 가은이를 데리고 주말에 가끔 쇼핑센터의 놀이터에 가서 흐린 물 속에 있는 플라스틱 오리를 자석이 붙은 낚싯줄로 낚는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경희의 남편은 가은이가 고2 때 드디어 모 호텔의 주방장 보조로 들어갔다. 기다란 모자를 쓰고 흰 조리복을 입은 남편의 모습은 꽤나 근사했다. 가은이는 아빠가 드디어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 진심 기뻤다. 대놓고 좋아한 건 경희였다. 남편 뒤통수만 봐도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온다던 경희는 가은이가 보는 앞에서 남편의 얼굴에 쪽 소리 나게 뽀뽀까지 했다.
   “이제 상하이에 쭉 눌러 살면 되겠다. 호호!”

7

   상하이에 온 지 25년차, 경희는 누가 뭐래도 이제 자신을 상하이 사람으로 생각했다. 고향에서보다 상하이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길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는 동안 상하이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상하이에 나왔던 동창들이며 지인들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 많다. 경희는 그들이 낙오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낙오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도시를 상대로 시험을 치른다면 상하이에는 전국에서 상위 1%에 드는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경희는 생각했다. 실제로 이 도시는 외지인들에게 학점제를 적용해 거주증을 발급했는데, 120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거주증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몇 점, 상하이에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몇 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겼다. 거주증이 없으면 당장에 자녀의 교육이 큰 위협을 받았다. 상하이 호구가 아니거나 상하이 거주증이 없는 가정의 자녀는 호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수능을 봐야 했다. 하지만 경희는 상하이에 온 초반에 운 좋게 상하이 호구를 취득했고 덕분에 딸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상하이 호구를 획득했다. 서류상으로는 상하이 사람이었지만 경희는 만족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상하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상하이 사람들의 처세술, 음식 습관, 한 푼이라도 손해보기 싫어하는 계산적인 경제 사유, 그들의 행동거지와 말투…… 경희는 이 모든 것을 몸으로 하나하나 익혔다. 사흘이 멀다 하게 일떠서는 새로운 건물을 보며 경희는 역동적인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 도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끔 경희는 흘러간 20대 초반, 좌충우돌하며 상하이 생활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상하이에서 근무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 경희는 상하이 태생 동료랑 대판 싸웠고 그 화를 삭이지 못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동창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그 상하이 아줌마 진짜 짜증나. 상하이 퉁지따쉐(同济大学) 졸업하고 울 회사 인사과에 들어왔는데 벌써 근무한 지가 5년도 넘었어, 결혼했다고는 하는데 애는 없고, 맨날 조카 봐주면서 조카 자랑하는 아줌만데, 카멜레온 같아. 나하고 대화할 때는 쌀쌀맞고 퉁명스러운데…… 맞아, 분명 내가 외지인이라고 깔보는 게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거지. 그런데 홍콩 본사에서 전화 오면 목소리부터 바뀐다. 뚱뚱한 몸집과 어울리지도 않게 말이야, 어우 진짜 닭살! 아양 떠는 거 보면 웩,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야. 오늘은 이미 회사 그만둔 남 선배 일로 내게 태클 거는 거야, 너네 조선족들은 어쩌고 하면서, 우리 민족을 건드리는 데야 내가 참을 수가 있어야지…….”
   경희는 열이 올라서 은주에게 하소연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말소리 톤이 높아졌다.
   남 선배는 경희와 은주의 고등학교 2년 선배다. 학생회 회장을 맡았고 공부도 잘했던 선배는 첫해에 지린대학에 붙었다. 그랬던 남 선배가 뒤늦게 상하이로 진출해 경희가 근무하는 회사의 의류수출부서 팀장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경희는 단연 반가웠다. 스무 명 남짓 되는 동료들 중 조선족은 경희 혼자였는데 남 선배가 오니 왠지 든든했다. 남 선배는 중국어도 유창했고 박식했는데 특히 역사 지리에 빠삭해서 상하이 사람들보다도 상하이의 역사를 더 잘 알았다. 그러던 그가 일주일 전에 홀연 그만두었다. 풍문으로는 남 선배가 자기 부서의 신입사원 소항이란 여자아이와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겨서 더 이상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소항은 천진에서 온 여자아이다.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만 스무 살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경희네 회사 사장의 처가 쪽 친척이라고 했다. 소문은 쓰촨에서 온 남자 사원 류휘 입에서 나왔다. 류휘가 하루는 야근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소회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는 거였다. 도둑이 든 줄 알고 류휘가 발밤발밤 소회의실로 접근했는데 갑자기 소회의실 불이 탁 켜지며 남 선배와 소항이 나왔고, 둘은 출장 갔다가 막 돌아오는 참이며 샘플을 갖다 놓느라고 소회의실에 들어갔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류휘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 선배와 소항은 사흘 간격으로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 선배의 후임으로 온 사원이 남 선배의 서랍에서 대량의 콘돔을 발견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그날 인사과의 홍 아줌마는 세관에 제출하는 인보이스 문제로 경희와 말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너네 조선족들은 파렴치하게 회사에서도 그런 일을 저지르냐고 태클을 걸었다. 경희는 니 눈으로 봤냐며, 근거 없이 사람 잡지 말라고 되받아쳤다.
   “아, 그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전화 좀 그만하면 안 돼요?”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홱 돌아보며 경희에게 표준말로 내뱉었다. 참다 참다 못 참겠다는 짜증 섞인 얼굴이었다. 기사아저씨의 말은 흥분한 경희의 도화선을 잡아당긴 셈이었다.
   “시끄럽다고요? 뭐가 시끄러운데요? 난 당신이 켜 놓은 라디오 소리가 더 시끄럽고 당신네들 상하이 말이 더 시끄러워요, 상하이 말이 얼마나 듣기 싫은지 아세요? 나한텐 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음처럼 들려요. 친절을 베풀어야 할 승객에게 시끄럽다니요? 서비스가 이따위예요? 경찰서로 가서 도리 따져봐요, 우리.”
   그동안 상하이에서 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솟구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분출했다. 경희가 속사포처럼 내뱉는 불길에 기사 아저씨는 덴겁하며 연속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남 선배는 장춘으로 돌아가서 꽤나 규모가 있는 의류수출회사를 차렸고 지금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인이 되었지만 경희는 남 선배가 상하이를 떠난 것이 늘 유감으로 남아 있다.

8

   “엄마, 내 고향은 어디야?”
   가은이가 이 질문을 처음 한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음, 넌 상하이에서 태어난 조선족이고 엄마, 아빠 고향은 흑룡강.”
   “그러니까 내 고향이 어디냐고? 친구들이 묻잖아.”
   “너 고향은, 그냥 상하이라고 해.”
   “하지만, 우린 집에서 상하이 말을 하지 않잖아. 먹는 음식도 다르고, 난 분명히 상하이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고향이 상하이면 집에서도 상하이 말을 해야 한다고 누가 규정 지었니? 엄마, 아빠가 있는 곳이 고향이지, 어디서 오래 살아 정들면 그곳이 고향이다.”
   이런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경희는 딸아이가 어디 태생인지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거에 화가 나려고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넌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앞으로도 쭈욱 상하이에서 살 거야. 그러니 넌 상하이 사람이라고.”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면 꼭 상하이에서 살아야 해? 엄마는 흑룡강에서 태어났지만 지금 상하이에서 살고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돼 있어. 상하이 호구가 얼마나 좋은데? 상하이 호구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거 아니다.”
   “됐어, 엄마의 상하이 분투기는 이젠 좀 그만 얘기하시지.”
   가은이가 신물이 난다는 투로 경희의 말을 막았다. 경희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두었다. 딸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1990년대 초, 하해(下海)의 바람이 불었고 경희가 다니던 학교의 중고등학교 일어 선생님들은 앞다투어 광저우로, 선전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일본어를 배우는 붐이 일었고 일본어만 잘하면 평생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전도가 양양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 경희가 일어전문학교에서 배운 2년의 일어는 상하이에 온 후 별로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상하이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상하이에 온 후 몇 번의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경희는 사람을 찾아 대학 졸업장을 만들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라 흑룡강의 모 대학의 졸업장을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경희는 중졸에서 모 대학의 대외무역 전공 졸업생이 되었다. 경희는 졸업장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그 졸업장으로 현재 23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를 했고, 그 졸업장으로 상하이 호구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어떻게 만든 상하이 호군데, 엄마가 어떻게 만든 건데…….”
   경희는 이 말을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결코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요즘 세월에 대학 졸업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지?”
   작년부터 정부에서는 대학 수능시험을 한번밖에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재수나 삼수의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딸아이를 설득해서 다시 대학시험을 치르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해도 요즘은 일자리 찾기 쉽지 않은데, 못난 기집애, 대체 어쩌려고? 이제 땅을 치며 후회할 거야. 흙먼지 풀풀 날리는 그 동네가 뭐가 좋다고 기어이 시골로 간 거야?”
   경희는 가은이가 자기 앞에 서있기라도 한 듯 탄식했다.
   “돌아가게 돼 있어, 곰을 키워봐, 산 속으로 돌아가지 않나? 가은이 몸 속에 흐르는 피가 우리 핀데 돌아가고 싶겠지. 우리에겐 상하이가 바다고 고향이 돌아갈 강이잖어.”
   남편이 경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은이가 경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훌쩍 고향으로 돌아간 후 경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은이의 방을 들락거렸다. 그래 봤자 하릴없이 멍하니 서 있다가 도로 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마다 문에 달린 따마하 풍경이 댕그랑 댕그랑 울렸다. 맑고 청아한 풍경 소리는 먼 옛날 고향의 초등학교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필자 약력
곽미란 작가 프로필 사진

곽미란, 필명 백한(白汉).
재한조선족문인협회 부회장, 소설분과 분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세이집 『서른아홉 다시 봄』(2014)을 출간하고, 시 「노르웨이 전나무」로 2019년 호미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잡지 『연변문학』, 『장백산』, 『민족문학』 등을 통해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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