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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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길 때문에, 고향

이병군

길 때문에

벼랑과 강이 없으면
길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우뚝 솟은 산을 마주쳐도
자세히 보면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던 곳에
오래 밟으면서 그렇게 길이 생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는 길이 많다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좁은 오솔길이 있는가 하면
넓은 아스팔트도 있고
한번 생기면 생각보다 오래간다.

간밤에 함박눈이 내려 하얗게
분간할 수 없게 변할 수는 있어도
인기척이 생기면 그때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생각하고 걸은 사람은 없었다.
걷다 보니 조금씩 생겨나고
그렇게 넓어지고 선명해진다.
그러면서 뒷사람들은 따라 걷는다.

봄길도 눈길도
빗길도 꽃길도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점점
길에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다녔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생각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는 길이 많다고

고향

누구는 없거나
아직은 있어서 다행이거나
혹여 이미 잊어버렸거나
이제는 가물가물한 곳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둘씩 다 떠나갔기에
언젠가는 떠나야 했기에
그냥 그렇게 떠났던 곳

한 번 찾아 쉬었다 가는
다시 떠나야 하는 곳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조금 멀어지는 곳

간직하고 싶으나
하염없이 변하는 곳
그 속에 따뜻함과 애절함이
섞여 있는 곳

찾았다 떠났다 몇 번 하면
세월도 다 흘러가고
결국은,
찾지 못하는 곳

이 작품은 웹진 《너머》에 투고되어 선정된 작품입니다.
필자 약력
프로필_이병군.jpg

1987년 중국 길림성 통화시에서 태어났다. 중국 연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연변 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2년에 중국 조선족 청년 작가상을 받았다. 중국에서 우리말 문학 잡지인 《장백산》, 《연변문학》, 《도라지》, 《송화강》 등에 다수의 소설, 수필, 시를 발표했다. 현재 중국 산동사범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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