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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회귀 여행

이윤홍

   사진 한 장이 떴다.
   빛바랜 흑백 사진이다. 보통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돌담 아래 젊은 여자와 어린 아기가 쪼그려 앉아 있고 두 사람 뒤쪽 저만치에 나무 대문이 보인다. 한쪽 문이 반쯤 열려 있고 문턱이 높아 보인다. 여자와 아기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담벽 바로 위로 작은 창문이 나 있다. 사진 속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담은 어느 한 곳이 떨어져 나가거나 무너진 곳은 없지만 한 눈에도 몹시 빛바래고 삭은, 처음 담을 올린 그때로부터 단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아, 수백 살도 더 넘은 세월이 앉았다가 지나가며 남겨 놓은 낡은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땅에 맞닿은 가장자리를 따라 낮은 키의 잡풀들이 자라나 있는 것이 보인다.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의 까만 파마머리가 무척 풍성하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슬퍼 보이는 아기는 정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빨고 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의 발 아래쪽으로 빨간 물감을 엎지른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엷어졌지만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붉은 기운으로 엄마와 아기의 다리가 염색 통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자신의 대저택 할리우드 뒷산, 이따금 야생동물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어둠을 할퀴는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누가, 이 야심한 시간에 뜬금없이 이런 사진을 보냈을까?
   잠이 어설프게 들었었는지도 몰랐다. 카톡―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깬 김 사장은 약간 화가 났지만 혹시 사업상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베개 옆에 놓여 있는 셀폰을 집어 들었다. 그가 셀폰을 열고 카톡을 열자 큰 문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회귀 여행. 이제 떠날 때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김 사장은 이십 대 중반에 미국에 와 팔십이 넘은 지금까지 오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과거를 돌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잘못 올렸다는 생각에 올라온 카톡을 지우려고 했는데 바로 그때 다시 카톡― 하면서 글이 떴다.
   “망구년이십니다.”
   망구년?
   김 사장의 생각을 읽은 듯이 바로 다시 답이 올라왔다.
   “네, 망구년입니다. 이제 떠날 때입니다.”
   망구년? 거참 이름도, 김 사장은 망구년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했지만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이 한밤중에 어느 미친놈이 잘못 보낸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사장은 카톡을 지우려다가 멈칫했다. 카톡에 올린다는 것은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순간 다시 카톡이 떴다.
   “들어오십시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라니? 누가 나를 기다린단 말인가?

   처음, 김 사장은,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진은, 이미 설명한 대로 어느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담장 밑에서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와 한두 살 된 아기가 함께 쪼그리고 앉아 있는, 네 모서리는 벗겨지고 긴 세월이 남겨 놓은 줄이 여러 갈래로 난 흑백 사진이었다.
   아기는 고개를 똑바로 하고 정면을 바라보며 입에 넣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한눈에도 상당한 미인임을 알 수 있었다. 아기를 바라보는 쌍까풀 진 눈과 오뚝 선 콧날 그리고 가느스름한 계란형의 작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기는 아마도, 사진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추측건대, 아기 엄마인 젊은 여자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고 아기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고 아빠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를 바라보며, 햇살 좋은 어느 한낮 세 식구가 모처럼 새 옷을 입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바깥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사진이 틀림없었다.
   정말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김 사장은 이제는 잠이 완전히 사라졌으므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안경을 썼다. 김 사장이 안경을 쓰고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김 사장은 사진을 코앞에 바짝 갖다 대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왜 이 사진이 지금 이 시간에 자신에게 올라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도 아기도 낯설었다.
   가끔 엉뚱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처럼 누군가가 잘못 알고 나에게 올린 것이 분명해. 이 한밤중에 이런 것을 보내 사람을 깨우다니.
   김 사장은 오늘 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김 사장이 셀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그때 저택 정원 어디에선가 낮고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순간 김 사장은 자리에 일어나 창문 앞으로 다가가서 커튼을 옆으로 잡아당기고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정원은 엄청 넓어서 마치 시(市)에 속한 작은 공원 같았다. 정원 여기저기에 야광등이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그 불빛을 받고 있는 주위의 나무나 잔디는 밤기운 속에서 차갑게 보였다. 움직이는 물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에는 크고 작은 구름이 떠 있었는데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하현달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고 있었다.
   김 사장이 하늘과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정원 한구석에서부터 푸른빛 감도는 안개가 솜털 이불처럼 낮게 깔리며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김 사장은 신비한 기운을 보는 듯 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서서히 정원에 퍼지면서 때로는 비누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가라앉고 곧 다시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서 마치 잔디 위를 기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곤 했는데 이런 광경은 마치 김 사장이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 본 지구 밖 행성 호수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예언 같았다. 안개가 점점 창문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
   김 사장은 이 대저택에서 10여 년을 살았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 안개 속으로 들어서면 현실을 벗어나 멀고 먼 피안(彼岸)의 세계로 들어설 것 같았다. 김 사장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현달을 품은 엷은 노란 빛의 회색 구름이 김 사장이 서 있는 창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김 사장이 그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 그 구름이 형체를 바꾸면서 마치 비행접시처럼 둥― 떠서 서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정원 안 창문 가까이에 서 있는, 꽃잎이 지고 있는 벚꽃 나무가 머리 위의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달빛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오늘 밤은 참 유별나군.
   뭐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야.
   그는 다시 잠시 정원을 내다보다가 블라인드를 내리려는 순간 저 멀리 서 있는 다른 큰 나무 뒤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대로 서서 잠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언뜻 꼬랑지가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인기척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뭐지? 김 사장은 정원의 안개가 생물인 듯 움직이며 다가오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자꾸 기분이 이상해져서 커튼을 잡아당겨 창문을 가렸다. 그 순간 안개를 닮은 흰 여우 한 마리가 벚꽃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사방이 조용했다.
   방 안도 조용했다. 김 사장이 잠깐 그 자리에 서 있는 아주 짧은 동안 밤의 적막이 내는 지르르르르― 지르르르르― 하는 전류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카톡만 아니었더라면 김 사장은 지금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었다. 김 사장이 책상 앞으로 가서는 아래 서랍을 열고 레미마르탱 코냑을 한 잔 따랐다. 김 사장은 단숨에 들이켠 한 잔이 그를 빠르게 잠의 세계로 다시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 코냑이 흘러 들어가면서 목구멍이 따가웠지만 그것은 아주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김 사장은 침대 위로 올라가 누우면서 머리맡의 불을 끄려고 했는데 그만 손이 떨어지면서 그 아래 있던 셀폰을 건드렸다. 그러자 화면이 열리고 다시 사진이 떴다. 그는 사진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늘린 다음 젊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면이 확대되자 화소(畵素)가 엷어지면서 오히려 얼굴 모습이 흐릿해졌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김 사장은 실망하면서 다시 아기를 확대하여 바라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아기의 모습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면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궁둥이를 덮는 긴 스웨터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집 담에 비치는 햇살이 따스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김 사장은 아마도 늦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 사장은 사진을 본래 사이즈로 돌려놓은 다음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아기가 남자아이인지 아니면 여자 아기인지조차 구별할 수가 없었다.

   김 사장은 피로한 듯 안경을 벗고는 반듯하게 누었다.
   망구년?
   이름도 모르는 자로부터 아주 오래된 낯선 사진을 받은 김 사장은 흠― 소리를 내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는 다시 셀폰을 켜서 카톡을 열고는 지우려고 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망구로부터 또다시 카톡이 들어왔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그 메시지를 받자 갑자기 김 사장은 화가 치밀어 올라 셀폰을 침대 밖으로 던지려고 했다. 그러자 카톡이 다시 울렸다.
   카톡.
   김 사장은 놀라 자신도 모르게 카톡을 다시 열었다.
   그러자 다섯 식구가 모여 찍은 사진이 맨 처음 뜬 젊은 엄마와 아기 사진 위로 올라왔다. 가족사진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자신이 서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여자가 그의 팔을 잡고 그 옆에 서 있었는데, 그녀는, 그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 일 년 전 결혼식 없이 가족으로 맞이한 그의 새색시였다. 그러니까 6명의 가족이 모여 찍은 사진이 떠오른 것이다.
   배경은 도로 위였다.
   그는 가족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와 아내의 오른쪽으로 여동생이 서 있었고 그의 왼쪽으로는 바로 아래 남동생이 서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자식들 뒤에 서 있었는데 두 분은 마치 세상의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자식들을 보호하는 가족의 수호자들 같았다.
   아버지는 맏아들인 그보다 한 뼘이나 더 큰 키와 그 키에 알맞은 완강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한 가족을 넉넉히 이끌 가장으로 보였다. 그러나, 만일 김 사장의 친구인 사진작가 K의 말처럼, 사진이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박아 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와의 교감을 통해 피사체 내면의 감성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진을 바라보는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비록 세월의 흐름 속에 빛바랜 흑백 사진이라 할지라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멍한 눈에 서린 삶의 비애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 모두 웃고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도로 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라니. 그것은 마치 가족이 가족으로 한 집에 머무르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질 운명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모두 추레해 보였다.
   사진은 그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 입구 도로 위에서 찍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날 그가 한국을 떠나는 것을 시발점으로 남동생 진구는 외항선을 타러 부산으로 떠났고 여동생 화선은 중학교 친구 아버지의 회사를 찾아 진주로 내려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 동두천 외곽 판자촌에 머물렀다.
   “염려들 마라. 아버지 아직 안 죽었어. 너희들 다시 부른다. 그때 다들 다시 모이자.”
   길 위에서 호언하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늙어 보였기 때문에 그는 하마터면 어머니가 그 당시 60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미국으로 올 때 가족사진 서너 장은 갖고 왔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60여 년간 단 한 번도 가족사진을 꺼내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가 한국을 떠날 때 찍은 이 사진 속의 모습들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진이 카톡에 올라왔지?
   김 사장은 가족들이 낯설었다. 가족이 낯설다는 생각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이 순간 김 사장에게는 아주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는 한국을 떠나온 60년 동안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아가지 않았고 가족들과도 몇 번의 통화 이외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한국에 나가지 못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성공이었다.
   그는 한국을 잊기로 했다.
   그는 가족을 잊기로 했다.
   고향, 친구, 문화, 등등.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그의 그런 비정하고 무서운 결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잊을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뇌에 입력된 모국어였다. 비록 그가 한국인들이 없는 곳에서 미국 생활 60여 년 전부를 보냈다 할지라도 아내와의 의사소통이 필요했고 엘에이라든가 샌프란시스코 혹은 시애틀같이 큰 도시로 나갈 때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교민들과 대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주류 사회에 들어가 활약할 만큼 영어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업상 필요한 대화는 철저하게 익혔다. 그는 성공할 때까지 모국어 이외의 한국의 모든 것은 잊기로 했다.
   김 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김 사장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김 사장은 전혀 무서운 사람이 아니었다. 영어도 서투른 사람이 동전 한 닢 없이 미국으로 건너와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고 20년 후 교민 사회가 아닌, 산 호세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백인들의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등, 초고가의 자동차들만 정비하는 비즈니스를 열었을 때 그의 피눈물 나는 각오를 이해한 사람은 그 자신 이외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을 몰랐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자동차뿐이었다.
김 사장은 아버지가 암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국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에 나가지 않았다. 김 사장이 처음 아버지의 병명을 여동생 화선이로부터 들었을 때 그는 영주권 신청 중이었다. 그는 무척 몸을 사렸다. 영주권 인터뷰가 가까워 왔는데 행여 아버지를 만나러 나갔다가 뭐라도 꼬투리를 잡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효가 되더라도 미국에 머물러 완벽하게 영주권을 받고 싶었다. 그 당시 김 사장에게는 ‘효’보다는 ‘영주권’이 더 급선무였다.
   그때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은 했었다.
   영주권을 받으면 나가서 뵈어야지.
   그는 화선이가 담담하게 아버지 이야기를 했을 때 오히려 화선이보다 더 눈물을 흘렸다. 화선이는 큰오빠의 울음을 곡진하게 받아들이면서 무척 감동한 투로 아버지의 담배, 폭음, 분노, 운명, 이런 말들을 하면서 오빠를 위로했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은, 아버지의 암과 얼마 남지 않은 삶 때문이 아니라 하는 일마다 철저히 실패한 아버지의 인생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평양 너머에 있는 동생 화선이는 오빠의 울음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는 가족에게 천형(天刑)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난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어머니가 울며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울음과 함께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다가 방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혼자 큰 소리로 말했다.
   “애야, 큰애야, 얼마나 슬프면 목이 막혔니. 기절했구나, 기절했어. 아이구, 큰애야.”
   그는 수화기를 귀 가까이 든 채로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왜 슬픔이, 눈물이 나지 않는 거지?
   그는 자기 자신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그때 그는 이렇게 앉아 있는 자신이 마치 뫼르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뫼르소는 아니라고 다시 생각했다. 화선이와 통화할 때는 슬픔이 솟구쳐 올랐었는데……. 그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삶이 그를 꽉 붙들고 있고 또 그는 아버지와 같은 패배자는 되지 않겠다는 강한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것은 어머니의 죽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20여 년을 더 혼자 사셨고 양로원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먼 항해에서 돌아온 남동생 진구가 셀폰으로 화상 채팅을 연결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빨리 화면을 끄고 싶었지만 진구와 화선이가 자꾸 화면을 들이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바라보아야만 했었다. 어머니는, 그가 아무리 불러도 화면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허공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애썼다. 어쩌면 아버지를 부르고 계셨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를 부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김 사장은 슬픔보다는 괴로움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남동생 진구는 그와는 달랐다.
   형인 그는 가난을 혐오하고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 한국을 떠났고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외면했지만 진구는 그러지 않았다. 세계를 돌아 배가 부산에 닿을 때마다 동생은 어김없이 집을 찾았다. 그리고 지구의 5대양 한복판에 있을 때에도 아버지, 어머니와 화선이 생일에는 작은 돈과 카드를 보냈다. 그는 형보다 더 가족을 생각했다.
   남동생은 외항선을 타면서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마련했다. 그 집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모셨고 여동생 화선이도 집으로 들어오게 해 부모님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했다. 화선이에게는 미술 학원을 차려 주었는데 그럭저럭 유지가 되고 있다고 했다. 남동생은 돈도 모은 것 같았는데 결혼도 안 하고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언제나 큰아들만을 생각했다.
   김 사장은 이따금 동생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미안해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이해한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도 이해하실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기 전 남동생 진구가 말했다.
   “형, 나는 바다가 좋아. 나는 한번 출항하면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집에 돌아올 수 없어. 때때로 나는 형보다 더 멀리 유배된 자라는 생각이 들곤 해. 형은, 사업 때문에 꼼짝을 못하지만 그래도 형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라도 나올 수 있잖아. 나보다 나은 디아스포라야. 반년도 넘게 바다를 돌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비록 누추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동생 화선이가 있는 우리 집 말이야. 타관에서 여관에 눕는 것과는 달라. 집으로 돌아와서 몇 날 며칠을 실컷 잠만 자고 있으면 마치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 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가장 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바다를 떠도는 것이나 형처럼 미국이라는 큰 나라, 빅 컨트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같다고 생각해. 언제 한 번 나와 고향 집에 누워 봐. 나랑 같은 느낌이 들 거야. 형, 이해해. 열심히 살아.”

   첫 번째 사진 속의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밝았고 앞을 바라보는 사진 속의 아기도 표정이 순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배고픔에 대한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진 속의 아기에게 투사(投射)한 결과였는데 김 사장은 그가 기억하는 한 한국을 떠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배가 고프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속 대문 안을 들여다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집 안이 비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니, 무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기도 하다. 김 사장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궁금해 정말 사진에다 자신의 귀를 대어 보았다. 그러나 소리는 사진 속에서보다는 그의 방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김 사장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붉은 기운이 사진 전체에 퍼져 있기는 하지만 집 담벼락에 비치는 환한 햇살이 사진 전체 분위기를 매우 따듯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아기가 빨고 있는 것은 손가락에 감긴 부드러운 햇살 한 조각일지도 몰랐다. 가난 속에서도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갑자기 김 사장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를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 사진 밖의, 저 젊은 여자의 남편, 아기의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아버지.
   김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5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가 카톡 속의 사진에서 나와 그에게로 걸어왔다.
   그는 환영(幻影)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가 한국을 떠날 때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장하다, 내 아들. 이 애비는 네가 해내리라고 믿고 있었어. 마침내 너는 가족의 가난을 벗겨 버렸어. 나는 네가 우리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꿈을 이루기 위해 너는 잠시 가족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렇지 김 사장? 이 애비가 너를 김 사장이라고 부르니 참, 좋구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주변의 다른 것들(가족도 포함되겠지?)은 모두 잊게 되지. 인간은 말이지, 성취욕에 미치면 미칠수록 오직 그 하나만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지. 이 애비도 한때는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실패했고 너는 성공했구나.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알아다오. 네가 성공을 위해 가족을 잊었을 때도 우리는 결코 너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이 애비가 어떻게 나의 큰아들, 집안의 장남을 잊을 수가 잊겠니. 네가 한 번쯤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지. 네가 한국으로 나와 이 애비가 한 말(“염려들 마라. 아버지 아직 안 죽었어. 너희들 다시 부른다. 그때 다들 다시 모이자”)을 네가 대신 이루어 주리라고 기대했었지. 정말 참 많이 기다렸다.”
   아버지는 말을 끊었는데 조금 슬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김 사장은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 왔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죄송해할 것 없다.
   나는 네가 영영 애비 생각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각해 주는 덕에 너를 찾아올 수 있게 되었구나.
   엄청 큰 대저택이구나. 이렇게 큰 저택에 혼자 있다니…….
   아내가 재작년에 먼저 갔습니다.
   알고 있다. 네 아내한테서 다 들었다. 네가 얼마나 철저히 성공에 매달렸는가를. 네 아내가 이야기해 주더라.
   네 아내가 죽기 전 너는 아내를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어 네 아내와 함께 모롱고 카지노에서 열린 최은희 콘서트에 함께 갔었다고 하더라. 너의 아내는 너무 좋아 자신의 병도 잊어버리고 2시간 동안 열광하는 관객들과 함께 하나가 되었지만, 너는, 한국을 잊어버린 너는, 최은희가 누군지도 모르고, 한국의 가요를 들은 지 5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너무나 지루하고 괴로워, 아내 몰래 그 자리를 빠져나가 혼자 맥주를 들이켜며 블랙잭을 했다고. 네가 한국을 잊어버릴 정도인데 가족이야 오죽하겠니. 그렇다고 네가 주류 사회로 들어간 건 아니었더구나. 오직 실리콘밸리를 들락거리는 상류층 사람들의 고급 차를 고치고 정비하는 일에 일생을 쏟아부어 성공했다고 네 아내가 들려주더구나. 무엇을 하든 성공한 너는 대견하고 장한 내 아들이야. 자랑스럽다.
   아버지.
   그래, 그래도 네 엄마가 죽기 전에 한 번 찾아 주었으면 좋았을걸. 그게 애비로서 조금 아쉽구나.
   아버지.
   말 안 해도 다 안다. 이 대저택에 우리 여섯 식구가 모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 나만이라도 불러 주어서 고맙구나. 다음에는 네 엄마와 함께 오마. 네가 찾아와 주면 더 좋을 게야.
   아버지, 이 사진 속의 젊은 여자와 아기는 누구예요? 엄마 같기는 한데, 혹시 이모?
   그가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방 안에 없었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정원을 내다보았다. 안개가 더 많이 일어서고 있었다.
   아버지.
   그가 아버지를 부르며 창문을 열려고 했을 때 벚꽃 나무 뒤에서 다시 하얀 여우 꼬리가 보였다. 킹킹대는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흰 도포 자락 같은 안개가 나무 옆으로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김 사장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고는 다시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러고는 방 안을 서성거렸다. 방 안의 환한 불빛이 그의 눈을 찔렀다. 눈이 따가워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다녀가시다니, 참, 별일이군. 조금 더 계셨더라면 젊은 여자와 아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김 사장은 정말 젊은 여자와 아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전면이 거울로 되어 있는 호화스러운 벽장을 열었다. 그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가 사진첩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 안에 두었는데…….
   그는 벽장 안을 다 뒤졌으나 사진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사진이, 그가 한국에서 갖고 왔던 사진 몇 장이 너무나 궁금해졌고 그 사진들은 지금 이 순간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다섯 개의 방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머리는 사진 생각으로 꽉 차 있었으므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첫째 방, 둘째 방, 셋째 방, 넷째 방. 다섯 번째 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상당히 지쳐 있었지만 손에 든 셀폰을 떨어트리거나 어디에 놓지는 않았다.
   다섯 번째 방은 아내가 즐겨 와 있던 방이었다. 창가 앞으로 다가서면 정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2층 방이었고 사방이 다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이 마치 고층 빌딩이 즐비한 최첨단 관광 단지 안의 호텔 전망대 같았다. 아내가 죽은 뒤로 그는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오늘, 그것도 한밤중에 이 방에 들어서다니, 그는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방 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의 눈길이 한옆의 호화스러운 책상 위에 서 있는 액자에 눈이 갔다. 그는 다리가 풀린 듯 조금 비틀거렸는데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 진땀이 솟아났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 왔다. 김 사장은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힘들게 의자에 앉아서는 액자를 들여다보았다. 안경을 썼어도 눈이 침침해서 그런지 사진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액자를 집어 눈앞으로 갖다 대었다. 젊은 시절의 아내였다. 배경은 어느 선창가였는데 아내는 날렵한 요트 앞에 서 있었다. 그 보트는 그가 산 두 번째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는 경비행기 한 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비행기는 거의 활주로 위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하늘보다는 바다 위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실리콘밸리의 CEO들 거의 모두가 경비행기와 함께 보트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도 자신의 부를 은근히 과시하기 위하여 보트를 구입했던 것이다. 아내가 요트를 타고 멀리 수평선까지 나가 본 것은 두 번뿐이었다.
   경비행기는 365일 지상에 내려앉아 있었고 보트는 365일 선창에 매여 있었다. 아내는 집과 남편의 직장을 오며 가며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365일 자신의 정비 업소에서 2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벤츠, 아우디, 람보르기니 밑에 누워 있었다.
   아내와 여행을 다닌 기억이 없었다. 대신, 둘이 밤에 돈 자루를 풀어놓고 돈을 세던 기억은 많았다. 아내는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했지만 실리콘밸리는 엘에이의 한인 타운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외톨이가 되어 늘 자신 속에서 지냈다.
   아내가 마지막 소원으로 최은희의 콘서트에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경비행기와 보트 대신에 차를 몰고 다섯 시간 동안 모롱고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마저 아내와 함께 즐기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일어나자 그는 사진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하오.”
   그러자 잊고 있던 낡은 사진 속의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와 아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의 벽장 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사진첩은 그곳에도 없었다. 그는 기운이 빠져 다시 아내의 사진이 놓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너무 힘들고 피곤하여 책상 위로 머리를 눕혔다. 그러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참, 이상하군.
   망구가 누군지는 몰라도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자꾸 나를 부르다니, 무슨 일인가?
   옛 사진은 어디서 난 것일까?
   나에게 보냈다면 분명 나와 관계가 있을 텐데…….
   그는 눈을 감은 채로 가족들을 떠올렸다.
   50여 년 만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떠올랐고 화선이가 보였다. 남동생이 떠오르자 그는 그가 아직도 배를 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으로 들어올 때면 지금도 집을 찾아가는지 궁금했다. 결혼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화선이도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결혼했다는 연락은 없었어. 무슨 일일까? 엄마를 닮아서 무척 예쁜 아이였는데. 그러자 그는 다시 엄마 생각이 떠올랐다. 이 나이에 엄마, 하니까 좀 이상하군, 흠, 그래도 어머니보다는 엄마, 가 더 부르기 좋아.
   엄마.
   그는 마치 자신이 어린 아기인 듯이 눈을 감은 채로 엄마를 불러 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2층 창가로 안개가 피워 올랐다.
   그는 사진 속의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와 아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아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아래로 내려 와서는 잠옷 위에 길고 두꺼운 코트를 걸쳤다. 코트를 걸친 다음 그는 자신의 모습을 슬쩍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제 81세가 된 늙은이가 서 있었다. 몹시 고독해 보였다. 그는 셀폰을 열고 카톡 속의 사진을 다시 켜 들었다. 그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출발하면 모두 다 다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나야 해.
   아버지를 만나서 말씀을 드려야지. 그리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다시 모이도록 해야지. 어머니를 만나서, 못 나가, 못 뵌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해야지. 진구와 화선이도 만날 수 있을 거야. 진구가 말한 대로,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집을 찾아가 몸을 뉘어야지. 얼마나 편안할까.
   한복 입은 젊은 여자가 누구인지 물어보아야지.
   아기도 누구인지 궁금하군.
   그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흠, 망구가 누군지도 만나 봐야겠군.
   그는 책상에서 일어서려다가 다시 앉아서는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펜을 들어 몇 자를 써 내려갔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동생 진구와 화선이 앞으로 보내는 글이었다. 김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살아생전에 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 것을 사죄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사장은 편지를 집어 들었다.
   김 사장이 책상 앞에서 일어서서는 창가로 다가가 안개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나무 뒤에서 꼬리가 보이더니 안개를 닮은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우는 안개를 사뿐히 밟으면 걸어 나와서는 여기저기를 킁킁 냄새를 맡더니 조심스럽게 창문 앞을 맴돌았다. 그러고는 앞발을 들어 그를 향해 손짓했다.
   안개 갓을 쓰고 안개 도포를 입은 한 남자가 안개처럼 소리 없이 부드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김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그 남자의 모습은 아버지였다가 어머니였다가 다시 남동생 진구였다가 여동생 화선이가 되었다가 다시 김 사장 자신이 되어 있었다. 여우가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마치 정원 속에서 안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그를 부르고 있었다.

   김 사장이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안개가 스멀스멀 계단으로 올라서며 그를 감쌌다.
   그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정원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창가 옆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물체가 갑자기 그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비틀거렸다. 김 사장의 가슴으로 뛰어든 물체가 안개처럼 풀어지며 흩어졌다. 그의 가슴 한구석으로 여우가 굴을 파면서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김 사장이 비틀거리며 앞의 벚꽃나무를 의지하려고 했다. 그는 한밤중에 꽃잎을 날리고 있는 벚꽃나무를 짚으며 천천히 나무 아래로 쓰러졌다. 그는 온몸이 잔디에 닿자 그 자리가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사장은 바로 머리 앞에 떨어진 셀폰을 집어 들었다. 다행으로 카톡은 켜진 채로 있었다. 그가 머리를 잔디에 누이면서 카톡을 바라보자 사진 속의 조금 기울어진 듯 보이는 낡은 나무 대문이 활짝 열리고 형!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동생 진구와 화선이가 달려 나오고, 담 아래서 한복을 입고 어린 아기를 바라보던 젊은 여자가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사진 밖의 아버지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가서 안기기만 하면 그녀가 그를 80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사진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기가 입에 넣고 있던 손가락을 빼내더니 앙증맞은 작은 손을 뻗으며 김 사장의 손가락을 잡았다.
   벚꽃들이 소리 없이 비 내리듯 김 사장의 몸 위로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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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홍. 소설가. 현재 ‘시와 사람들’ 회장을 맞고 있다. KALA(Korean American Literature Academy) 운영 및 전임강사로 있다.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전 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제26회 미주한국문학상 시 부문(「저녁을 내다보다」), 제2회 풀꽃 문학상(「바다와 절벽」), 제7회 시와정신 해외문학상 수필소설 부문(「나비, 가을의 환」)을 수상했다.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장목척」)과 시 부문(「올리브 잎 하나 물고 올 비둘기는 어디에 있는가」)에 당선됐다. 저서로 시집 『살아 숨 쉬는 기억』, 『조금은 더 깊어진 침묵 속에서』 1-3권, 단편소설집 『손가락』, 산문집 『장보는 남자』가 있다. 박계상 장편소설 『독도』, 김외숙 장편소설 『엘 콘도르』와 시, 수필, 단편소설 다수를 번역했다. 시애틀 서북미문인협회에서 격주로 시와 수필을, KALA(Korean American Literature Academy)에서 매주 강의한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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