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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티그로

이준호

   가끔 민혁은 온몸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요즘 들어 부쩍 잦다. 사람들과 하는 대화에 짧은 침묵이 끼어들 때쯤,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천정으로 솟아올라서는 여전히 바닥에 있는 자신과 사람들의 머리를 내려다본다. 바닥의 정수리들은 서로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하지만 공중에 떠오른 민혁에게까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호랑이는 어때.”
   “나쁘지 않군.”
   사울이 말했고 첸이 동의했다. 바로 이사회 의결 사항이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처럼 호랑이를 무대에 올리자. 멋질 거야.”
   “마술 쇼에는 호랑이지.”
   두 동업자가 처음부터 의견 일치를 보는 일은 드물다. 호랑이 건이 간단히 결정되었다는 것은 토론토에 도착도 하지 않은 호랑이가 돈이 된다는 뜻이다. 몬트리올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공연 단체가 된 태양의 서커스가 동물을 배제한 공연으로 성공하고 146년 역사의 링링브러더스 서커스단이 동물 학대 논란과 인터넷 게임에 밀려 해체되는 트렌드를 반영해 동물 없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기획안이 머쓱하다.
   민혁은 쉽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호랑이를 쓰는 마술사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여자 마술사라면 더 좋겠네.”
   첸이 사울에게 동의의 미소를 날렸다. 둘의 동업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직원은 없다. 그들의 회사를 거쳐 간 사람들의 근속 연수가 워낙 짧아 이렇다 할 뒷이야기가 쌓일 새가 없었겠지만, 이 철저한 동업자들이 오직 서로에게만 속내를 털어놓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둘에게 직원들은 그냥 직원일 뿐이다. 공식적인 기록은 이십여 년 전 첸이 공동 대표로 합류해 컴퓨터 액세서리 제품 제조와 판매 유통업으로 사업 방향을 선회한 덕에 사울의 의류 유통 회사가 살았고, 닷컴 버블이 터진 후에는 휴대전화와 관련한 이동통신 관련 아이템으로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고 한다. 첸이 가진 중국 쪽 제조 및 소싱 능력과 토론토와 캐나다 전역 유대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한 사울의 거래처 개발 및 관리 능력이 행복한 결합을 한 동업의 성공 사례다.
   “민혁, 당신만 믿겠소. 캐나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멋진 공연을 만들어주시게.”
   사울이 길게 기른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당부했다. 혁 발음이 어렵다며 ‘민! 민!’ 하며 외자 이름으로 만들어버리더니 오늘은 신경 써서 불러준다. 프레젠테이션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첸도 유난히 경쾌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제작 비용은 기본적으로 승인된 예산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집행하시고 일이 진행되는 대로 계속해서 보고해 주시오. 좋은 공연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예산을 조정해 줄 수 있소. 특히 호랑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말이오.”
   “알겠습니다.”
   민혁은 신뢰를 주기 위해 단호하게 대답한 후 회의실을 나섰다. 다음 순서로 대기하던 극장 건설 팀이 주섬주섬 보고할 자료를 챙기며 일어났고, 회의실에서 첸과 사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첸과 사울의 승승장구 20년 동업은 부동산 개발업으로 이어졌다. 무섭게 상승하는 토론토 부동산 가격에 무심할 그들이 아니었다. 처음엔 상가를 낀 소형 쇼핑몰에 투자하여 몇 번 재미를 보며 자신감을 키우더니, 덩치를 키우고 나서는 중소 콘도미니엄 개발 사업에 컨소시엄으로 참가해서 나름 토론토 부동산 개발 업계에서 지명도 있는 업체 수준으로 성장했다. 더 나아가 근래에 드문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온타리오주 복권 공사에서 발표하자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 근방에 있는 낡은 우드바인 경마장을 헐고 일 년 안에 카지노와 고급 호텔을 겸한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변모시켜 관련 일자리만 삼만여 개를 창출한다는 온타리오주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됐다. 이 기회에 사울과 첸은 자신들이 가진 인맥과 역량을 총동원했고, 주 사업권을 손에 쥔 그레이트 캐네디언 게이밍사로부터 단지 안에 설치될 삼백 석 규모의 공연장 건설권과 운영권을 따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카지노 사업에 한 발 들여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연장 프로젝트를 따내자 주말을 이용한 첸과 사울의 라스베이거스 출장이 잦아졌다. 밤 시간대에는 유명 호텔 공연장을 하나하나 살폈으며, 심야에는 첸이 블랙잭 테이블에서, 사울이 텍사스 홀덤 포커로 자신들의 운을 시험했다. 작은 공연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민혁이 채용된 건 두 달 남짓 이어진 라스베이거스 주말여행 끝물 무렵이었다. 주문은 선명하고 간단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호텔 같은 느낌을 주는 공연을 만들어달라. 비용은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도 창의력을 발휘해서 볼거리와 화젯거리를 만들어달라. 주로 작은 커뮤니티 페스티벌에 공연자를 연결해 주고 카리브해 크루즈에 선상 공연을 납품하는 프로덕션에서 10년째 팀장으로 일한 민혁에게는 예상치 못한 큰 주문이었다.
   민혁의 이메일과 전화통은 일주일 동안 쉴 틈이 없었다. 호랑이가 문제였다. 처음 계획은 중국 기예단, 동유럽 댄서, 이제는 한물간 라스베이거스 낮 시간대 출신 마술사를 피날레로 등장시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난데없이 호랑이를 공연에 쓰는 여자 마술사를 구해야 했으니. 다행히도 벨라루스에서 활동하는 엘레나 더 그레이트라는 마술사가 호랑이를 쓴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스케줄도 맞고 보수 수준도 좀 밀고 당겨야겠지만 금액 네고를 거치면 힘들지 않게 맞출 것 같았다. 보내준 프로필과 비디오로 볼 때 강아지와 호랑이를 이용한 마술도 참신했고 다른 장치 마술은 뻔한 내용이지만 노련한 연기가 돋보여 첸과 사울의 승인이 쉽게 떨어졌다.

   온타리오주 정부가 정치적으로 밀어주는 초대형 카지노 호텔 단지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센터 개장 한 달 전쯤이 되자 동업자들의 공연장 건설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민혁의 중국 잡기단과 동유럽 쇼걸들은 오프닝 2주 전에 토론토에 도착하기로 했지만, 마술사 팀은 한 달 전에 먼저 와서 무대장치 설치 점검이며 동물 적응에 시간을 좀 넉넉하게 가지기로 했다.
   마술사 팀이 도착한 다음 날, 엘레나 더 그레이트가 공연 제작 사무실로 들어섰다.
   “민혁. 당신 도움이 필요해.”
   “무슨 일이야? 엘레나.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마술사는 무슨 도움이 필요할까?”
   짐짓 농담을 던졌지만 엘레나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는다. 진한 무대화장으로 숨긴 눈가의 주름살이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과하게 염색한 금발도 그렇게 어울리는 건 아니다. 엔터테이너는 역시 무대에서 가장 빛난다.
   “호랑이가 요즘 먹이를 통 안 먹어. 사실 벨라루스부터였긴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하게 먹이를 조금씩 남기더니 토론토에 도착하고부터는 아예 먹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어.”
   “환경이 갑자기 변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항상 먹던 먹이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
   계약할 때 공연용 동물의 사료는 극장 측에서 제공한다는 조항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호랑이 먹이로 앵거스같이 비싼 소고기보다는 닭고기 위주로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첸에게 이미 추궁을 당한 민혁으로선 엘레나가 조심스레 꺼내는 말이 반갑지 않다.
   “호랑이가 우선 기력을 회복할 수 있게 민스크에서 항상 먹던 필라인 다이어트라는 브랜드의 고기를 초특급으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항공사와 세관, 검역소를 들쑤셔 단 이틀 안에 가지고 온 고향 음식과 엘레나의 밤낮 없는 간호에도 불구하고 민스크에서 온 말라깽이 벵골 호랑이는 며칠을 더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걱정이 되어 간밤에 몇 번이나 호랑이 우리를 들락거린 사울이 결국 한마디 내뱉는다.
   “그놈이 암놈이었어? 15살이면 오래 산 셈이지 뭐. 민혁, 호랑이 평균 수명이 어떻게 돼?” 민혁은 사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고향 집에서 마당에 묶어 키운 누렁이는 몇 살까지 살았던지 기억을 되살려보려 애썼다. 어릴 적 누렁이 앞에 쪼그려 앉아 햇볕 받아 따스해진 등과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던 그때의 손바닥 촉감이 생생하게 살아왔다. 실눈을 뜨고 혀를 약간 내민 채 민혁의 손길을 느끼는 누렁이의 약간 쳐든 머리가 눈에 선하다. 인사유명(人死留名) 호사유피(豹死留皮). 첸은 죽은 호랑이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엘레나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호랑이 가죽을 얻지는 못했다. 캐나다 검역소의 엄격한 감시 아래 이국땅에서 병사한 호랑이는 화장되어 그만 가루가 되었다.
   “민. 그래도 무대에 호랑이는 오르는 거지?”
   나직이 말하지만 사울의 음성이며 눈매가 심상치 않다. 첸도 짧게 자른 스포츠형 머리를 위아래로 쓰다듬으며 민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못한다고 대답하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엘레나는 슬픔에 잠겼지만 프로였다. 민스크, 모스크바, 키이우까지 전화를 돌려 긴급 투입이 가능한 적당한 호랑이를 찾아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동식물의 수출입에 관한 조약 부속서(CITES I)에 속한 한 살짜리 호랑이를 시베리아의 한 동물원에서 1년 후 재수출 조건으로 수입해 오는 것은 그 긴 법률의 이름만큼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다른 호랑이가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공연용 호랑이가 아니고 동물원 전시용 호랑이라서 토론토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훈련에 들어갈 거고, 엘레나 말로는 삼 주 정도면 공연에 올리기에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래요. 극장 개관 공연에 호랑이가 반드시 나와야 해.”
   “그놈은 이름이 뭐라고 하든가.”
   “티그로라고 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인데 러시아말로 호랑이가 티그로죠.”
   첸이 허허 웃었다. 사울도 마음이 풀린 듯했다.
   “엘레나는 경험 많은 마술사지만 노련한 맹수 조련사이기도 하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민혁은 자기에게 다짐하듯 동업자들을 안심시켰다.
   티그로는 시베리아의 한 작은 동물원을 떠나 사육사와 함께 토론토로 도착했다. 아직 한 살짜리지만 어엿한 골격을 갖춘 놈이었다. 우리 안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백수의 왕자라는 위용이 보이는 듯했다.
   “좋은 놈입니다.”
   따라온 사육사 알렉세이는 티그로가 동물원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먹이도 주고 똥을 치워주며 비록 일 년이지만 그와 평생을 동고동락한 사이라고 자랑했다. 시베리아 시골에서 초고속으로 취업 비자를 얻어 캐나다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연신 민혁을 마주칠 때마다 싱글벙글 땡큐를 연발했다.

   우드바인 카지노 센터도 점점 모습을 갖춰 갔다. 이십 층짜리 호텔이 경마장을 감싸 안으며 위용을 자랑했으며, 슬롯머신과 포커 데스크가 끝도 보이지 않게 넓은 호텔 1층 홀을 가득 채워 마치 라스베이거스 어느 대형 호텔 카지노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카지노 센터의 그랜드 오프닝은 이 주 앞으로 다가왔고 극장도 공연 리허설과 마무리 무대장치 설비 공사로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갔다.
   민혁이 데리고 온 중국 잡기단은 태양의 서커스가 선보인 인기 레퍼토리를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첸은 특이하게도 중국 잡기단 공연에서 중국 느낌이 나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캐나다 디자이너를 고용해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 차림으로 무대의상을 교체해 줬더니 만족해했다. 음악은 유럽 집시 음악을 썼는데 텀블링하거나 무대에 세운 봉을 타고 위아래로 오르내릴 때 적당히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쇼걸들은 하늘하늘한 깃털 의상을 입고 활짝 웃으며 리듬에 맞춰 가슴을 흔들며 무대를 오갔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사울이 리허설을 보면서 대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민혁은 최소 내년까진 일할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오늘 무대에서 배운 내용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야 해요”
   마술사 엘레나 더 그레이트의 무대 리허설은 흥미로웠다. 무대 스태프들에게 마술의 비밀을 함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다른 마술사들에게서는 보지 못한 순수함이었다. 어차피 클라이맥스는 호랑이의 등장이었기에 무대 전환은 빨랐고 그래서 무대 스태프와 손발을 잘 맞춰놓는 게 중요했다. 한 번쯤은 텔레비전 명절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은 작은 마술 몇 개는 마지막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다. 여자 연기자가 사각 투명 상자 속에 들어가 오렌지색 손수건을 흔들고 나서 검은 천을 씌운 후 상자를 한 바퀴 돌리니까 상자 속이 오렌지 색깔 옷을 입은 푸들 강아지로 바뀐다. 관객이 웃는 타이밍이다. 지금부터 클라이맥스다. 다시 박스를 천으로 씌우고 한 바퀴 더 돌린 후에 확 벗기니, 상자 속이 ‘어흥!’ 하는 호랑이로 바뀌어 있다.
   “무대로 데리고 나와 같이 걸어야지!”
   리허설을 지켜보던 사울은 실망한 듯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본 것처럼 마술사가 호랑이를 상자에서 나오게 해서 목줄로 묶어 무대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호랑이 데리고 오느라 그 많은 돈을 썼는데 그 효과를 굳이 왜 반감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호랑이를 무대로 데리고 나와서 한 바퀴 돌아야지!”
   첸도 귀밑까지 빨개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단성이 있다. 상식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떻게든 되게 하고 일반인들이 가지 않는 어려운 길을 가면서 그 대가로 돈을 챙긴다.
   “물론이죠. 곧 그럴 거예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엘레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마술사답게 상황을 정리한다.
   “티그로와 나는 지금 사귀는 중이에요.”
   “시베리아 호랑이는 사실 시베리아에 살지 않아요. 서식 지역으로만 본다면 연해주를 포함한 러시아 동북부를 가리키는 아무르 타이거라고 부르는 게 맞죠.”
   “예.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선 흑룡강으로 알고 있는 그 아무르죠? 우리는 저 호랑이를 백두산 호랑이라고 부릅니다.”
   “티그로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호랑이입니다. 가끔 어미가 키우기를 거부하는 새끼가 있는데 그럴 땐 사육사들이 직접 안아서 우유를 먹여서 키우죠. 제가 3시간마다 안고 우유를 먹였어요. 어릴 땐 정말 귀여웠는데 벌써 이렇게 청년이 됐네요.”
   “다행입니다. 계속해서 사람과 유대가 있는 호랑이니 마술사가 조련하는 데 큰 문제가 없겠네요.”
   “물론이죠. 보스, 저도 어렸을 땐 티그로를 목줄로 묶어서 데리고 다닌 적이 있는 걸요.”
   사육사 알렉세이와 나눈 대화는 민혁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 독일인 마술사들은 상대적으로 온순하다는 벵골 호랑이와 공연하다가 변을 당했는데, 사실 수십 년 중 단 하룻밤 불운 아닌가. 사육사에게 호랑이의 성장 배경을 들으니 엘레나가 왜 티그로를 파트너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민혁은 엘레나의 걱정을 두 사장에게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공연용 호랑이는 사육사가 정기적으로 발톱을 깎아주는데 전시용 호랑이를 한 달 만에 공연에 올릴 수 있게 훈련할 수는 있겠지만 발톱을 깎아도 될 만큼 조련이 될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거 아세요, 민혁?”
   알렉세이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호랑이는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좋아해요. 아마 본능적으로 남자보다 덜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타고난 사업가 사울과 첸이 개관을 일주일 앞둔 카지노 단지를 둘러보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니까 호랑이를 호텔 로비에 전시하더라구.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말이야.”
   첸이 재빠르게 생각을 이었다. 함께 호랑이 아이디어를 냈을 때의 바로 그 정겨운 상태다.
   “우리도 호텔 로비 라운지에 커다란 통유리가 있잖아. 마침 바깥은 정원이고 높은 인공 폭포가 자연적으로 안전망이 되고.”
   “거기다 호랑이를 놔두면 장안의 화젯거리가 된다는 거지.”
   “어차피 공연 없는 낮에는 놀리는데 호텔에 전시하면서 돈을 버는 거지.”
   “커피 마시고 밥 먹으면서 창밖의 호랑이를 구경한다, 기막히네!”
   “호랑이도 바깥바람 좀 쐬고 말이야.”
   “라스베이거스처럼 호랑이 기념품도 팔고 하면서 화젯거리를 만들자구.”
   티그로는 과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민혁도 가끔 공연장 아래 설치된 티그로 우리 옆에 가서 알렉세이에게 배운 대로 입술을 튀겨 푸르르 소리를 냈다. 나는 너를 위협하지 않아. 호랑이가 좋아하는 소리라 했다. 그러면 티그로는 민혁의 옆으로 와서 그르르릉거리며 아는 척을 했다. 어디 보자 호랑이 눈은 어떤가? 티그로의 눈은 깊고 착했다. 티그로의 체취는 누렁이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엘레나의 공연 준비도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었다. 엘레나는 평생을 맹수와 함께 공연한 베테랑답게 호랑이는 길들일 수 없는 야생 동물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호랑이와 놀려고 하면 안 돼요. 호랑이가 무대에 서는 일이 재밌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안 돼요. 단지 저와 티그로의 유대를 깊이 하는 게 지금 제가 집중하고 있는 훈련의 핵심이에요. 티그로가 아무리 나를 믿고 따라도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요. 단지 유대가 깊어지는 것뿐이죠.”
   그의 철학은 독특했다. 맹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비록 사랑이 아닐지라도 인간과 맹수 사이에 깊은 믿음이 서서히 싹트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다른 차원의 관계가 되는 것이라는 엘레나의 생각은 민혁을 깊이 탄복하게 하는 바가 있었다.
   엘레나의 요청으로 호텔 로비 정원에 스피커가 달렸다. 평소에 공연에 쓰일 음악을 틀어 티그로가 그 소리에 익숙해지게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동용 우리를 밀고 리프트에 태워서 무대로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사육사 알렉세이가 항상 함께 있기로 했다. 물론 무대 스태프들도 엘레나의 조언에 따라 틈틈이 티그로 우리에 가서 자신의 체취와 음성을 들려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엘레나에 따르면 티그로와 맺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신뢰의 형성이니까.

   모든 준비가 끝났다. 개막 전날 드라이리허설과 드레스리허설을 무사히 마쳤다. 클라이맥스에서 티그로는 투명 상자에서 나와 완벽하게 무대 워킹을 해냈다. 모두가 기뻐했다. 특히 첸과 사울은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연신 브라보를 외치며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중국 잡기단도 쇼걸들도 무대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서로 내민 손바닥을 향해 하이 파이브를 날렸다.
   “미스터 민혁. 정말 수고 많았소. 모든 게 당신 덕분이오.”
   사울이 포옹까지 하며 민혁을 칭찬했다. 첸도 질세라 민혁의 손을 꽉 잡고 한동안 놔주지 않았다. 준비는 완벽했다. 민혁은 지난 10개월 간의 노심초사가 모두 결실을 보는 듯하여 순간 맥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천장으로 떠오르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애썼다. 내일 정식 개막 공연만 올리면 사장들과 민혁의 공연 제작 계약 이야기가 오갈 것이고, 첸과 사울 정도면 같이 일하기가 그렇게 힘든 상대도 아니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몇 번이나 전화벨이 울린 걸까. 새벽 3시였다. 곤히 잠든 민혁을 깨운 것은 호텔 경비 사무소였다. 호랑이 사육사가 손에 피를 흘리며 극장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달려가니 얼마나 마셨는지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무엇보다도 수건으로 감싼 오른손에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렉세이! 무슨 일이야?”
   “티그로가 날 물었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티그로가 감히 날 물었어!”
   지난밤 리허설의 작은 성공이 화근이었다. 알렉세이를 비롯한 몇몇 스태프가 작당해서 늦게까지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술에 취한 알렉세이가 티그로의 밥시간을 놓쳤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낸 알렉세이가 철창 속으로 고기를 던져주기도 전에 티그로가 다가와서 덥석 고기를 물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고기를 든 알렉스의 오른쪽 팔이 그의 온몸을 휩싼 알코올 냄새의 농도만큼 철창 속으로 깊이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알렉세이의 오른손 집게손가락도 고기 살점과 함께 티그로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알렉세이는 비명을 지르며 철창 밖으로 팔을 빼냈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후였다. 영문을 모르는 티그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입 안에 들어온 고기를 씹을 뿐이었다.
   새벽에 민혁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첸과 사울은 이 일이 절대 외부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 고문 변호사를 시켜 병원 응급실 의료진들의 입막음에 나섰다. 이 사고는 전적으로 사육사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지만 회사 차원에서 인도주의적인 조치는 모두 해줄 것이다. 알렉세이의 다친 손을 잘 치료해 주고 보험금 수령과 회사 차원의 보상까지 약속하며, 무엇보다도 그의 신분과 채용 상태는 변함없을 것이다.
   티그로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아침에 소식을 들은 엘레나는 당황했지만 부상당한 사육사 대신 티그로를 호텔 로비 정원에 데리고 갔고 직접 식사도 챙겨주었다. 그렇게 알렉세이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은 정원에 쏟아지는 오후의 햇볕과 교환되었다.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대망의 개막 공연 저녁이 시작되었다.

   토론토 시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대형 건축 프로젝트인 만큼 온타리오 주지사와 토론토 시장, 온타리오 복권공사 사장을 필두로 도시의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대거 카지노 센터 개관식에 참석했다. VIP들이 호텔과 카지노 시설을 둘러보고 공연장으로 이동해서 공연을 본 후 연회장에서 만찬을 즐기는 것이 개관식 공식 행사 순서였다. 공연은 객석을 꽉 채우고 시작되었다. 쇼걸들이 화사한 깃털 의상과 몸매를 뽐내며 춤을 추고 중국 잡기단이 중국풍을 뺀 세련된 아크로바트 묘기를 선보이며 객석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울과 첸의 얼굴에 여전히 긴장감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과 한 줄에 나란히 앉아 공연을 즐기는 신분 상승의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미션 임파서블〉 주제곡이 흐르며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아름다운 여자가 상자 속으로 사라지고, 푸들 강아지도 사라지고, 투명 상자 속에서 티그로가 나타났다. 객석은 탄성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 엘레나가 티그로의 목에 목줄을 매어 무대로 데리고 나왔을 때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르며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그들에게 쏟아졌다. 티그로는 여느 때처럼 늠름하게 무대를 걷지 않고 먹이를 향해 몸을 아주 많이 낮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무대를 기듯이 걸었다. 분명히 그는 무대 가장자리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양손으로 매달리다시피 목줄을 당기며 티그로가 객석 쪽으로 가는 것을 막았지만 그도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티그로는 무대 끝에 다다라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순간 객석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 앉은 한 남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남자의 목에서 선혈이 터져 나와 공중으로 솟구쳤다. 객석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출구를 향해 사력을 다해 뛰었고, 티그로는 가볍게 단 두 번 도약만으로 가장 움직임이 많은 사람을 쫓아가 단번에 숨통을 끊어놓았다. 티그로의 움직임은 비호같이 빨랐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무력할 뿐이었다. 발톱을 깎지 않은 앞발은 거대한 도끼가 되어 눈앞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파괴했다. 몸통이 터져 나가고 머리통이 파열하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모두 순간적으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흩뿌려졌다. 극장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의 비명을 삼켜버렸다. 닐 암스트롱의 음성은 그럼에도 감미롭게 객석을 감싸고 있었다. 티그로는 지치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 죽였다. 맨 앞에 앉았던 첸과 사울은 미처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둘 다 목덜미를 물려 숨을 거뒀고,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티그로의 희생양이 되었다. 무대 위의 엘레나는 ‘오마이갓, 오마이갓’을 외치며 울부짖었고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티그로는 다시 무대로 돌아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마술사의 목덜미를 물고 공중으로 흔들어버렸다. 엘레나의 몸과 피가 사방으로 바람개비처럼 소용돌이쳤다. 조명을 받은 피는 무대에 빨갛게 흩뿌려져 내려앉았다. 티그로는 재미있는 유희인 양 다시 객석으로 뛰어내려 아직 극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무차별 물어뜯었다. 도망치다 바닥에 쓰러진 민혁의 얼굴 앞에 티그로의 머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티그로가 고개를 갸웃하며 민혁의 눈을 바라봤다. 티그로가 딱히 무슨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티그로의 털을 타고 사람들의 핏물이 옆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민혁은 그 핏물 방울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티그로는 망설이지 않고 민혁의 목을 물었다. 순간 민혁은 그에게서 고향에 두고 온 누렁이 냄새가 아주 잠깐 났다고 생각했다.
   탕탕탕탕탕탕. 그렇게 여섯 번 소리가 난 후 티그로가 풀썩 쓰러졌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 티그로의 몸이 천천히 극장 천장을 향해 떠올랐다. 사울과 첸과 민혁과 엘레나와 알렉세이의 몸도 공중에 떠올랐다. 중앙의 유력한 정치인도 떠오르고 재계의 실력자도 떠올랐다. 모두 환한 표정으로 공중에서 커다란 원을 만들며 손에 손을 잡았다. 거대한 인간 띠가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티그로는 그 원 가운데 떠올라 배를 위로 향하며 재롱을 피웠고 사람들은 웃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명은 무지개색의 무빙 라이트로 변하며 모두 공평하게 비추었고 그들의 발아래에는 노래 가사처럼 초록 나무와 붉은 장미가 만발했다. 사람들은 푸른 하늘을 날며 흰 구름 속을 지나며 아름다운 세상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마치는 무대막은 끝내 내려가지 못했다.

필자 약력

캐나다 우드브리지 거주. 캐나다 한인 문인협회(KCWA) 소설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미주 중앙일보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수상(「무빙워크」), 2015년 제17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수상(「고요한 돈강」), 2017년 제38회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 소설 부문 가작 수상(「좀비 아포칼립스 서바이벌 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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