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제2회 《너머》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조립 생활」, 송지영)
2024. 09. 02 00:00
혈압약을 타러 온 손님이 내게 소리를 지른다. 내가 이름을 몇 번이나 되묻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혈압을 오르게 만든 탓이다. Je suis désolée.(죄송합니다), 여러 번 사과해 봐도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프랑세(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내가 이름을 자꾸 되물은 이유는 프랑스어가 그 정도까지 부족해서는 아니다. 다만 주문한 상품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조금 전에 받고 나서 어떻게 하나, 자꾸 생각하느라 그랬다.
내가 보름 전에 주문한 상품은 책상이었고 분명히 내가 집에 있는 날로 배송일을 적어 주문했지만, 퀘벡의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 그 사이트 역시 나를 배반한 모양이다. 책상이 예상 배송일에 도착한다면 나는 기사에게 반품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책상은 현관문 앞에 방치되어 있다. 거센 눈보라를 맞으면서.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티보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 책상에 관해서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티보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으나 이제 방법이 없다. 반품을 하지 않으면 집까지 들여야 하므로, 반품하려면 우체국까지 가져가야 하므로, 어느 쪽이든 티보의 물리적인 힘이 필요하다.
마고는 내가 데리러 갈 테니, 바쁘지 않다면 당신이 집으로 가서 책상을 현관 안으로 들여놔 줄래?
Oui(그래), 하는 답장은 늦지 않게 도착한다.
가드리(어린이집)에서 마고를 만나 차에 태운다. 마고는 예상치 못한 마망(엄마)의 등장에 기뻐하며 안겼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네 살과 서른다섯 살의 묘한 신경전에 얼결에 동승한 거미가 질식할 판이다. 저 애는 두 달 전부터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걸면 티보에게로 달려가 그의 뒤에 숨고, 내게 할 말이 생기면 티보에게 프랑스어로 속삭여서 티보가 내게 전달하는 식으로 우리는 간신히 소통을 이어 나간다. 다행히 내가 프랑스어를 할 때는 저 애도 대답을 한다. 이때다 싶어 기습적으로 한국어를 하면 다시 화장대 밑에 설치한 자기의 소꿉놀이 집으로 도망가기를 반복. 그런 날이면 나는 마고에게 본뉘(잘 자), 하고 인사할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만다.
상담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다중 언어―나와 티보는 주로 영어로 대화하니까―환경에 노출되었어도 기질에 따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마고인 것이다. 마고는 프랑스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엄마의 나라인 한국도 아빠의 나라인 프랑스도 아닌 캐나다의 퀘벡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정했다.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은 아무리 그래도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나머지 불완전한 두 언어로 인해 모국어마저 위협받는 심정을 나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럴 수는 없다. 하원 후의 신경전을 몇 분쯤 이어가다가 나는 매일 그렇듯 결국 그 애에게 져 준다. 꼬몽 에테 통 주르?(오늘 어땠어?) 그러면 그 애는 가드리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읊는다.
책상을 산 데에는 마고의 지분이 절반쯤 된다. 나는 지금 네 살짜리와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 프랑스어를 할 수 있지만, 아이는 곧 나를 능가해 버릴 것이다. 그때도 저 애가 한국어로 말하기를 거부하고, 나 역시 그 수준에 맞는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저 애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건 늘어 가는 티보의 한숨. 정착 초기로부터 오 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와 전쟁이 차례로 발생하면서 물가는 두 배로 올랐고, 티보가 일하는 업계 기업들도 분기마다 수십 명씩 해고를 감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책상이 필요하다. 프랑스어 중고급 과정을 공부해서 내 아이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저 애를 낳기 전에 입학하려다가 취소한 세젭(한국의 전문대 같은 교육 기관)에 등록해서 지금 같은 캐시에르(카운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파마시 테크니시엔느(약사 보조)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도 이 질퍽이는 나라에 조금은 정을 붙여 볼 수 있을 거라고, 이곳이 내 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무엇보다 나를 되찾고 티보가 이고 있는 짐을 덜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주 변기 위에 앉아 임신 테스트기에 뜬 두 줄을 확인한 후에는 간신히 잡았던 마음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세 번째 테스트였지만 이전의 테스트 두 번과 결과가 같았다.
*
집에 가 보니 티보가 책상이 든 박스를 이미 거실로 옮겨 두었다. 저녁으로 티보 표 그린 페스토 파스타를 먹고, 그가 마고와 놀아 주는 동안 나는 나머지 집안일을 한다. 마고를 재우고 나와 거실 소파에 축 늘어진 티보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묻는다.
어셈블리(조립), 언제?
나는 빨래를 마저 개며 대답을 유보한다.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책상을 반품할지 말지, 그러니까 임신을 중절할지 말지. 더 나아가 티보에게 임신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지까지도. 나는 저녁 내내 머뭇거리다가 티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와인을 한잔 따라 마신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멈출 기미가 없다. 나는 거실 불을 끄고 바닥에 앉아서 텔레비전 섬광에 따라 여기저기 조명되는 티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영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이미 탈모가 있었지만 칠 년이 지난 지금은 정수리에 성기게 났던 머리카락마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잔주름이 늘었고 얼굴을 찡그리며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 티보는 내가 일하던 카페 건물 육층에 자리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마다 카페라테와 머핀을 사러 왔다. 워킹홀리데이 오 개월 차에 그렇게 프랑스어 억양 짙은 영어는 처음 들었다. 주문받을 때 이름을 물었더니 티보라기에 나는 그의 컵에 ‘Tibo’라고 적었다. 나중에 다시 온 그가 자기 이름 스펠링을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T.H.I.B.A.U.L.T.
티볼트?
티보.
아무리 읽어 봐도 티볼트인데요.
그가 와하하 웃으며 말했다. 티볼트(T-bolt)도 유용한 이름이죠. 조립할 때 말이에요. 나는 그의 농담을 매번 이해하지 못해서 그게 왜 웃긴 거냐고 끈질기게 물었고, 그러면 티보 역시 집요하게 설명해서 내게 농담의 메커니즘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카페 밖에서도 이야기를 지속하며 서로의 모국어 몇몇 단어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고 급기야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Don’t(영어) + 왜 그래(한국어) + Moi(프랑스어) = 나한테 왜 그래, 라고 묻지 마.
: 내가 티보에게 짜증 났을 때 진짜 왜 그래? 하고 물으면 티보가 받아치는 말.
2. Don’t be(영어) + a mauvaise(프랑스어) + zombi(영어/프랑스어) = 분위기 망치지 마.
: Mauvaise ambi(모베즈 앙비)는 프랑스어로 나쁜 분위기라는 뜻인데, 내가 앙비를 좀비로 잘못 들어서 그렇게 조어되었다. 좀비 되지 마, 하고 한국어로 말할 때도 있다.
한국어로든 프랑스어로든 영어로든, 온전한 하나의 언어로 전달되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가 창안한 언어로는 그런 효과를 잃었다. 에어백처럼 충격 감도를 덜어 주어 나와 티보는 충돌하지 않았고, 오히려 웃음이 터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고는 우리의 언어를 재밌어하지 않는다. 어설픈 언어를 주워 먹고 어설프게 자라는 일은 사절이라는 양 입을 다물어 버린다.
원래의 계획대로 영국에 자리 잡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브렉시트가 발효되고 영국에 머물 방법이 없어진 티보는 부랴부랴 캐나다로 눈길을 돌렸다. 프랑스어 구사자의 이민이 비교적 쉬운 퀘벡 주로 가자는 말에 나는 선뜻 그러자고 했다. 그때 나는 어차피 어디를 가든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처지였다. 삼 년 걸려 합격한 공무원의 경직된 일상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아 일 년 반 만에 때려치우고, 일단 조금 쉬자 싶어서 선택한 영국행이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영어는 생각보다―공무원 시험 준비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다―금방 늘었고, 그 때문인지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티보의 경력이 어느 정도 차면 영어권 주로 옮기자는 게 오 년 전 의논의 결과였다. 그러나 주 이동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고, 영어마저 거부하는 마고 때문에 그 계획은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나는 다시 텔레비전 빛에 간간이 반사되는 티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캐나다로 이주해서 코로나19를 겪고 마고를 낳고 사는 동안, 나는 퇴행했고 티보는 늙었다. 우리의 시간의 격차를 그보다 더 벌어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티보에게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말한다. 티보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서는 스마트폰으로 산부인과를 예약한다.
*
사람들은 내가 약국에서 편하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겨울의 퀘벡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고, 그들은 내가 약을 받으러 올 때가 되었다고 전화를 걸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또 가끔은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욕을 하느라 전화를 끊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그렇게 전화를 오래 붙들고 있을 때마다 카운터를 보던 사브리나가 수화기를 뺏어서 끊어 버린다.
헨테 로카(미친 인간들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그녀는 이곳에서 나를 뜨겁게 대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평소에 사람을 대하는 온도보다 훨씬 뜨겁기에 처음에는 겁을 좀 먹었지만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약사와 약사 보조, 아르바이트까지 다 합쳐 총 일곱 명이서 일하는 이 대형 약국에서, 내가 잘못 들었을 때 다시 말해 달라고 웃으면서 부탁할 수 있는 사람도 사브리나뿐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서 칠 개월씩이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사브리나가 이야기한다. 어제 네 대타를 할 때 어떤 손님이 왔었는데 술 냄새를 폴폴 풍기는 데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어. 무시유(손님), 일단 이름부터 알려 주고 말하세요. 그랬더니 뒤에서 지켜보던 손님이 영어로 그러더라. 경비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인종차별적인 말로 협박하고 있어요! 사브리나는 자지러지게 웃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안전을 찾아서 퀘벡에 왔으므로 이곳에서만큼은 위험한 일이 자신에게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위험이 사람들 자신도 모를 정도로 마음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다가 특정한 순간 손쓸 틈도 없이 발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퀘벡으로 오자마자 코로나19가 확산되었고, 나와 티보는 육 개월가량 엄격한 통금을 지키며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규제가 조금씩 풀리면서 혼자 잠깐 쇼핑하러 나간 적이 있는데, 내 앞에 동양인이 아닌 두 명, 그 앞에 동양인 한 명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동양인이 아닌 두 명이 그들 앞의 동양인을 차도 쪽으로 밀친 후 욕을 하고 달아났다. 나는 너무 놀라서 넘어진 동양인에게로 달려가 도와 달라고 소리쳤으나, 행인들은 우리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가던 길을 갔다. 그 후로 다시 혼자 외출할 수 있기까지는 코로나19 규제가 종료되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브리나는 콜롬비아에서 이민 온 지 이 년이 되었고,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산다. 그녀는 나에게 매번 부럽다고 말한다. 남편의 모국어가 프랑스어니까 어려울 일이 없겠다며. 나는 그 말에 그렇다고, 아니라고 함부로 대꾸하지 않는다. 프랑스어와 영어 모두 서툴렀던 사브리나와 그녀의 남편은 분명히 지난 이 년간 엄청나게 분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분투는 두 사람에게 대등했을 테지.
나와 티보 역시 이곳에서 외국인이지만 사브리나의 말대로 티보는 언어 때문에 차별받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언어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티보는 많은 일들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나도 조금이라도 분담해 보려고 했지만, 퀘벡 정부 기관에는 영어를 하는 직원이 턱없이 모자라다. 영어 서비스 내선 연결이 되려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티보가 전화를 걸고 서류를 작성하고 따져 묻고 싸워 얻어 냈다. 내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더라도 티보를 대동해야 했고, 마고의 가드리에 일이 있을 때도 주로 티보가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났다.
복에 겨운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말이라도 해보고 싶다.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어. 매일 빚진 기분으로 살거든. 하지만 역시나 그러지는 못하고 일이 끝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전날 산부인과에서 받은 처방전을 사브리나에게 내밀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오, 몽디유(맙소사).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
책상이 포장된 상자를 바닥에 눕히고 모서리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커터 칼로 긋는다. 그 안에는 책상의 상판과 서랍이 될 널판들과 조립에 필요한 나사들이 들었는데, 구분하기 쉽도록 알파벳 스티커가 붙어 있다. 나는 설명서를 펼쳐 들고 순서에 따라 그것들을 분류해 놓는다. 티보에게 배운 방식이다. 한국에서 가구 조립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곳에 이민 와서는 익숙해져야만 했다. 배송료도 만만치 않은데 조립 비용까지 지불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다행히 티보는 프랑스에서 조립을 자주 해보았다고 했다. 티보를 따라서 부품들을 맞대어 나사를 박고 조이다 보면 가구의 한 부분이 완성되어 있었다. 아직 가구의 역할을 하려면 한참 먼 허술한 부분끼리 다시 맞대고, 한 명이 체중을 실어 붙들면 또 다른 한 명이 나사를 조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의 손에서 식탁, 책꽂이, 침대 등이 차례로 탄생했고, 그것들은 마고가 태어나고 이사 온 지금 집에서도 어느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며 제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조립 전 주의 사항은 대부분 비슷하다.
1. 조립하기 전 구성품이 모두 있는지 확인하시오.
2. 바닥이 평평한 곳에서 조립하시오.
3. 우선 수동 작업을 하고 마지막 상부 결합까지 마친 다음 필요한 경우에 공구로 조이시오.
나는 서랍 세 개를 손쉽게 완성한 다음, 전날 멨던 가방 안에서 또 다른 설명서를 꺼낸다. 그것은 내게 해체 과정을 위한 설명서처럼 보인다. 처방받은 약은 총 다섯 알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하나는 계산이 끝나고 사브리나가 건네준 물과 함께 그녀 앞에서 이미 삼켜 버렸다. 마음이 편안한 곳에서 복용하라기에 그렇게 했다. 임신이 더 진행되지 않게 막아 주는 약이라고 그 전날 방문했던 산부인과에서 들었다.
마고를 가졌을 때도 주기적으로 내 배 속을 검진해 주었던 그 의사는 퉁명스럽지만, 그것이 집과 가까운 워크인 클리닉이 아닌, 그 병원으로 굳이 찾아간 이유이기도 하다. 퀘벡 주에는 패밀리 닥터 제도가 있고, 산부인과의 같은 전문의 역시 패밀리 닥터의 진료 요청서가 있어야만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이민자들은 패밀리 닥터를 구하려면 삼 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마고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티보는 반경 3킬로미터의 산부인과에 모두 전화를 돌려 보았고, 모두 거절당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중 한 곳에 직접 찾아갔는데, 안 된다는 접수원과 티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점심시간이 끝나 진료실로 돌아오던 그녀가 두 사람을 중재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티보 말고 나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려 주었다. 한 달 뒤에나 오라고 했어도 우리는 메르시, 메르시, 감사 인사를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방문할 때마다 피곤해 보이고, 좀처럼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다. 닥터 샤르마. 인도계 이민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강한 악센트를 곁들인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내가 영어로 말하면 역시 영어로 대답해 주는데, 프랑스어보다 훨씬 부드럽게 들린다. 티보는 그녀가 불친절하다고 불평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라서, 수식어구를 사용할 여유가 없어서 발생하는 경직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가 초음파를 해야 한다고 할까 봐 떨리는 목소리로 미페프리스톤(임신중절 약)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임신 6주 차의 태아는 콩처럼 생겼지만 심장이 팔딱거린다고 한다. 마고를 가졌을 때는 10주 차가 되어서야 초진을 보았으므로, 나는 그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녀는 나를 한참 빤히 보다가 임신 테스트를 몇 번 해보았냐고 묻고 간호사에게 보냈다. 나는 소변검사 후 한 시간을 기다린 다음 임신중절 약을 처방받았다. 그녀 역시 내 얼굴을 보기만 해도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설명서에는 닥터 샤르마의 말대로 48시간 내로 다음 약인 미소프로스톨을 사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미페프리스톤으로 태아의 성장을 막았으니 이제 그것을 자궁에서 분리할 차례다.
1. 방광을 비우고 손을 깨끗이 씻으십시오.
2. 편안한 곳에 누우십시오.
3. 미소프로스톨 네 정을 손가락을 사용하여 한꺼번에 최대한 질 안쪽으로 밀어 넣으시오.
나는 책상을 조립하려고 깔아 둔 카펫 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티보와 함께 쓰는 침대보다는 이곳에서 그 절차를 따르는 게 마음이 편하다.
편하다, 편하다…….
편하다고 되뇌는데 눈물이 카펫 위로 떨어진다. 그제 약국에서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할 때까지만 해도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굳건했는데 어째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를 이대로 배 속에 보관하다가 자리를 잡고 나로서 기능할 수 있을 때,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만 예전처럼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이 세상으로 데려오고 싶다. 마고를 가졌을 때는 적어도 그 정도의 양분은 공급할 수 있었다. 가끔 좌절이 끼어들어도 일관적인 낙관이 가능했다.
지금이라도 티보에게 전화를 걸까. 하지만 태아를 도로 성장시킬 수도 없는 마당에 그에게 알려서 좋을 게 없다.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볼까. 엄마는 나를 자주 보지 못해도 네가 그곳에서 티보와 행복하기만 하면 그걸로 됐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므로 전화를 걸 수 없다. 자주 보지 못하는 딸이 행복하지도 않은 순간을 공유할 수는 없으므로. 아니면 사브리나에게라도……. 우리는 약국에서만 대화를 나눌 뿐, 사적인 통화를 나눠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 미소프로스톨이 든 팩을 들어 알을 하나씩 눌러 빼낸다. 폭발물의 스위치를 누르듯 조심스럽게. 일전에 질정을 삽입할 때 썼던 피스톤 도구를 이용하여 미소프로스톨 네 정을 최대한 안으로, 안으로 밀어넣는다.
4. 삼십 분간 그대로 누워 있으시오.
마지막 주의 사항을 지키고 나면 마고를 데리러 가드리로 갔다가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일어날 네 번의 폭발 전까지 내가 온전하게 해낼 수 있는 역할이다.
*
휴무인 다음 날이 지나고 다다음날인 오늘까지 나는 약국으로 출근할 수 없어서 사브리나에게 대타를 부탁한다. 약을 먹고 네 시간쯤 지났을 때 배가 쑤시듯이 아프더니 금세 하혈했다. 생명체가 되지 못한 임신 조직이 떨어져 나가고 난 뒤, 신체적인 고통은 예상했던 것보다 견딜 만했지만 하혈이 옅어질수록 파고드는 상실감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하며 더 이상 덩어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욱더 조립에 골몰했다.
서랍 세 개가 들어갈 함을 완성했을 즈음 사브리나에게 전화가 온다.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서 받았더니 꼬몽 사바?(괜찮아?) 하고 묻는다. 나는 괜찮지 않음에도 입에 익은 사바(괜찮아), 라는 대답을 자동으로 출력한다. 사브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않다가 이번에는 마고의 안부를 묻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고가 한국어도 영어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해버린다.
치키타(짓궂은 여자아이를 이르는 스페인어).
그럴 때는 네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아야 한다고 혼쭐을 내주라고 사브리나는 열을 낸다. 나 역시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다만 그 애가 한 언어 체계를 웬만큼 익힐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적어도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그 자리에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지금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발생하는 분노는 아직 부족한 프랑스어로도, 점점 어눌해지는 영어로도, 또 애초에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못할 한국어로도 전달되지 못해서 자꾸만 내 안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프랑스어, 영어로 대꾸할 문장을 주기적으로 외우기도 하지만, 분노는 그럴수록 무게를 늘려 간다. 나는 마고가 즉석에서 제조한 욕을 실컷 뱉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금방 되돌아오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마고의 영어와 한국어 거부는 내게 불안을 안긴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거부할까 봐. 어떤 언어든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듣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이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노력에 따라 그의 의도는 백 퍼센트로, 혹은 영 퍼센트로 전달될 수 있다. 그것을 간과했기에 나는 이민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 새 언어를 익히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티보처럼 내 말을 이해할 의지를 지녔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사브리나에게 대타를 해줘서 고맙다고 하니 그녀는 오히려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취업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콜롬비아에서 그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그 경력을 퀘벡에서도 이어 나가려면 별도로 필요한 절차들이 많았다. 이 년 전에 사브리나는 새 정착지에서 필요할 물건을 전부 챙겨 왔지만 사브리나를 온전한 사브리나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들은 여전히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사브리나에게 묻는다.
넌 여기서 뭐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
프루아드(추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이월의 콜롬비아 평균 기온이 20도야. 퀘벡이랑 무려 40도가 차이 난다고! 그렇게 말하며 깔깔 웃더니 한국의 겨울 평균 기온을 묻기에 한국도 영하까지 내려갈 때가 잦다고 말한다. 그럼 네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추위가 아니겠네. 나는 대답한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추워져. 무엇을 둘러도 따뜻해지지 않고 몸이 덜덜 떨려.
전화를 끊고 조립을 계속한다. 함에 서랍을 하나씩 굴려 넣어 보는데 마지막 서랍이 들어가지 않는다. 도로 꺼내서 한 면 한 면 살펴보니 서랍 뒤편에 해당하는 널판을 잘못 조립했다. 서랍을 바닥에 두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눌렀다 떼니 앞뒤로 까딱인다. 스크루 드라이버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분해해 보려고 하지만 너무 꽉 죄어 놓은 탓에 나사가 돌아가지를 않는다. 나는 여러 번 시도하다가 이내 스크루 드라이버를 힘껏 던져 버린다. 잘 견디다가도 그렇게 별거 아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린다. 무례한 손님에게 대꾸할 말을 장전한 채로 아르바이트에 임했는데 웬일로 별일 없이 끝나고, 퇴근길에 들른 마트에서 친절한 점원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그에 상응하는 친절한 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어버버하며 아무 대꾸도 못 할 때. 그런 날에는 대문 앞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주저앉아 한참을 울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 나는 잘못 조립한 서랍을 또 한 번 손가락으로 눌렀다가 떼 본다. 우리의 첫 집에서 티보와 한창 조립을 하던 시절, 만드는 가구 족족 이처럼 수평이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의 조립 솜씨가 형편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쓰러진 병이 자꾸만 굴러가는 것을 보고 그 집의 바닥이 원래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들은 엄마는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사냐고 놀랐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식사하다가 내가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면, 티보는 의자를 달그락거리며 말을 타고 달리는 시늉을 해서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렇게 터진 폭소가 집안을 부유하다가 수평이 맞지 않는 가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납작 엎드리는 것 같았고, 그 덕에 평탄해진 식탁에서 손을 맞잡는 우리는 제자리를 찾은 또 하나의 조립된 가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세 식구가 사는 집의 바닥은 마고의 흔들 목마마저 좌우 수평이 딱 맞을 정도로 평평하다.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구를 이용할 때마다 그 흔들거림을 느끼며 생활했을 것이다. 이제 틈새를 메워 줄 소리는 그때만큼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폭소가 발생하거나 도달할 틈이 없다.
던져 버린 스크루 드라이버를 주워 와 나사를 다시 풀어 보지만 잘되지 않는다. 게다가 자궁의 경련이 점차 심해져서 자주 쓰는 물건만 채워 넣은 두 서랍을 바닥에 둔 채 그 앞에 드러눕는다. 진통제를 찾아 먹어야지, 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만다. 눈을 떴을 때는 마고가 태블릿으로 파스팍투(교육용 어린이 프로그램)를 시청하고 있었고, 티보는 바로 앞에 앉아서 조립 설명서를 읽고 있었다.
왔어? 하고 물었지만, 티보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린이용 헤드폰을 챙겨와 마고를 부른다. 마 셰리, 네 방에 들어가서 보지 않을래? 마고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제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티보에게 내일쯤 책상 조립이 완료될 것 같다고, 마지막에 상판만 같이 올려 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티보는 또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더니 반문한다.
내 도움이 필요하긴 해?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묻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그의 얼굴만 빤히 바라본다. 이윽고 티보가 나에게 설명서를 건넨다. 그것은 조립 설명서가 아니었다.
Please tell me you didn’t take them(제발 아니라고 해줘).
*
내가 티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은 뭘 믿고 외국인과, 그것도 제3국에서 살겠다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누구에게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는 사랑의 깊이에도 기간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티보를 너무 믿지 말라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나는 티보도 티보지만 우리의 언어를 믿었다. 그것은 모국어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결속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나를 믿었다. 무모하고 낙천적인 것이 나의 천성이므로, 어딜 가서도 그런 천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그러나 이민 이 년 차에, 나에 대한 믿음은 나를 보기 좋게 배반했다. 내가 한창 외출을 두려워할 때 티보는 말했다. 나랑 같이 나가면 괜찮아. 하지만 어디를 가나 마스크를 쓰고 줄을 서는 게 일상이었던 그때, 나는 내 앞뒤에 섰던 사람들이 유독 멀찍이 떨어져 섰던 광경을 기억한다.
그리고 티보와 싸우고 있는 지금은 우리의 언어에 대한 믿음이 나를 무너뜨린다.
티보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의 언어로 따져 묻는다. 어떻게 even without saying a word(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도 그에게 우리의 언어로 변명한다. 뭐가 peut changer if I had told you(말한다고 결정이 달라졌겠어?)? I have jamais pressured you about 돈(내가 언제 돈 벌라고 너를 압박한 적 있었어?). 아니, mais your sigh tells me(아니, 하지만 네 한숨이 말해 주지). 티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집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Tu sais quoi? I think you are preparing to be alone.
Alone, 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가 될 수 있다. 1. 혼자서 2. 스스로 3. 외로운. 나는 스스로라는 말을 실현하고자 그토록 애쓰는 중이었으므로, 티보의 의도(혼자가 되려고, 그러니까 우리를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 같아)를 왜곡하고 만다.
Isn’t it obvious(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게 대답했을 때 티보는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모국으로 직행한다. Putin, tu--- jamais---(빌어먹을, 너는--- 도대체---). 나는 몇몇 단어를 제외하고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나 역시 나의 모국으로 뒤도 안 보고 되돌아가 버린다. 그의 한국어는 내 프랑스어보다 엉성하므로 거의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가 분리되어 공중에서 난무하는 동안 나는 기시감을 느낀다. 사람이 차도에 넘어져 있어도 우리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지는 행인들. 내가 말을 걸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마고. 평화가 깨지는 찰나에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이세계인으로 전락하고, 나는 이 집에서 철저하게 고립된다.
*
이틀 뒤 마고와 함께 거실에 들어섰을 때, 얼추 모양을 갖춘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약국에서 일하는 동안 티보가 상판과 다리, 그리고 서랍이 들어갈 함까지 조립해 두고 외출한 것 같았다. 서랍 두 개도 자리를 찾았고, 마지막 칸 서랍만이 그 앞에 놓여 있다. 나는 화장실에서 마고의 손을 씻기면서 표정을 살핀다. 이틀째 아무 대화가 오가지 않는 집에서 그 애는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며 함께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다. 그런 무언이 아이에게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건 나도 어린 시절에 경험해 봐서 잘 안다. 마고를 먼저 내보내고 변기 위에 앉아 고민한다. 마고를 위해서도 티보의 제스처에 어떤 대답을 내놓기 위해서도 정적을 깨뜨려야 한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속옷에 여전히 묻어나오는 혈흔을 발견한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마고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마고가 보이지 않는다. 마고, 하고 부르자 위, 하는 대답이 거실에서 들려온다. 그 애는 빈 서랍 칸에 들어가 엎드린 채로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다. 마고의 인형과 장난감들도 이미 그 애 주변에 빼곡하게 정렬되어 있다.
Je veux faire un jeu de rôle de papeterie(문구점 놀이 할래).
나는 서랍 두 개를 꺼내 그 애 앞에 나란히 놓아 가판대를 만들어 준다. 마고는 문구점 상인이 되어, 줄 세운 인형 손님들에게 물건을 하나씩 판다. 나는 식탁에서 의자를 끌어와 그 옆에 앉는다. 종이에 ‘Margot Papeterie(마고 문구점)’라고 큼지막하게 적어 책상에 붙여 준다. 그러고는 마고 쪽으로 턱을 괴고 앉아 그 애가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그 애는 내가 여전히 어려워하는 악썽 두 가지―é와 è―를 명확히 구별하여 발음해 낸다. 눈을 감고 상인 마고와 손님 마고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순탄하게 굴러갈 것만 같다.
Madame(손님), 하고 재차 묻는 소리에 눈을 뜬다. 마고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Qu’est-ce que vous voulez(무엇을 찾으시나요)? 혼자 하는 대화에 싫증 났는지 웬일로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손님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대충 건너다본 서랍 속 물건 중에서 채도가 가장 높은 빨간 딱풀이 눈에 띈다. 풀 주세요, 하고 말하려는데 풀이 프랑스어로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석에 처박아 두고 방치한 물건도 아니고, 마고와 종이접기를 할 때마다 자주 쓰는 것인데 어째서……. 나는 Bain(그, 그……) 하며 마고와 눈을 마주친 채로 한참 동안 말을 더듬는다.
머릿속은 ‘풀’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남긴 채 새하얘진다. 하지만 ‘풀’이라고 말하면 내게 오랜만에 말을 건 마고가 또다시 입을 닫을 것이다. 이제는 복통까지 느껴져서 배를 감싸 쥔다. 스스로 폭파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려고 안 돼, 여기 마고가 있어, 마고가 있어, 하고 눈을 힘주어 감는다.
그때 마고가 Voulez-vous ça(이거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눈을 뜨고 마고를 본다. 그 애의 손에는 빨간 풀이 들려 있다. 그 애는 그것을 내게 건네주려고 팔을 최대한 길게 뻗고 있다. C’est un bon choix, Madame(잘 선택하셨어요, 손님), Même ma mère aime ça(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물건이거든요)!
누군가 어째서 한국이 아닌 곳에 살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한 번도 진실하게 답해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처음으로 비밀을 털어놓겠다. 사실은 고립되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머리를 거칠 겨를도 없이 귀에서 마음으로 직행해 버리는 모든 말들이 상처가 되었던 시절에.
모국어를 차단하고 혼자 지내는 동안 나는 내 안에 서려 있는 소리들을 듣게 되었고,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어딘지 조금 부끄러워 비틀어 적기 시작한 것이 소설이 되었다. 소설에는 놀라운 구석이 있다. 타인을 궁금하게 하고, 무려 만나서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게까지 만든다. 그러니까 소설이 나의 자발적인 고립을 해제해 준 셈이다.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의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게 되었다. 가령 지난해 여름에 들었던 독특한(휘이- 휘이- 뿅뿅뿅뿅) *새의 울음소리. 어떤 새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해 버려서, 이번 여름에는 그 울음소리가 들리면 기필코 녹음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던 중에 《너머》에서 기쁜 소식을 먼저 들려주었다.
저 너머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신 《너머》의 심사위원분들과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 소설을 읽을 수 없어 슬퍼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아흐준, 늘 보고 싶은 나의 가족, 혜현, 복숭아에게, 또 문학을 하고 싶게 만들어 주신 김현영 작가님과 무력해지는 겨울이면 찾아가게 되는 윤해서 작가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그 새의 이름은 북부 홍관조(northern cardinal)라고 한다.
인하대학교에서 한국어문학과 언론정보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얼마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아일랜드로 떠나 일 년 반 정도 머물렀다. 현재는 캐나다 퀘벡 주에 거주하며 종종 번역 관련 일을 한다. 한겨레교육 수강생 출간워크숍 프로젝트 앤솔로지 『셋셋 2024』에 참여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