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제1회 《너머》 신인문학상 시 부문(「오클랜드 솔라리스」 외 4편, 정철용)
2023. 09. 01 00:02
-디아스포라 디아볼로1*
귀향은
또 하루 늦춰진다
어제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떨어져
자신이 떠나온 곳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동백꽃 몇 송이의 시선으로 맞이하는 아침
밤사이 새로 태어나고 또 죽은
무수한 생명들의 시차에 따라
이른 봄 창백한 햇살의 각도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가팔라지고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가
오늘도 무심히 지나쳐
주소가 지워진 나의 한낮은
썰물이 되어 하우라키 만(灣)을 빠져나간다
재활용되지 않은 시간들만
커다란 쓰레기봉지에 담아
세 들어 사는 내 몸 밖에 내놓으면
이번엔 어느 날의 오후가 나를 찾아올 것인가
저물 무렵
적도를 건너온 네이버통신은
십 년 전 내가 두고 온 고향의 봄이
요즘은 강남스타일로 바뀌었다는 소식
아내와 단둘이 앉은 저녁 식탁엔
배추김치와 된장찌개
레드 와인과 블루 치즈
밤에는
몇 년 전 죽은 친구들을 또 만날 것이다
*
디아스포라(diaspora): 국외 이산, 국외 이주.
디아볼로(diabolo): 공중 팽이(손에 든 두 개의 막대 사이에 켕긴 실 위에서 팽이를 굴리기).
-디아스포라 디아볼로2
얼음조각들이 깔린 널찍한 진열대 위에
생선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갓 들어온 남해산 도미 몇 마리도 함께 누워 있다
지난밤 내내 산지직송 활어전문 트럭에 실려와
첫새벽 도시의 생선가게에 부려진 도미들
먼지 낀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뿌연 아침 햇살에
두릿두릿하던 눈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펄떡거리던 아가미도 숨이 차서 잦아드는데
젊은 아낙네 하나 그 앞에 서서 도미들을 살핀다
어젯밤 만취해서 곯아떨어진 아들의 아침상을 위해
새벽부터 볶아대는 시어머니 등쌀에
날이 밝자마자 장을 보러 나온 나어린 새색시
도미들의 아가미 덮개를 하나하나 헤집어 보다가
개중 싱싱한 놈을 골라낸다
아직도 펄떡거리고 있는 아가미가
자신의 목숨을 채가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놈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나
낯선 나라에 팔려온 베트남 새색시 미(My)*는
아니 이젠 한국식으로 이름이 바뀐 미도(美渡)는
술꾼 남편이 자신의 삶을 낚아챈 올가미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에게 해장국을 끓여주기 위해 도미 한 마리를 집어 든다
고른 놈을 생선가게 주인에게 건네면서
손짓과 몸짓 섞어서 하는 그녀의 서툰 한국말을
눈치 빠른 사내는 다 알아듣고는
도미의 머리와 꼬리를 탁탁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도 쓰윽 훑어 씻어내 버리고
등과 배의 지느러미도 싹둑 잘라내 버린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도의 두 눈엔
일년 전 떠나온 고국의 바닷가 고향 마을
병들고 늙으신 홀아버니의 얼굴이 떠올라
뜨겁고 고요한 밀물이 차오른다
목돈 덕에 병은 나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기잡이로 겨우 생활을 하고 있을 테지
두 눈을 넘친 그리움에 목마저 잠겨오는데
사내는 자잘한 비늘까지 다 긁어낸 도미의 몸통을
머리통과 함께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그녀에게 건넨다
한 손에는 잘 다듬은 도미 한 마리
또 한 손에는 콩나물과 미나리 따위가 든 비닐 봉지를 들고
미도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두르지만
이젠 아가미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는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이 힘겹고 멀기만 하다
낯선 땅에서 머리통과 몸통으로 토막이 나버린 삶
고향 갯내음이 스며있는 비늘마저 다 벗겨진 생활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억지로 들고 가는 자신의 인생을
미도는 그만 내동댕이치고만 싶다
* 미(My)는 흔한 베트남 여자 이름 중의 하나로 ‘예쁘다’는 뜻이다.
-디아스포라 디아볼로3
달걀 한 알이 날아왔다
내 엉덩이에 맞고 터졌다
고우 홈 차이니즈
고함 소리가 이어 터져 나왔다
끈적한 달걀 폭탄이
똥 싼 것처럼 바지에 흘러내렸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따르고
젊은 백인 녀석 둘이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뭐라고 대꾸할 겨를도 없이
그들을 태운 차는
쏜살같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임 낫 차이니즈
유 노우, 아임 코리언
앤 나우 디스 이즈 마이 홈컨트리 투
얼빠진 바보처럼 속으로 중얼대다가
문득 가슴 속에 치받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
야, 이 개새끼들아
목청껏 소리쳐 보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산책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희가 던진 달걀에도
흰자와 노른자가 함께 들어 있지 않느냐
들어줄 리 없는 내 하소연은
속으로만 들끓다가 곪아 버려서
이른 봄 며칠 동안
그들의 알레르기를 대신 앓았다
항히스타민제 몇 알 먹고 견디다가
오랜만에 다시 나선 산책길,
아시안들이 많이 사는 동네 길거리에는
언제 건너왔는지 알 수 없는
일본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디아스포라 디아볼로4
부엌에서 분주히 저녁을 준비하던 사라
크게 틀어놓은 여섯 시 뉴스에서
이라크 소식이 들려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거실로 달려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고국을 떠나온 지 십여 년
그때 함께 데리고 온 어린 두 딸은
벌써 어엿한 숙녀 대학생들이 됐고
자신도 이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아줌마가 다 되었지만
그녀의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아직도 삼십대 초반의 늠름하고 잘 생긴 청년
그러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이라크 사내는
까칠한 얼굴에 볼품없이 깡마른 몸매
허구한 날 터지는 폭탄과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 때문에
불안해서 이젠 정말 못 살겠다고
마이크를 들이댄 외신기자에게 불평을 한다
아, 남편은 무사한 걸까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소식을 전해올 텐데
벌써 십 년 넘게 아무 소식이 없으니
역시 그런 걸까
그녀는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눈을 꼭 감고 고개를 흔든다
미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당신은 아이들이랑 먼저 떠나라구
난 남아서 뒷정리하고 목돈도 좀 마련해서
곧 뒤따라 갈 테니 너무 걱정 말구
그렇게 우리 등을 한사코 떠밀던 남편의 두 손을
그때 꽉 잡고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낯설고 귀설은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에
간신히 난민으로 받아들여져
이름도 여기식으로 바꿔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반복한 자책과 후회를
사라는 오늘 저녁 또다시 되풀이한다
평소보다 늦어진 저녁 식탁에서
어젯밤 꿈에 본 남편의 죽은 얼굴이
자꾸만 눈에 떠올라
사라는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엄마의 울적한 기분을 눈치챈 두 딸도
말없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설거지를 다 끝내고
텔레비전도 꺼버려 적막한 밤
사라는 처음으로 딸들에게
연애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십여 년 만에 다시 시작된
세헤라자드의 이야기 속에서
남편은 아빠는 여전히 살아있다
-디아스포라 디아볼로5
누군가 나를 팽이처럼 빙빙 돌리다가
딱 놓아준다면
멈출 때는 북쪽을 향해 쓰러질 거라고
내 핏속을 흐르고 있는 무수한 철분들이
나침반의 바늘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일제히 남북 방향으로 정렬해 멈출 거라고
어디가 북쪽이고
또 어디가 남쪽인지 알 리 없건만
마음자석이 이끄는 대로
피톨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철새들은 때 되면 남북을 옮겨다니고
10월의 봄날
알래스카에서 적도를 넘어
이곳 오클랜드까지 날아온 철새들이
날개에 조금씩 실어 온 붉은 단풍이
서쪽 하늘에 곱고 짙어서
북향으로 앉은 집
북쪽으로 난 거실 문을 열어놓고
아내가 차리는 저녁 식탁에 번지는
잘 익은 배추김치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모락모락 김 오르는 공깃밥
그 옆에 놓은 숟가락 젓가락도
나란히 가지런히
북쪽으로
창 밖은 새봄으로 익어가는 정오의 따스한 햇볕이다.
푸른 하늘에 파종하는 작은 새들의 노래는
그림자 한 조각 없이 가볍고
아침 내내 갈 길 몰라 하던 새털구름들이
휘파람 불며 비로소 흘러가는 바람 난 내 손바닥 위엔
구름의 속 깊은 주머니에서 내가 몰래 훔친
반짝거리는 새까만 씨앗들 여남은 개.
멀리서 누군가, 일찌감치 내게 건네주려고 했던
궁금한 소식들일 터인데
따스한 손바닥에 깨알 같은 씨앗들로 내려앉아서
이제서야 간질간질 눈뜨고 있다.
언제쯤, 어디쯤 무슨 꽃으로 피어나게 될지 알 순 없어도
적막한 빈손이 한껏 가득해지는 봄날이다.
뭉개진 손금이 한층 뚜렷해지는 새날이다.
아직 꽃이 되긴 멀었고 기껏해야 푸른 싹 몇 조각을 내밀었을 뿐인데
당선작으로 선뜻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늘 곁을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응원해주는 딸,
멀리 있어도 항상 마음 가까이 있는 고국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기뻐하리라.
정철용.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나 첫해 여름휴가로 남해의 작은 섬 소매물도를 다녀오고 나서 며칠 만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백수 6개월 만에 다시 취직한 곳은 당시 개관한 지 1년쯤 된 서초동 예술의전당. 적성에 딱 맞았던 그곳에서 주로 공연 기획 업무를 하면서 보낸 12년의 전성기 역시, 2000년 1월 새천년맞이 여행으로 뉴질랜드를 택해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민 후 오클랜드에서 산책과 독서와 여행, 그리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및 YES24 블로거로 활동하는 등 글쓰기를 즐기면서 10여 년을 유유자적했다. 2006년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한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2009년 YES24에서 주최한 블로그축제 대상 수상 등을 내세울 만한 이 두 번째 전성기는 2014년 조금 더 남쪽, 작은 시골 마을로 거처를 옮겨 생업에 종사하면서 빛이 바랬다. 그러나 아직 꺼지지 않은 그 빛을 등댓불 삼아, 이제 보다 오래 가는 세 번째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