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제1회 《너머》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흐르는, 제로」, 이수정)
2023. 09. 01 00:01
가만 보면 말이에요, 어떤 일은 저 스스로 일어날 힘을 지닌 것 같아요. 우리와 일말의 상관도 없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그런 일 말이에요. 일어날 작심을 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우리에게로 흘러오는 그런 일 말이에요. 어쩌다 보니 일어나는 일과는 다르죠. 그런 일이 일어나면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웬 여자가 무영이 되어 티브이 화면에 잡히는, 그런 일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면 그때 하필, 우리가 무영의 사진을 보고 있을 것까지는……. 정말이지 그럴 필요까진 없는 거잖아요.
그 사진, 기억나시죠? 피트 리버로 처음 송어 잡으러 갔을 때요. 무영이 얕은 쪽에, 당신이 깊은 쪽에, 그 사이에 내가 어중간하게 낀 그 사진 말이에요. 무영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있어요. 당신에게 말하느라고요.
아빠, 몸이 막 흔들려요.
낚싯줄을 날리던 당신은 무영을 쳐다보죠. 사진이 찍힌 바로 다음 순간 이렇게 대답하기 위해서요.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버텨. 안 그럼 물에 쓸려가 버려.
무영을 향한 당신의 시선을 가리지 않으려 난 무릎을 구부리고 있어요. 거센 물살에 안 넘어지려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었더랬죠. 오래전이지만, 그때 했던 생각이 떠올라요. 당신이 내게 한 말이 무영에게 한 것과 사뭇 다르다는, 아니, 정반대라는 생각요.
물살에 몸을 맡겨. 안 그럼 물에 쓸려가 버려.
그 말이 옹이처럼 가슴 한쪽에 박여 좀체 빠지지 않아요. 아마 당신만큼은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거 아세요? 우린, 당신이 한 말과 거꾸로 산다는 걸요. 무영이는 집을 떠나 내내 물처럼 흐르고 난 나무처럼 한 자리에 버티고 있거든요. 새삼 그게 깨달아져 난 사진을 빤히 쳐다보았죠. 사진 속 당신이 대답해 줄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대신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그 사진을 찍던 순간, 주변에서 와글대던 소리요. 강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에 들어오겠다고 악쓰는 호영의 울음소리, 키 큰 나무들과 빽빽한 덤불을 방음벽 삼아 기세 좋게 흐르는 물소리, 위험하니 그만 물에서 나가라고 당신이 무영에게 외치는 소리, 그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무영이 강 건너로 ‘야호’를 내지르는 소리, 그게 판판한 절벽에 부딪혀 되돌아와 물에 빨려 들어가는 소리……. 그런 소리 때문에, 호영이 티브이 화면을 가리키며 믿기지 않는 듯 기어드는 소리로 하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죠.
저 사람, 작은누나 아냐?
백내장 때문에 보이는 게 죄다 뿌옇다며 사진을 코앞에 갖다 대던 엄마도 호영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이런 사진이 다 있었네.
앨범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들춰보는 사람은 없었죠. 휴대폰에 든 사진도 찍을 땐 열심이지만 잘 들여다보지 않잖아요. 앨범은 오죽하겠어요.
기집애,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엄마가 사진 속 무영을 손으로 쓸면서 그랬어요. 울먹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속으론 그랬는지 모르지만, 겉으론 괜찮았어요. 우린 그렇게 괜찮아지고 있었어요.
아, 여기 있잖아, 무영이! She is here!
티브이 옆에 선 호영이 급기야 소리를 질렀죠. 그제야 엄마와 내가 사진에서 고개를 들었고요. 티브이 화면에 호영이 손가락을 갖다 대는데 그 끝에 웬 여자가 걸렸어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엄마가 내 얼굴을 쳐다봤어요.
저 여자더러 무영이라고 하는 것 같아.
같은 게 아니라 무영이가 맞다니까! 어떻게 가족을 못 알아봐!
지난 사 년 동안, 간간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정도의 소식만 전해 오는 무영이 티브이에 나왔다는데 엄마도 나도 별로 놀라진 않았어요. 엄마가 안경을 찾아 끼기는 했어요. 나도 티브이 쪽으로 몸을 좀 기울이긴 했죠. 그 여자가 무영일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에요. 봐주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호영의 성화 때문이었어요.
호영이 어디서 무영을 봤다고 한 적은 여러 번이었죠. 얼굴도 안 나오는 유튜버의 목소리만 듣고 무영이라고 열 올린 적도 있었어요. 누가 들어도 남자 음성인데 무영이 목쉬면 딱 그 소리가 난다면서요. 외계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버였어요. 무영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내용이긴 했죠. 어느 퀴어 축제 영상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채 꽥꽥 소리 지르는 여자를 무영이라 했을 때는 엄마한테 제대로 혼이 났어요. 엄마와 난 여자들만 아는 이유로 그이가 무영이 아니란 걸 알았죠.
티브이에 나온 이도 무영일 리 없었어요. 나도 그걸 보고 있긴 했어요. 도중에 탁자 밑에서 앨범을 꺼내 든 이유는 그게 딱히 재미없다기보다 우리와 너무 상관없어 보였기 때문이에요. 중국 소수민족을 다룬 한국 다큐물이었거든요. 중국 소수민족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무영이 거기 나올 리 없잖아요.
화면에서 그 사람을 짚고 있던 호영의 손가락이 자꾸 움직였어요. 카메라 앵글이 바뀔 때마다 그이가 화면에 들어왔다 나가고 커졌다 작아졌거든요. 그이는 꽃무늬 원피스 아래에 아랍풍 바지를 입었더군요. 머리엔 굵은 실을 꼬아 만든 화관을 썼는데 양쪽으로 길게 내려온 술 때문에 얼굴이 잘 뵈지도 않았어요. 화면에 보이는 십수 명의 사람들은 죄 같은 옷을 입었더군요. 잔치가 벌어지는지 모두 분주해 보였어요.
저 이가 여자니, 남자니?
엄마가 안경 너머로 눈을 치뜨면서 말했어요. 생김새는 그런대로 무영을 닮은 듯도 했어요. 키나 몸집도 비슷했죠. 그래도 무영일 리는 없었어요. 피디인 듯한 사람이 디미는 마이크에 대고 그쪽 언어로 말하는 게 그랬고요. 또, 무영이 그리 웃을 리가요. 그이는 웃는 얼굴이 원래 얼굴인 양 눈코입이 아예 웃는 모양으로 치켜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그런 상이었어요.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웃더군요. 자막을 보면 별로 웃기는 내용도 아닌데 말이에요.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돼지고기는 서서히 익혀야 한다……. 그런 이야기에 웃을 무영이 아니죠. 그이가 진짜 무영이라도 못 알아볼 판이었어요. 웃거나 울 때, 사람은 원래 얼굴과 아주 많이 달라지잖아요. 아예 다른 얼굴처럼요.
그이가 돼지 통구이 앞에서 더 크게 웃는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어요. 더더욱 무영이가 아닌 것 같더군요. 피부도 훨씬 가무잡잡한 게 그냥 거기 사람인 것 같았어요. 엄마가 안경을 벗으며 중얼거렸죠.
우린 저녁에 뭘 해 먹나.
아무거나.
그이를 무영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우리 기세에 눌린 호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으로 쩝 소리를 냈어요. 냉장고에 남은 돼지목살이 있던가, 하며 엄마가 일어서고 내가 앨범을 제자리에 들이밀었을 거예요. 티브이에서 그 내레이션이 나올 때 말이에요.
우리를 흔쾌히 집으로 초대해 준 그녀의 이름은 제로라고 했다. 뜻밖에도 그녀의 태생은 한국인이었다.
아, 우리가 얼마나 놀랐을지 당신은 아시겠죠. 엄마와 나는 정지화면처럼 동작을 멈추고 티브이를 쳐다봤죠. 호영은 승리자처럼 양팔을 치켜들었고요. 화면은 그이가…… 아니, 무영이 잘 익은 돼지 다리 같은 걸 양손으로 들고 거기 이를 박는 데서 딱 멈췄어요. ‘다음 주 화요일에 계속’이라는 자막이 떴고요.
제로.
당신도 그 이름을 알잖아요. ‘무성하게 핀 꽃(茂榮)’이란 뜻으로 당신이 지어준 이름을 무영이 제 맘대로 바꿨죠. 없을 무(無), 숫자 0.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두 번이나 겹쳤으니 자기 이름은 ‘제로’라 했죠. 자길 아예 그리 부르라며 엄포를 놓았고요. 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누군가 제로라고 안 불렀다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벌어진 뒤로 상황이 달라졌죠.
또 실수하지 않으려 엄마와 호영은 머리를 쓴 것 같아요. 호영은 무영을 갑자기 ‘누나’로, 엄마는 예전처럼 ‘영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제로를 무영이라고만 안 부르면 되는 거였어요. 문제는 나였죠. 꼼짝없이 무영을 ‘제로’라고 불러야 하는데 실수 안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고심 끝에 그냥 이름을 빼고 말하기로 했죠.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불러도 별문제는 없더군요. 무영을 부를 일이 있으면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니까요. 문자가 있어 다행이었어요. 문자로는 이름 부를 일이 없잖아요. 당신도 알지요? 에스더라고, 무영의 베프요. 그 아이가 끝내 무영을 제로라고 안 불러서 절교했다는 거 아세요?
아, 모를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떠나고 무영의 상태가 더 심해졌던 거니까요. 당신의 장례식 날. 조문객들은 텅 빈 관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얼굴이 허옇게 떴죠. 각오는 했으나 막상 보니 안 되겠다는 듯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어요. 보다 못한 누군가 주변의 꽃을 관 속에 쓸어 담은 뒤에야 사람들 얼굴에 핏기가 돌았죠. 오래 가진 못했어요. 무영이 꽃을 죄 들어내 다시 빈 관을 만들었거든요. 그날 울지 않는 사람은 무영뿐이었어요. 동상같이 버티고 서서 빈 관만 노려보았죠. 조문객들은 그런 무영을 둘러 가야 했고요.
아빠도…… 제로였어.
그랬나요. 당신도 제로였나요. 파크웨이 전망대 주차장에서 발견된 당신 차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유서 한 줄도요. 당신은 정말 제로가 되어 사라진 건가요.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어요. 그 절벽에 남겨진 당신의 신발 한 짝이 증거라고 했어요. 몸이 없는데 그깟 신발 한 짝이 무슨 증거가 되나요. 경찰은 그 절벽이 진입 금지 구역인 것도 명백한 증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했죠. 그 무렵은 내가 직장도 구했고, 우리 신분이며 빚 문제가 풀릴 조짐이 보이던 때였는데요. 경찰은 내막 따윈 궁금해하지도, 알아볼 생각도 안 했어요. 그건 전적으로 가족의 몫이었죠. 미국 경찰은 미국 시민도 아닌 중년 남자 하나 사라졌다고 거기 신경 쓸 시간 따윈 없어 보였어요. 엄마는 뭔가 아는 것 같더군요. 장례를 치르고 며칠 지나, 날 불러서 이리 물었거든요.
주영이 넌, 아빠를 원망하는 게 낫겠니, 아빠를 가여워하는 게 낫겠니.
난 당신을 원망하는 쪽을 택했어요. 당신을 가여워하는 쪽을 택한다면 엄마 입에서 감당키 힘든 말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보세요. 적어도 난, 당신을 원망하며 이리 감당하고 있잖아요. 당신을 가여워하다간 내가 더 가여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이기적인가요. 당신을 가여워하고 있는 것 같은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눈물 바람이었죠. 거봐요. 당신을 원망하는 편이 낫다니까요.
당신이 사라지고 무영도 사라지기로 했나 봐요. 어차피 집에 잘 붙어 있지도 않았지만요. 당신이 떠나고 한 달은 요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안 좋았어요. 요양원에서 나오고는 웬일로 집에만 있었죠. 아니, 병원에만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수시로 구급차가 오든가 우리가 업고 병원으로 달려야 했거든요. 의료보험도 없으니 엄마와 내가 버는 걸 다 털어 넣어도 병원비 감당이 안 됐어요. 그 가을 무렵, 무영은 말없이 떠났어요. 새벽녘이라 우린 가는 걸 보지도 못했어요. 알아서 연락할 테니 찾지 말라는 쪽지만 있었어요. 약도 안 가져갔더군요. 몸을 스스로 해하지 못하게 도와주는 약이었는데요.
무영이 떠나고 우리 집은 조용해졌어요. 더는 새벽에 경찰차며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죠. 엄마는 한동안은 매일 울었어요. 무영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서요. 그러다 점점 무영이 돌아올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니겠죠. 그저 내 느낌인 거겠죠. 내가 얼른 그 방송사로 연락했어요. 피디를 찾으면 무영과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옆에서 호영이 콧잔등을 긁적이며 그러더군요.
근데 작은누나 키가…… 저리 작았나? Height doesn’t shrink(키는 안 줄잖아).
호영이는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었어요. 우연의 일치겠지만, 무영이 떠난 뒤로 호영은 학교 성적이 좋아졌어요. 엄마는 호영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죠. 호영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면 많은 게 달라질 거라 믿어요. 엄마는 이내 무영을 찾아 나서거나 데리러 가려는 기색이 아니었어요. 하긴, 네일 가게도 한창 바쁠 때고요. 또 그런다고 순순히 따라나설 무영이기나 한가요. 우린 모두 알잖아요. 할렘가 타투 숍에서 찾아내 데려온 날, 흥분한 무영 때문에 당신까지 다쳤던 거요.
그래도 난 궁금하더군요. 우리하곤 아무 상관 없어 뵈는 그곳에 무영이 왜 가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죠. 그게 한국에서는 작년에 방송되었더군요. 이쪽 유선 방송사에서 재방송해 준 걸 우리가 본 거였어요. 다시 볼 수 있는 유료 사이트를 찾아냈어요. ‘중국 소수민족 기행’이란 다큐 시리즈를 1편부터 보기 시작했죠. 어느 편에서 무영이 나올지 몰라서요. 엄마는 눈이 시려 티브이를 오래 보기 힘들다며, 호영은 SAT 준비에 정신없다며 무영이 나오면 알려 달라더군요.
시리즈는 모두 10부작이었어요. 중국 소수민족은 많기도 하더군요. 티브이에 나오는 것 말고도 한참 더 있는 모양이에요. 무영은 8부와 9부에 걸쳐 나왔어요. 무영을 찾아낼 무렵, 나는 중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가족 정도의 단어는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9부에 잠깐 무영의 집이 나왔어요. 그래요. 거기, 무영의 집이 있더군요. 무영은 좡족에 속한다는 어느 부족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결혼도 했고 세상에……. 한 살이 채 안 된 아기도 있지 뭐예요. 그 부족 사람과 결혼하면 그 부족민이 된다고 하네요. 여기랑 같더군요. 미국서도 미국인과 결혼하면 미국인이 되잖아요.
중국 소수민족이 된 무영은 무영이 맞지만, 무영이 아니기도 했어요. 엄마가 된 무영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나요. 아기에게 연신 볼을 비비고 입 맞추는 무영을 상상할 수 있나요? 무영은 외지인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그 부족민으로 보였어요.
무영에게 연락할 길은 막막했죠. 전화는 끊겼는지 오래전부터 연결 안 되고, 문자를 하면 ‘unknown’이란 표시만 떴고요. 이메일은 살아 있었어요. 나는 무영에게 꾸준히 이메일을 보내고 있었어요. 열 번에 한 번은 답장이 왔거든요. 탈 없이 잘 있다고, 덜렁 한 줄이었지만 오긴 왔거든요. 무영이 사는 그곳에 인터넷이 잘 될 리는 없겠죠. 호영은 티브이에 보이는 건 모두 장삿속이고 사실은 마을 집집이 와이파이가 잡히고 휴대폰은 물론, 컴퓨터에 자가용도 있을 거라는데요……. 글쎄요. 어쩐지 난, 그런 곳에 무영이 가 있을 것 같진 않았어요. 무영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보면 소식 좀 달라고요.
그것 보세요. 저 스스로 일어날 힘을 지닌 일들이 있다니까요. 우리에게 일어나기로 작심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우리에게로 흘러오는 일이 있다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무영에게서 바로 답장이 올 리가 없잖아요. 엄밀히 말하면 무영에게서 온 건 아니었어요. 무영의 이메일 주소는 맞지만 무영이 쓴 것도 아니었고요. 더구나 중국어였어요.
姐姐,请到我这里来。请不要告诉别人。
번역기에 넣어 보니 이런 뜻이더군요. 언니, 내게로 좀 와 줘.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말고……. 메일을 쓴 사람 이름이 아래 적혀 있었어요. 孟尧. 멍야오. 그 방송에서 들어 귀에 익은 이름이에요. 무영의 남편이죠. 난 바로 짐을 꾸렸어요. 엄마와 호영이한테는 파라과이에 간다고 했어요.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떠오르는 나라가 파라과이뿐이어서요. 난 거기서 제일 행복했거든요.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내가 말한 적 없으니까요. 밤늦도록 공장에서 들리던 요란한 음악 소리도 난 너무 좋았어요. 나중엔 그게 안 들리면 잠들지 못할 만큼요. 동네 사람들 모두 그 공장에 다녔죠. 내 친구 딸리아의 부모님도요. 무영은 멕시코를 좋아했어요. 그때도 집 밖으로 돌았죠. 친구가 어찌나 많은지, 동네 집마다 무영의 칫솔이 있었잖아요. 미국 와서 집 밖으로 다닌 것하곤 또 달랐어요. 당신은 그런 곳들에 살게 해 미안하다 했지만 천만에요.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웠어요. 당신이 공장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는 것 같아서요.
무영은 멕시코를 떠나면서 아프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마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런 내색은 안 하는 거라고, 우린 스스로 터득했나 봐요. 떠날 곳에 미련 두지 않는 거요. 엄마는 파라과이에 가면 전하라며 마른 반찬거리를 싸기 시작했죠. 만류하려다 무영에게 갖다주면 될 것 같아 그냥 뒀어요.
막상 떠나려니 거길 찾아갈 일도 막막하더군요. 이메일로 보내온 그곳 주소도 죄 중국식 한자였어요. 인터넷에 그대로 넣고 지도를 찾아봤죠. 목적지를 찾아주는 빨간 점이 허허벌판을 헤매다 끊어지더군요. 솔직히 말할게요. 난 혼자 비행기를 탄 적이 없어 당장 JFK 공항에 갈 일부터 걱정이었어요. 그간 참 어지간히도 안 다녔구나, 새삼 깨달았죠.
그래요. 난 더는 떠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나와 달리, 무영은 물처럼 흘러 다녔고요. 가끔은 그런 무영이 부러웠어요. 떠나온 곳도 모르고 앞으로 갈 곳도 모르는 채 물살에 떠밀리듯 떠도는 사람은 그럴 수 없잖아요. 당신은 설마 싶겠지만, 나는 기억해요. 이 집에 오기 전부터 난 떠밀려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요. 나는 마당에 큰 소가 앉아 졸던 집에도 있었고요, 대문이 불난 것처럼 빨갛던 집에도 있었고요,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꼭대기 집에도 있었어요. 아마 더 있었을 거예요.
당신 집에 온 뒤로도 당신을 따라 한국에서 파라과이로, 브라질로, 멕시코로, 미국으로. 계속 떠다녔죠. 그래서 이제는 버티려고요. 더는 안 떠밀리며 살려고요. 데릭하고 헤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네, 저, 결혼했어요. 한 번 결혼했던 사람이라 당신이 못마땅해하던 데릭하고요. 당신이 떠나면서 불거진 모든 문제를 데릭이 맡아줬죠. 우린 법적으로 미국에 머물면 안 되는 처지였잖아요.
사람들은 내가 시민권을 따려고 데릭과 결혼했다고 생각했죠. 심지어는 엄마도 호영마저도 그런 눈치였어요. 열세 살이나 많고 이혼 경력도 있는 데릭과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했으니 무리도 아니겠죠. 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데릭뿐이었어요. 날 많이 아껴주지만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데릭이 회사에서 승진하면서 덴버로 발령이 났거든요. 거기가 어때서 그러냐고요? 난 이제 떠밀려 다니지 않는다니까요. 따로 산 지 반년 됐고 조만간 서류를 정리하려고요. 사람들은 시민권을 노린 게 맞지 않느냐며 입방아 찧겠죠. 어쩌겠어요. 하도 그러니 나도 자신이 없어졌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완전히 결백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말이에요. 그런데 무엇에든, 가슴에 손을 얹고 완전히 결백한 사람이 있긴 한가요.
사람 마음 참 얄궂죠. 거길 찾아갈 일이 막막하니 데릭이 생각나지 뭐예요. 같이 가달라 할까, 싶어서요. 요즘 부쩍 문자가 잦거든요. 데릭은 우리가 헤어진 걸 실감 못하는 것 같아요. 덴버로 간 뒤로도 생활비를 보내오고,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건 뭐, 고마운데 나를 다 이해한다고 할 때는 불편해져요. 고작 사 년 같이 살고 뭘 다 이해한다는 걸까요. 언어가 달라 대화도 잘 안 되는데요. 그동안 내 영어가 좀 늘긴 했어요. 희한하죠? 언어가 겹치면서 다툼이 잦아지더군요. 대충 넘어가던 일들에 말이 얹어지니 더는 대충 넘어가지지 않는 거예요. 데릭은 서로를 더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데 난 잘 모르겠어요.
무영에게 가는 길은 혼자 헤쳐가 보기로 했어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길을 잃으면 잃는 대로 가지 뭐. 언젠간 닿겠지. 그리 마음먹었어요. 사장님한테는 다 털어놓았어요.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려면 무영 이야기를 해야 했죠. 역시, 비밀 이야기는 가족보다 남이 더 편한가 봐요. 이 와중에 조크가 다 나오네요. 갈 길이 암담한데 말이죠.
*
열세 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섯 시간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세 발 트럭 뒤에 실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제일 많이 한 생각이 있었어요. 어쩌다 이 먼 곳으로 흘러왔을까. 결코 한 곳에 있지 못하던 무영이 어째서 결코 한 곳을 뜨지 않는 사람들과 살고 있을까.
마을 입구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나와 있더군요. 내가 언제 올 줄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렸대요. 파라과이에 도착하던 날과 비슷했어요. 낯선 사람들이 낯선 날 보고 친숙하게 웃던……. 사실, 그네들은 웃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무영이가 아주 많이 아픈 상태였거든요.
스스로 몸을 해한 건 아니니 그 걱정은 하지 마세요. 비록 아팠지만, 무영은 좋아 보였어요. 티브이에서 본 대로, 웃는 얼굴이 원래 제 얼굴인 양 계속 웃었으니까요. 얼굴이 잿빛으로 꺼멓고 눈이 푹 꺼져 없던 쌍꺼풀이 생긴 데다 몸은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는데도요. 풍토병이 시작이라고 했어요. 외지인이 잘 걸리는……. 보통은 발진이 돋다가 별다른 조처 없이도 낫는다는데 지병으로 패혈증이 왔다더군요. 멍야오가 나도 외지인이니 병원에서 받아왔다는 약을 줬어요. 물과 음식으로 전염될 수 있다며 날 위해 생수와 인스턴트 음식도 준비했더군요. 부족 사람들은 대부분 항체가 있다는 말에 소외감이 좀 느껴졌어요. 우습죠. 만일을 위해 마스크와 비닐장갑까지 끼고 보니 난 여지없는 이방인이더군요.
부족 사람들은 무영이 곧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려 무영의 집 문을 열어 둬야 했죠. 오는 사람 손에는 뭐가 하나씩 들려 있었어요. 처음 보는 색색의 과일, 날지 못하는 새들의 크고 작은 알……. 붉은 볏이 왕관처럼 생긴 닭을 옆에 끼고 오는 이도 있었죠.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부른다는 노래를 계속 불렀어요. 너른 방 하나가 덜렁 집이기도 한 그곳 한가운데 무영을 눕혀놓고 빙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죠. 난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다행이었어요. 혼자만 입 다물고 있으려니 민망했거든요.
나는 무영의 손을 잡고 있었어요. 다른 손은 멍야오가 잡고 있었죠. 눈이 크고 맑은 사람이었어요. 무영이 이 지경인데 뭐가 좋은지 벌쭉벌쭉 웃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요. 아기는 다른 여자가 잠시 봐주려고 집 밖으로 데려갔어요. 나와 몇 번 눈을 맞췄는데 그때마다 까르르, 웃더군요. 옆에 있던 부족 할머니가 아기 볼을 꼬집으며 한마디 했어요. 무영이 그러는데 ‘피는 못 속이네’였대요. 무영도 나도 웃었지만, 그 웃음의 의미는 정반대였을 거예요. 무영은 저랑 나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걸 모를 테니까요. 부족 사람들이 노래할 때 무영은 통역하듯 우리말로 불렀어요. 나를 위해서였겠죠.
어디서 왔니
알려 하지 말게나
알고는 못 떠난다네
어디로 가니
알려 하지 말게나
알고는 못 간다네
그냥 가세나
그냥 흘러가세나
꽃잎처럼 가벼운 이 내 몸
무엇 하나 걸릴 것 없으니
우럼우럼 우럴럴 에이두야 홍야홍야
물 따라 강 따라 바람 따라
그냥 흘러가세나
우럼우럼 우럴럴 에이두야 홍야홍야
사람들은 도통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무영과 단둘이 말할 기회가 없었죠. 뭐, 괜찮았어요. 저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테니까요. 무영은 많은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기침이 심하고 각혈도 했거든요. 난 미리 알았다면 약이라도 챙겨왔을 거라 했죠. 물론, 약 정도로 나을 단계는 지나 보였어요. 병원에서는 가망 없다는 소리만 듣고 왔다죠. 미국에서는 고칠 방도가 있을지 모르니 무영에게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표정을 보니 무영이 뭐라 할지 감이 오더군요. 내 집은 여기라고…….
무영은 미안하다더군요. 엄마에겐 속 많이 썩여 미안하고, 호영에겐 번잡스럽게 해 미안하다고요. 당신에겐……. 믿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네요. 당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래요. 당신이 우릴 위해 그랬을지도 모른다면서요. 이 땅, 저 땅으로 흘러 다닌 게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듯, 허드슨 강을 따라 흘러가 버리기로 한 것도 그럴지 모른다고요. 아기를 위해서라면 자기도 언제고 죽을 수 있다고 말할 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아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더군요.
나는 당신을 원망하는 쪽을 택했지만, 무영은 당신을 가여워하는 쪽을 택한 모양이에요. 나보다 무영이 훨씬 용감한 셈이죠. 무영은 다 알고 있었나 봐요. 아니, 정말로 많이 알고 있긴 했어요. 농작물이나 손으로 짠 바구니를 내다 팔러 읍내 같은 곳에 가면 인터넷이 되는 곳이 있다네요. 그간 내가 보낸 이메일을 다 읽기는 했다고요. 그러고 무영은 더는 말하지 못했어요. 입에서 자꾸 피가 흘렀거든요.
마을 사람들은 졸지도 않았어요. 눈을 감고 중얼중얼 기도인지 주문인지 뭘 외우다가 누가 선창하면 또 그 노래를 따라 불렀죠. 하도 들으니 새벽녘에는 나도 어지간히 부를 수 있게 됐어요. 우럼우럼 우럴럴……. 그 대목을 제일 자신 있게 불렀죠. 당신이 가끔 흥얼거리던 민요 가락 같기도 해서요. 이쪽 사람들하고 아무 상관 없는 줄 알았는데 뭔가 있는 걸까요.
긴 여정이기도 해서 나는 자꾸 눈이 감겼어요. 멍야오가 방 한쪽을 가리키며 누우라고 시늉했어요. 그래도 그럴 수 있나요. 눈이 감기는 거지, 자고 싶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죠. 무영이 내게 아기를 데리고 가랄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날 부른 걸로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아기는 부족의 후손이라 마을에서 자랄 거라더군요. 부족 풍습으론 아내가 먼저 죽으면 남자는 아내의 자매와 다시 결혼한다고 해요. 그 자매가 미혼이면요. 무영이 그리 설명하는데 멍야오가 갑자기 날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뭐예요.
무영은 내가 외지인이라 해당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거기 담긴 데릭 사진을 들이밀었어요. 마이 허즈번드, 허즈번드, 하면서요. 무영이 웃느라고 배를 다 만지더군요. 나도 웃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다, 좀 웃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웃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웃음 끝에 기운이 빠지는지 무영이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잠든 것 같았어요. 멍야오가 무영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보더니 헤벌쭉 웃었어요.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내 눈도 절로 감기고 말았어요. 잠결에 무영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뜨려 했는데 눈두덩이 들러붙어 버렸는지 맘대로 안 되더군요. 나직이 소리만 들렸어요.
여기 사람들…… 유목민이었대. 머물 곳을 찾아 떠돌던 유목민……. 이곳에서 산 지가 삼백 년인데 여길 찾으려 강 따라 구름 따라 흘러 다닌 건 천 년이래. 아마 지금도 흐르는 중인지 몰라. 고단해서 잠시 쉬어가는 건지도……. 삼백 년째 쉬어 가는 건지도 몰라.
얼핏, 나를 흔드는 기척에 눈이 퍼뜩 떠졌어요. 늙수그레한 부족 여자가 합장하듯 두 손을 모으더니 눈으로 무영을 가리켰죠. 무영은 여전히 눈 감은 채였고 여전히 웃는 낯이었어요. 누군가 멍야오를 찾으러 급히 밖으로 나갔어요. 부족민들이 모두 날 쳐다보더군요. 내가 뭘 해주길 원하는 표정이었어요. 아, 무영의 이름을 불러 보라는 것 같았어요. 그들을 둘러보니 무영을 어떻게 부를지 알겠더군요. 그들에게 무영은 무영이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장갑을 벗었어요. 무영의 손을 꼭 잡고서 그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댔죠.
제로야. 제로야.
손은 아직 따뜻했지만, 대답은 없었어요. 무영 또래의 젊은 여자 서넛이 무릎으로 걸어와 무영의 발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어요. 거기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더군요. 다른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부산스레 들락거리느라 울 새도 없어 보였어요. 무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어요. 당신처럼, 편지 한 장도요. 옷가지 몇 벌이며 살림살이는 어차피 마을 사람들 것이라죠. 아, 사진이 남았어요. 내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요. 아기 사진이 제일 많더군요. 잘 뵈지도 않던 아기를 내가 언제 그리 찍었는지 모를 일이었어요.
무영의 장례식은 당신 때와 달랐어요. 통나무 관 속에 무영이 누워있었으니까요. 무영은 알록달록한 비단옷을 차려입고 머리엔 예쁜 화관도 썼죠. 그것도 모자라 온통 꽃으로 뒤덮였고요. 사람들은 더는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요.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 뜻은 모르지만, 즐거운 노래 같았어요. 무영의 관은 두 마리 나귀가 끄는 수레에 실려 집 뒤쪽 낮은 언덕으로 가 거기 묻혔어요. 나귀는 며칠 동안 무덤가에서 먹고 잔다네요. 무영의 넋을 태우고 하늘로 데려다줄 거라며 사람들이 나귀한테 자꾸 절을 했어요. 절을 받다 말고 나귀 하나가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신통했죠. 사람들이 어디서 꽃을 그리 가져와 심고 덮는지 무덤이 아니라 작은 꽃밭 같았어요.
내가 마을을 떠날 때, 사람들이 또 몰려 나와 배웅했어요. 세 발 트럭 뒤에 올라타서 나는 마을 쪽을 보고 앉았죠. 제 엄마와 전혀 안 닮은 날 보고 “움마, 움마.” 하며 작은 손을 뻗는 아기도 눈에 밟혀서요. 품에 안았을 때 무영의 냄새가 나더군요. 이름은 수이……. 부족어로 ‘물’이란 뜻이래요. 다음에 볼 때는 부쩍 커 있겠죠. 트럭이 움직이자 내가 손을 흔들었어요. 멍야오가 사람들에게 눈짓하니 사람들이 노래할 때처럼 한목소리로 날 향해 외쳤어요.
아디오오오스.
*
비행기 안에서 당신하고 무영의 꿈을 꾸었어요. 하늘로 올라갔으니 두 사람 있는 곳에 가까워져서 그랬을까요. 수이도 나왔어요. 당신이 안아 올리자 수이가 내게 그랬듯 까르르, 웃더군요. 수이 얼굴에 웬 남자 얼굴이 겹치면서 잠을 깼어요. 내가 우럼우럼, 하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옆자리 남자가 날 흔든 거였어요. 남자는 중국인이었어요. 플러싱 차이나타운에 일자리가 생겨 간다고 서툰 영어로 말하더군요. 자리 잡으면 가족도 데려갈 거라고 할 때는 목소리가 좀 갈라졌어요.
혹시 무영의 그 부족을 아는지 물었죠. 남자는 내 휴대폰에 든 사진 몇 장을 들여다보고는 반색하는가 싶더니 웬일인지 이내 샐쭉해지더군요. 실은, 부친 역시 소수민족인 먀오족 출신이라네요. 그 남자가 태어나면서 부족을 떠났다 하고요. 어릴 적 부친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금이 묻혔을 누런 강을 찾아가자는 사람들을 슝궁 어쩌고 하는 사람이 설득했다는 전설 같은 거였어요. 금은 파내면 끝이니 벼꽃 향기 물씬 나는 강을 찾아 떠나자고, 슝궁 어쩌고 하는 사람이 그랬다네요. 그게 먀오족의 시작이라고요. 이상하죠. 어디에 도착한 게 아니라 어디로 떠난 게 시작이라니 말이에요. 그걸 끝으로, 남자는 몸을 돌려 똑바로 앉았어요. 중국어로 뭐라 중얼거리면서요. 혀를 차는 게,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어요. 어째 그 말이 영어로 들리는 것 같지 뭐예요.
바보, 누런 강을 따라갔어야지.
엄마는 파라과이 동네 사람들이 잘 있냐고 제일 먼저 묻더군요. 잘 있다고 했죠. 다들 엄마를 보고 싶어 하더라고 했어요.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한다고도 했어요. 엄마는 눈이 벌게지면서 내가 할 소리, 라고 했어요. 호영은 내가 없는 동안 모의 SAT를 봤는데 거의 만점이라고 보통 우쭐한 게 아니에요.
무영이 이야기는 찬찬히 할 생각이에요. 휴대폰에 담아온 무영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말이에요. 우린 모두 많이, 또 오래 울겠죠. 그러다 수이를 보러 가자고 할 거예요. 울다가도 그럴 정신은 있을 거예요. 수이가 또 소리 내서 웃어줄까요. 나한테도 웃었으니 엄마와 호영에겐 당연히 그러겠죠.
내가 한 번 다녀왔으니 가는 길은 걱정 없어요. 아, 혹시 당신도 그랬던 건가요.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면 늘 당신이 우릴 앞서 먼저 갔잖아요. 당신도 너무 걱정된 나머지 더는 걱정하지 않기 위해 그랬던 건가요. 집에 온 날 데릭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그동안 내가 문자를 확인 안 해서 걱정돼 죽는 줄 알았다네요. 이번 주말에 바비큐 할 고기를 사서 집에 온대서 그러라고 했어요. ‘Yes’면 될 텐데 내가 왜 ‘Of course’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씻고 나와 보니, 처음 송어 낚시 갔던 사진이 확대돼 거실 벽에 걸려 있네요. 사진이 커져서 그럴까요. 물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아요. 가까이 폭포가 있다지만 물소리가 어쩜 그리도 크던지요. 말할 때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쳐야 했잖아요.
아빠, 몸이 막 흔들려요.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버텨. 안 그럼 물에 쓸려가 버려.
물살에 몸을 맡겨. 안 그럼 물에 쓸려가 버려.
짐은 나중에 풀고 밥부터 먹으라며 엄마가 날 불러요. 내가 좋아하는 갈치 조림 냄새가 진동하네요. 호영이 방에서 드럼 치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요란해요. 노래를 저리 잘하는지 몰랐네요. 밥은 먼저 먹었대요. 엄마한테 가겠다고 말하면서 손으로 사진을 쓸어봤어요.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땅을 거쳐 나무와 덤불을 지나 강을 따라가다 무영, 나, 당신……. 그리운 당신…….
그럴게요. 당신이 말한 대로 버티기도 하고 물살에 몸을 맡기기도 할게요. 둘 다 할게요. 물에 쓸려가지만 않을게요. 물 따라 흐를게요. 이래도 저래도 어차피 우린 다 흐르는걸요. 그래요. 우린 누구나 흐르나 봐요. 한국을 떠나야 했던 당신도, 파라과이를 떠나야 했던 나도, 멕시코를 떠나야 했던 무영도……. 옆자리의 그 남자도, 먀오족이었다는 그 부친도, 벼꽃 향기 찾아가쟀다는 슝궁 어쩌고 하는 사람도 말이죠.
우리의 원천은 유목민……. 우린 저마다 어떤 강을 따라 흐르는 유목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길게 흐르는 사람들도 있는 거겠죠. 그뿐이겠죠.
제로와 당신처럼요.
나의 무영, 나의 아버지…….
아디오스.
이제 밥 먹으러 갈게요.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도통 기억나지 않는 그 시간들을 나는 사실,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또 거기서 빚어지는 세계가 자꾸 구면인 듯 낯익다. 필시, 그 시간 속의 경험치일 것이다.
이번에는 흐르는 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처럼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고백하건대, ‘나’의 이야기였다. 소설가가 소설 밖에 자신을 위치시키려 기를 쓸수록 오히려 그 내부로 끌려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물처럼 흐른다’고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나는 이번 소설 속에서 자처해 물이 되었다.
그랬다. 나는 23년째 물처럼 흐르는 디아스포라.
소설, 「흐르는, 제로」를 쓰는 동안 기특하게도 깨달았다. 어떤 곳을 겨냥하고 질주하기보다 방향 모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야 진실로 흐른다 할 수 있음을. 삶이란 우리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며 살아지는 것임을.
그래서 우린 누구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연유로 삶의 강을 흐르는 디아스포라임을.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제1회 신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그 깨달음에 대한 치하인 것 같아 특별한 감격이었다. 흐르는 삶의 의미를 소설로 일어서게 해준 《너머》 관계자 및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나와 더불어 기꺼이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리 흐르고자 작심해 준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소설의 강을 쉼 없이 흐를 수 있게 물길이 되어주시는 손홍규 작가님께 영광을 바친다.
삶의 강에서도, 소설의 강에서도 흐르는 동안 더 가벼워지길, 그래서 종국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길. 모쪼록, 흐르는 제로가 되길 소망하며.
이수정.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사보 기자와 기업 아나운서를 거쳤다. 2000년에 도미한 뒤 번역 작가로 소설 『노인과 바다』를 포함, 50여 권의 영미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다수의 한인 매거진 편집장을 역임했다. 수필 「쓸어주고 싶은 등」으로 재미수필가협회 신인상을 받았고 단편소설 「소리의 군무(群舞)」로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에서 우수상을, 「타이거 마스크」로 제24회 재외동포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