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title_text

8호

K-푸드, 세계가 향유하는 문화콘텐츠

이지혜

  언어는 한 민족이 긴 시간에 걸쳐 공유하는 문화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어가 있고, 한국어 중에는 ‘식구(食具)’라는 단어가 있다.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식구’는 자주 ‘가족(家族)’이라는 단어와 구분 없이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식구와 가족은 근본적으로 다른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만이 공유하는 고유한 정서와 행동 양식, 바꿔 말해 ‘문화’가 두 단어를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밥 먹었어?”
  “다음에 식사 한 번 꼭 같이 하자.”

  외국인이 출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사 대신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음식’이 단어와 인사말에 붙박일 만큼, 한국인에게는 같이 식사하고 끼니를 챙기며 서로의 안부를 보듬는 행위가 피를 나눈 가족만큼의 관계를 의미할 만큼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정체성, 한식

  2000년대 말,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비빔밥’ 광고가 게재됐다. 2010년에는 MBC의 교양·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서경덕 교수가 합작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비빔밥’ 영상광고를 송출했다는 소식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한식은 그랬다. 관성처럼 “두 유 노(Do You Know) 비빔밥?”, “두 유 노(Do You Know) 김치?”를 묻는 것이 전부인 시대이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평가받는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그때의 한식은 현재 유행하는 ‘한식’ 그 자체를 알린다기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통보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당시 ‘한식’ 홍보의 기준은,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 전통의 음식을 지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만 옳았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로서의 한인 사회를 보듬기 위한 언론의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서 주인공 ‘선자’는 일제강점기에 선교사인 남편 ‘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코리안 디아스포라다.1)
  선자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남편 대신 가계를 이끌기 위해 일본의 핍박 속에서도 음식 장사를 시도한다. 이때 선자가 선택하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하대와 멸시를 당해도 선자는 ‘김치’를 지키는 것을, 김치 파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픈 역사로 흩어져야 했던 재일 코리안을 포함해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는 사실 어떤 이유로든 고국을 떠나 역경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한 자들이다. 그리고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땅한 음식을 섭취하는 일일 것이다.
  ‘선자’의 경우처럼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현지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거나 한식을 소개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한식의 맥을 이어왔다. 나아가 이들은 현지의 식문화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한식을 선보이거나, 한식의 다변화를 꾀하며 한식의 글로벌화를 누구보다도 기대하고 힘을 보탰다.

세계가 향유하는 문화, 한식

  2010년대 후반부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의 K-팝 아이돌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류의 글로벌 인지도도 자연히 높아졌다. 이 시기 기존의 ‘한식’도 ‘K-푸드’로 진화했다. ‘한식’의 개념이 한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체화된 것이다.
  ‘K-푸드’로 진화한 한식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생존을 의미하는 식사에서 나아가 세계가 향유하는 아이콘으로, 또 문화적 콘텐츠로 변모했다. 일례로 한류 스타인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한국의 인스턴트 푸드인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을 방송에서 내보낸 직후, 다양한 SNS에서 지민을 따라 한국의 음식을 체험해 보자는 챌린지가 폭발적으로 유행한 바 있다. 불닭볶음면은 대한민국의 기업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한 인스턴트 라면이다. 한국인도 먹기 힘들 정도의 매운맛을 고유의 정체성으로 포지셔닝했다.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말까지 누적 판매량 50억 개를 기록했다. 이 중 수출 비율이 80퍼센트에 달한다. ‘불닭볶음면’은 해외에서 ‘K-푸드(K-Food)’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10대 소녀들은 ‘한식’, 즉 ‘K-푸드’를 ‘불닭볶음면’으로 이해한다. 이를 견인하듯 지난 4월, ‘2024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를 계기 삼아 처음으로 라면이 대통령 만찬 메뉴에 오르기도 했다.

‘K-푸드’라는 경향

<사진1> 유튜브 <미란이네 알렉스> 채널 갈무리

  유튜브 <미란이네 알렉스>는 호주 남성 알렉스와 결혼해 이민한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채널2)이다. 이 채널의 주인인 ‘미란’은 일주일에 한 번 간이천막을 치고 한국 음식을 판다. ‘미란이네 코리안 푸드’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붙여 두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미란이 파는 것은 전통의 한식이라 말하기는 어려운, 그 궤적에서 살짝 빗나간 한국의 길거리 음식이다. 그는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호주 시골 거리에서 ‘매운 닭꼬치’와 ‘핫도그’, 가끔 ‘떡볶이’를 판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장사에서 한솥 장만해 간 음식을 매진시킨다.

<사진2> 맨해튼 한식당 ‘소문난기사식당’ 메뉴(사진 출처: 인스타 @kisarestaurant)

  로어이스트사이드는 미국의 도시 뉴욕 맨해튼에 마지막 남은 레트로 타운이다.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오가는 이 거리에 올해 봄 개점한 한식당의 이름은 ‘소문난 기사식당(Kisa)’이다.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는 자제하고, 기사식당다운 공간을 표방했다. 넘기고 찢어서 쓰는 한국 달력과 오래된 TV, 벽걸이 선풍기, 동전을 넣는 커피머신이 뉴욕 골목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소문난 기사식당’은 오픈 2주 만에 뉴욕의 명물이 되었다. 식당 문을 여는 오후 5시 이전부터 대기 줄이 시작되고, 기본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재미교포 청년인 최재우, 윤준우, 김용민 씨가 합심해 꾸린 이 식당의 불고기백반, 제육백반 등 한 끼 차림 가격은 32달러(한화 약 4만 4천 원)다. 한국 기사식당 물가에 비교하자면 두 배 이상의 가격이지만, 겪어보지 못한 문화를 음식을 통해 체험한다는 측면에서 호평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100% 한국인도, 100% 미국인도 아니지만 우리의 유산과 뿌리로 돌아가기 위해 식당을 구상했다3)고 말하는 세 청년이 한국의 기사식당 문화를 역수출하는 성과를 보인 것이다.



<사진3> 유튜브 불닭볶음면 이슈 보도 내용 갈무리(2024.04.17.일자 자막뉴스)

  긍정적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불닭볶음면’의 경우다. 지난 6월 11일 덴마크 정부는 직접 나서 ‘불닭볶음면’의 제품 회수를 지시했다. 지시 사유로 “캡사이신 수치가 높아 급성 중독 위험이 있음”을 발표했다. 《BBC》, 《AP통신》, 《AFP통신》 등 외신이 이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어 지난 7월 3일 덴마크 현지 학계인 덴마크공과대학 국립식품연구소에서도 수출용으로 판매되는 불닭볶음면 일부 제품이 “인체에 유해”4)할 수 있다는 취지의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경쟁력 ‘K-’

  ‘K-’는 한국(Korea)의 약자다. 그러므로 ‘K-’가 붙는 명사는 보편적으로 한류의 영향을 받은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벌 브랜드를 의미한다. K-팝, K-드라마, K-뷰티, K-문학과 마찬가지로 K-푸드는 한국의 음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문화 매개체다.
  한식 또한 매개체다. 한식은 더 이상 한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 바깥에 ‘알려지는 것’에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한식은 ‘생존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지금의 한식은 전통 음식의 궤에서 나아가, ‘매운맛’이라는 고유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국경을 뛰어넘는 중이다. 어쩌면 한식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지고, 확산되며, 침투하는 푸드 디아스포라로서 기능하는 최초의 선구적 음식이다. 이렇게 한식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도 한국을 체험하고 향유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문화 콘텐츠로서의 ‘K-푸드’로 변모했다.
  한식의 ‘K-’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정체성의 문제다. 이는 맛의 현지화와 전통성 유지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이라고 본다. 현지화는 한식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지나친 현지화는 전통 한식의 고유한 맛과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현재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MZ세대는 현지화보다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단, 전통의 기준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공유하는 것들, 혹은 가까운 과거에 한국에서 공유하던 것들, 가까운 세대에게서 대물림된 기억을 음식으로 재현하기로 택한 듯하다.
  전통 한식과 세계화된 한식은 명확히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K-’ 한식, 즉 세계화된 한식은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여전히 진화 중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한식은 한국 문화의 다채로움과 깊이를 전하는 콘텐츠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음식을 통해 글로벌 문화 교류를 촉진하며, 한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식은 이제 단순한 전통 음식이 아니라, 명실공히 ‘K-푸드’라는 향유 콘텐츠로 봐도 무방하다.

각주

1) 이와 관련된 리뷰는 이영호, 「『파친코(Pachinko)』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리뷰 K-문화’, 웹진 《너머》 5호(2023. 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diasporabook.or.kr/M000469/S001/fw/bbs/board/00006/view.do?cate1=3&cate2=11&idx=217(접속일: 2024. 06. 30).

2) 유튜브 채널 <미란이네 알렉스> https://youtu.be/7rnJexyp81A?si=ZfxmcJofLKQEnMDD(접속일: 2024. 06. 30)

3) 이경호 기자, “3시간 웨이팅 기본, 무섭게 핫해”…‘Kisa’ 2주 만에 뉴욕 명물됐다. 《아시아 경제》, 2024. 05. 09. https://view.asiae.co.kr/article/2024050912291699755(접속일: 2024. 06. 30)

4) 덴마크 학계 “불닭볶음면 유해성 인정”…리콜사태 장기화? [푸드360], 《헤럴드 경제》, 2024. 07. 03. https://news.heraldcorp.com/view.php?ud=20240703050178(접속일: 2024. 07. 04)

필자 약력
이지혜 프로필 사진.jpg

영화평론가·문화평론가. 문화 전문지 《쿨투라》 제16회 신인상 영화 평론 부문으로 등단.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으로 문화 현상을 연구한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계열 박사과정생 연구 지원 사업(2023)에 선정되었으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르몽드》에 문화평론을, 《COAR》 등에 영화평론을, 《서울책보고》에 에세이를 정기 기고 중이다. 전주국제단편영화제(2023) 전북 부문을 심사했으며, 서울역사영화제 집행위원(2024)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