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8호
사랑의 눈물이랄까, 수천만의 손자랄까?, 햄버거와 터키 커피
파덴 아타세벤
사랑의 눈물이랄까, 수천만의 손자랄까?
내 손바닥에 뭔가를 올리고서 너는 키우라고 했다
씨앗인가
아니다
잎인가
그런 것 같긴 한데
작은 클론이야
이름은 사랑의 눈물
이것은 눈물
네가 자고 있을 시간에 난 사진을 찍고 식물의 근황을 알려준다
이거 봐 봐
손톱보다 작았던 너의 클론이 한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번식을 멈추지 않고 어디서든 뿌리를 잘 내리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넌 사랑의 눈물이라고 불렀지만, 그게 한국에서 천손초라고 불린대 아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아이를 많이 가지라고 주는 거래 네가 나보고 한국에서 눈물 흘리라고 준 건 아닐 것 같고 근데 아이를 이토록 많이 가지라는 말이면 차라리 눈물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뿌리를 잘 내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천손초도 나도
꽃이 필 줄은 몰랐어
대구에 있을 땐 네가 사는 지중해의 햇빛만큼은 못해도 햇빛 잘 받고 자랐었어 한국어로 햇빛, 햇볕, 햇살이 다 다르대 그래도 잘못 쓰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 나도 가끔 헷갈리지만 우리의 식물을 위해 빛 공부를 계속하는 거야 여기 남향은 거기랑 또 달라 아무리 좋아도 웃자람이 보이고 겨울은 춥고 넌 추운 날에 물 주지 말라고 했잖아 난 겨울 내내 물을 주지 못했어 죽을 줄 알았는데 3년 만에 거꾸로 달린 꽃을 보게 됐어
너도 한번 보러 와 이제
아니, 놀러 와야지
한국에 소나무도 있고 사계절도 있다고 하면 넌 뭔소리냐 하겠지만 여기 소나무는 뭔가 다르거든 사계절도 우리나라 사계절 같지 않고 여기서 자란 천손초도 네가 알던 모습과 다를 거야
오면 꼭 가을에 와
햄버거와 터키 커피
한국 음식이 없어서 맨날 햄버거만 먹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자기가 김치도 안 먹는다는
답을 던진다
저녁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크즐라이를 지나 쿠르툴루슈 공원을 지나 비둘기 떼에 모이를 뿌려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포장된 햄버거를 사러 간다
초인종이 울리기도 전에 열리는 그의 문 앞에서 나의 신발을 벗는다 늘 같은 메뉴를 먹는 그는 입가에 케첩이 묻은 채 딸기 밀크셰이크에 빨대를 꽂고서 컵소녀와 파리소년의 뜻을 묻는다
노래가 계속 흘러가고
가장 긴 날도
저물어 가고
작은 화면 속의 여자는
서리 낀 창문에 잘 있거라 하는 말을 남긴다
손에 두 잔을 들고 부엌에서 나온 그는 어디서 배운 말인지 함께 마신 터키 커피가 40년 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나는 순간 미신을 믿고 싶어지고 그는 소파의 끝자락에 앉는다 바로 마시지 않으면 거품이 사라진다며 사흘 뒤에 한국으로 떠난다며 그리고 이제 늦었다며 기숙사 앞까지 바래다준다
이제야 나는 자정까지 제출해야 할 기말 과제를 시작한다
김경미 시인의 「비망록」을 주문처럼 읊조리며
시의 구절로 예문 한국어 문장을 만든다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커피 가루로 점을 좀 쳐도 괜찮았으련만
시원한 이 여름밤에 공원을 함께 걸었어도 좋았으련만
매일 햄버거를 먹었어도 괜찮았으련만
작별 인사를 할 때 악수라도 했어도 좋았으련만
1996년 튀르키예 출생. 앙카라 대학교 한국어문학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22년 《시작》으로 등단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