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호
나비같은 나비야
황영은
출국은 다음 날이었다.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여덟 평짜리 원룸에 어쩐 일인지 방충망의 미세한 틈을 뚫고 들어온 빛 한줄기가 구석진 곳에 아른아른 고여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베샤멜 소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라자냐를 만들기 위해 큰맘 먹고 구입한 거였다. 고작해야 한 번 정도 사용할까 말까이지만 가격이나 노력을 생각할 때 버리기 아까운, 그래서 꾸역꾸역 갖고 있다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후에야 버리게 되는 그런 유의 식재료. 그런 걸 구입하는 것은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결국 라자냐는 만들어보지도 못한 채로 새것 그대로 버려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가져간다고 딱히 사용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한 NGO 단체의 한국어 교사 해외 프로젝트에 지원한 나는 바로 다음 날 인도네시아로 파견될 예정이었다. 낡고 묵은 세간들은 버리고 비교적 멀쩡한 것들은 부모님 집으로 보내고 나니 커다란 이민 가방 하나와 42인치 트렁크 하나, 그리고 두꺼운 종이팩에 밀봉된 저 걸쭉하고 하얀 액체가 남은 거였다. 음식의 풍미를 더해 주고 보다 완성된 형태의 요리를 보장해 준다는 희귀한 원료.
다음 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차가운 늦겨울 공기 속에 희미한 봄의 기색이 수줍게 스며 있었다.
공항버스가 곧 터미널 2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가 옆에 앉은 아이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스라, 스라, 일어나. 다 왔다.”
이름이 스라? 참 특이한 이름이다.
동글동글한 머리가 버스의 흔들리는 각도를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좌석 등받이 사이로 얼핏얼핏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와 남자의 달래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이윽고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이고, 우리 이슬 같은 이스라, 어서 내리자.
나는 그제야 아이의 이름이 ‘스라’가 아닌 ‘이슬’임을 깨달았다.
이슬 같은 이슬아. 어쩐지 귀에 익은 문장.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눈가에 머물던 웃음은 서서히 입가로 번져갔다. 미지근한 웃음.
버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를 뚫고 지상에 도달한 햇살이 아이의 밤톨 같은 머리 위로 너그럽게 내리쬐고 있었다.
배낭 안에서 베샤멜 소스 종이 팩의 출렁이는 느낌이 등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
2년 전 겨울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그녀와의 만남을 사흘 앞두고서였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간단히 마친 후 곧장 용건을 말했다. 아내의 공부를 위해 부탁할 일도 있고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꼭 하고 싶다는 거였다. 관리자의 위치에 오래 있었던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권위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소 높은 톤의 음성이 묘하게 경박스럽기도 해서 저런 목소리에 음담패설이나 욕설을 얹어도 꽤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빳빳하게 각 잡힌 와이셔츠와 허리선이 맵시 있게 들어간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아는 척을 해왔다.
“한국어 선생님이십니까?”
맞다고 하자 난데없이 구십도 인사를 해왔다.
남자는 뒤쪽으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회전초밥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출입문과 맞은편에 위치한 곳에 한 남녀가 앉아 있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가 “뭐야, 젊은 아가씨네?” 하며 품평하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건장하고 단단해 보이는 어깨와 번들거리는 앞머리를 한껏 뒤로 넘긴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마뜩잖은 얼굴로 곁에 앉아 있는 여자를 소개했다.
“이름은 나비야, 인도네시아 사람입니다.”
나비야 샤히드. 센터에서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입국한 지 두 달 정도 됐고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앳된 외모의 아가씨였다.
내가 스툴 의자에 앉자마자 사내는 자신이 클럽 하나를 맡아서 운영하게 된 경위와 화려한 이력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 옆에 존재감 없이 앉아 있는 나비야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커다랗고 깊은 눈은 겁을 먹은 듯했지만 젊은 사람 특유의 호기심과 기대감 같은 것이 묘하게 스며 있었다. 일식집의 다소 밝은 조명은 자연스러운 다갈색 머리의 웨이브를 더 극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체리레드 빛깔의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은 움직임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빛을 띠었다. 그 화려하고 강렬한 색에서 불현듯 한창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배우가 떠올랐다. 욕망으로 가득 찬 나머지 온갖 날조와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인물. 그런 성격을 극대화하려는 장치인지 언제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등장하는. 주말 저녁 10시만 되면 이웃집에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복수할 거야, 복수할 거라고’ 같은 날선 말들이 벽을 타고 흘러들어오곤 했다.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눈매는 의외로 선해 보여서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와 이따금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까는 모습은 나의 가장 매력적인 표정은 뭘까 고민하는 소개팅 상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귀를 자극한 건 돈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내가요. 얘를 천만 원, 천만 원에 데려왔어요. 내가 저거 데려오느라고 비행깃값에, 호텔비에, 아휴, 암튼 그러니까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 이렇게 만나 뵙자고 한 겁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였을까. 잘 훈련된 고객센터 직원의 멘트처럼 툭 건드리면 거의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
“네네, 적응 잘해야죠. 걱정 마세요.”
나는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달리 뭐라고 말해야 했을까. 그저 사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것. 센터에 경위서나 시말서를 써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 내가 할 일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용건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엉겁결에 따라나선 나에게 그의 부하인지 직원인지 모를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임마, 똑바로 안 해?”
사내가 쏘아붙이자 구십도 각도로 재차 인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조폭 피라미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마침 신호가 바뀐 길을 건너는 발걸음이 바빴다. 건널목 앞에서 인사를 나눴지만 어쩐지 그들이 내 뒷모습을 계속 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조금 전 나눈 대화를 되새기며 그와 공모자가 된 듯한 느낌과 스스로에 대한 옅은 혐오를 동시에 느꼈다.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 것이 내 할 일이라고 합리화했지만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냉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살갗의 미세한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들었다. 나는 뭔가를 떨쳐내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잔뜩 움츠렸다. 그것이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진짜 추위 때문인지 모른 채로.
센터에서 전송해 준 구글 맵을 따라 신촌의 번화가 일대를 서성였다. 지하철 입구에 도달하기 전 왼쪽으로 미로처럼 얽히고 얽힌 후미진 골목길의 초입이 나타났다. 4차선 대로에 인접한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자 정면에 비교적 깔끔한 원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완연히 느껴지는 주변의 허름한 다세대 주택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비야의 집은 1층이었다. 원룸치고는 이례적으로 넓은 통창과 발코니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벨을 누르자 나비야가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실린 몸짓으로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우리 며칠 전에 만났죠?”
나비야가 알아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맨얼굴에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 사흘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앳되고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가기 좋게 한쪽으로 비켜서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빌트인 냉장고와 세탁기를 제외하면 딱히 세간 살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커다란 금속 옷걸이와 오로지 기능적인 면만이 부각된 PVC 앉은뱅이책상이 전부였다.
나비야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단문형 냉장고를 성급하게 열고 닫을 때마다 삼다수 병이 덜그럭거렸다. 냉장고 내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얼핏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나비야가 내온 건 오이 하나를 동그랗게 썰어 가지런히 배열한 플라스틱 접시였다. 흔히 접대용으로 내놓지 않는 오이를 내온 것이나 어쩐지 영유아들의 소꿉장난이 연상될 정도로 미숙하고 서툰 모양새가 식욕을 떨어뜨렸다. 그녀가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하며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붉은색 매니큐어가 말끔하게 지워진 손톱에 시선이 머물렀다. 큐티클이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매끈하고 투명했다.
나는 포크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본업에 충실하느라 먹을 새가 없다는 듯이 바쁘게 움직였다. 교재를 주고 이름을 확인하고 강의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설명을 이어갔다. 센터에서 교사들에게 일괄 배포한 교재 전면에 ‘초급 한국어 연습’이라는 교재명이 진한 고딕체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1장의 학습 내용인 호격조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상대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주로 친근한 관계에서 서로를 칭하는 말. 받침의 유무에 따라 ‘–아’를 사용해야 할 때와 ‘-야’를 사용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쉬운 예를 들어주었다.
나비야는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따라 했다. 나무야, 친구야, 기린아, 물고기야, 바다야, 도마뱀아, 나비야……. 나비야는 ‘나비야’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비야? …… 나비야?”
나는 얼마 전 국립미술관에서 구입한 노트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켰다. 김홍도의 「화접도」에 그려진 왕오색나비. 나는 “나비”라고 또렷하게 발음해 주었다. 행여나 ‘나비’라는 실체를 ‘나비야’라는 관념으로 인식하게 될까 염려하면서.
나비야는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재밌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모처럼 장난기가 느껴지는 웃음. 훗날 그녀를 지금의 이 모습으로 기억할 법한 어여쁜 웃음이었다. 친근함의 표현 자체가 이미 의미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녀의 이름과 어울리는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처럼 해사하게 웃다가도 문득문득 그늘진 낯빛으로 변하는 때가 있었다. 행여 나에게 들킬까 봐 표정을 금세 거두는 것으로 보아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거라고 짐작했다. 묻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오히려 알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날은 원룸텔 현관문 틈새로 은은한 닭고기 냄새가 비어져 나와 복도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었다.
“뭐 만들어요?”
나비야는 상기된 표정으로 ‘소또아얌(soto ayam)’이라고 말하며 설핏 웃었다.
“소또 아얌?”
그녀가 어눌한 발음으로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닭……고기? 닭고기 수프.”
“아, 인도네시아의 닭고기 수프예요?”
나비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자신을 가리키며 먹는 시늉을 했다.
“고마워요. 맛있겠네요. 우리 수업 빨리 끝내고 먹어요.”
그날은 ‘-같은’ 용법을 학습하는 날이었다. 다양한 예시를 반복적으로 따라 발음하도록 했는데 주로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하는 식이었다. 얼음 같은 냉장고, 바위 같은 문, 사이다 같은 물, 보약 같은 닭고기 같은 것들. 그마저도 나비야에게 생소한 단어가 많아 설명이 더 필요했다.
적절한 단어들을 떠올리느라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나비야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나비 같은 나비야’라고 말했다.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듯 크게 웃으며 “맞네요, 맞아, 나비 같은 나비야”라며 재밌어 했다. 나비야도 특유의 친근하고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이라는 단어 안에 내포된 섬세하고 미묘한 뜻은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비슷하다는 것일 뿐 온전한 그것이 아닌 것. 그래서 어떤 것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느껴지는 단어라는 말을. 날고자 하지만 단지 나비의 외양만을 갖춘 나비 같은 누군가처럼. 거기에 내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보라 같은 보라야. 그럴 때의 보라는 신비롭고 미래지향적인 보랏빛에 미처 다다르지 못한 빛바랜 ‘보라’를 떠올리게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비야는 대망의 소또 아얌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초조해하며 변명하듯 “없어. 샬롯, 터메릭, 코리엔더 없어.”라고 말한 건 내가 이미 국물을 한 숟갈 떠먹은 후였다. 아마도 소또 아얌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향신료를 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소금을 잔뜩 쳤는지 입 안에 짠맛이 오래도록 남았지만 나는 맛있다고 말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엄지까지 들어올리며.
나 또한 재료가 한두 가지 부족한 음식들이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홍고추 없는 된장찌개, 두반장 대신 된장을 넣은 마파두부, 다시마와 북어 대가리 없이 멸치로만 우려낸 콩나물국밥 같은 것들. 없으면 아쉽지만 그다지 결정적이지 않은 결핍과 함께 일상은 그럭저럭 굴러갔으니까.
국수를 다 먹고 현관으로 향하는데 작은 라탄 바구니에 단정하게 도열해 있는 강렬한 색깔의 매니큐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온전하고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처음 본 남자를 따라온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생활에 대해서. 조폭 나부랭이에 불과한 남편에 대해서. 문득문득 비치는 그늘진 낯빛으로 그녀의 불운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짐작이 확신으로 변한 날은 수업이 3개월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마주 앉으며 엷은 미소를 띠는 나비야의 얼굴에 피곤과 두려움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처럼 얼굴이 푸석하고 창백한데다 눈꼬리는 축 처져 있었다. 웃음이 유독 많던 나비야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비야,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입을 뗄 힘도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내저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의 한 점을 응시했다.
당황스럽고 답답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목이 탔다.
“나비야, 나 물 좀 마실게요. 일어나지 마요.” 하며 일어서는데 나비야가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는 손수 물을 뜨러 부엌으로 향했다. 텅 빈 냉장고에서 삼다수 병이 달그락거리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냉장고가 늘상 비어 있는 이유가 뭔지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남편이 집에 쓰레기 쌓이는 걸 극도로 경계해서 주로 그가 사오는 포장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거나 아예 외박을 하고 들어오는 날엔 끼니를 거른 적도 있다고.
당시에 나는 그 사실을 센터에 보고해야 하는지 잠시 갈등했다. 위생에 예민한 성격이면 그럴 수 있다고, 단지 성격이자 삶의 태도일 뿐 의도성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 지켜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었는데.
찬장 문을 열고 컵을 꺼내는 소리, 삼다수 뚜껑을 열고 물을 따르고는 컵을 쟁반에 올려놓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나비야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모양대로 검붉은 색소 같은 것이 찍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옆에서부터 시작해 나비야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검붉은 점들이 일정 간격으로 찍혀 있었다.
붉은 점들은 나비야가 잠시 머문 냉장고 앞에서 좀 더 넓은 직경의 점이 되었다가 다시금 작은 점으로 부엌 쪽으로 착실하게 이어졌다. 좀 더 오래 머문 싱크대 밑에 고여 있는 작고 눅진한 웅덩이에 시선이 머물렀다. 나비야는 맨발로 흔적들을 밟아 뭉개며 책상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숨이 멎는 듯한 타격감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나비야, 거기 밑에…… 뭐예요? 그거 피죠? 피예요, 피.”
나비야는 함부로 뭉개진 피를 바라보다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수습이 끝난 다음 나는 그녀를 앉혀놓고 찬찬히 물어보기로 했다. 이전보다 후회와 두려움이 더 깊어진 눈, 창백한 피부. 그녀의 눈동자는 오묘한 각도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비야.”
나비야에게는 슬프고 괴로울 때 우는 대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버릇이 있는 듯했다. 두툼하고 창백한 아랫입술에 살짝 피가 비쳤다. 우는 것을 수치로 여기도록 학습해 온 사람 특유의 자학.
“노 베이비, 베이비 노! 남편 나빠. 악마 같은 남편.”
나비야는 손을 칼날처럼 세운 뒤 배에다 대고 뭔가를 긋는 시늉을 했다. 앙상하고 메마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집, 좁아, 남편, 돈 없어.”
나비야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전형적일까. 연민과 함께 동시에 떠오른 생각은 그런 거였다. 말이 되어 나오진 않았고 스스로도 놀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좀 차가워졌다. 그것이 그녀의 피해자 같은 모습 이면에 감춰진 허영이 못마땅해서인지, 단순히 그녀의 고통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계약직으로 입사한 나는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에도 벅찼다. 2년 뒤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성을 쌓든 관련기관에 정규직으로 입사하든 모종의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초조했다. 그건 금방 식어버릴 것 같은 열망이었으니까.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일은 센터에 보고하고 그들의 결정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나는 근처 마트에서 인스턴트 미역국을 여러 개 사서 찬장에 비치해 놓았다. 그녀에게 조리법을 숙지시킨 후 집을 나섰다. 센터에 보고하겠다는 사무적인 말을 남긴 후였다.
그 후로 나비야를 만날 수 없었다. 전담부서에 보고한 후 수업은 중단됐고 계절이 바뀐 후에야 그녀가 쉼터에서 보호받다가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특정 다수 앞에서 성적으로 희롱하고 본인 의사의 반영 없이 중절 수술을 감행한 점, 상습적으로 강제 성교를 행한 점 등이 심각한 인권침해 혐의로 작용한 듯했다.
그녀의 앳된 웃음, 재료 공수의 어려움에도 정성스레 끓여 대접했던 소또 아얌, 모르는 단어를 물어오며 미안해하던 표정 같은 것들이 문득문득 떠올랐지만 하루를 별 탈 없이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벅찬 일이었기에 그때의 일은 금세 잊혔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재료로 미흡한 밥을 먹고 적은 돈으로 적금을 부으며 안전을 도모하는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해외 파견 기회가 왔을 때 파견 국가들 중 희망 근무지로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건 가끔 술친구가 되어주었던 업무지원 팀장의 추천 때문이었다. 기피하는 나라에서의 경험이 경력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팀장의 말은 정규직 전환을 꿈꾸던 나에겐 솔깃한 제안이었다.
출국을 하루 앞둔 그 날부터 수업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까지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결하고 모처럼의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마음속에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공간과 시간이 생겼고 잊고 있었던 일의 세부들이 느슨해진 마음에 스며들었던 거다. 나의 바람은 열망으로, 그녀의 것은 욕망으로 간단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걸까. 나비야 남편의 부탁에 즉각적으로 답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해 겨울 그들과 헤어지고 건널목을 건널 때 느꼈던 한기가 어깨를 감싸는 듯했다. 그때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
어학당에서 갖가지 규정들을 안내받은 후 한국어 교재와 체류허가증을 전달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온갖 걱정과 염려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결국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위한 밑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기어이 잔소리로 변한 엄마의 걱정은 베샤멜 소스에서 정점을 찍었다. 어차피 쓰지도 않을 거 굳이 가져간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엄마, 내가 그거 직구 하느라고 얼마를 썼는 줄 알아? 해외 배송비에 관세, 부가가치세 다 합치면 얼만데. 거기다 판매자가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걸 어떻게 포기해.”
질려버린 나는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 저절로 끊긴 듯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구매액 200달러 이하는 면세 대상에 포함되지만 배송비 금액이 15,000원에 육박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검색에 시간을 더 들였다면 무료배송도 가능했을 테니까.
건기로 접어든 도시는 말 그대로 한증막 같았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것이 낱낱이 느껴질 정도의 대단한 열기였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찬물에 샤워를 한 다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뒹굴거리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깔아놓은 블루버드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차 내부에 달린 에어컨에서는 더운 바람만이 나올 뿐이었다. 인공적이고 무용한 강풍 때문에 눈이 건조하고 침침해졌다.
흐릿해진 눈으로 얼마 전 발급받은 체류허가증을 꺼내보았다. 1년에 한번 갱신해야 한다는 확인증. 짧아도 너무 짧았다. 1년밖에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승인이었다. 그럼에도 이 허가증만 있으면 1년 동안 합법적인 거주민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유적지 입장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문득 그 해의 완연한 봄날, 나비야와 함께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우리는 해밀턴 호텔 앞에 정차하는 간선버스에 올랐다. 그날은 수업을 하는 대신 사원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센터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두 명이요.”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자 삑 하고 울리던 낭랑한 소리.
나비야는 남편과 클럽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행운’이라고 커다랗게 새겨진 활자 아래 춘식이 캐릭터가 네 잎 클로버 두 개를 들어 올리고 있는 유치찬란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꽤 인기를 끄는 티머니 카드를 그녀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얇고 팽팽한 카드에서 도시의 탄력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비야는 그런 카드는 어디서 구입하는 거냐고, 그걸로 도시 곳곳에 다다를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버스와 지하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데다가 환승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여러 이점들을 늘어놓았다. 그 가볍고 얇은 감촉의 플라스틱이 지니고 있는 손쉬운 자유에 대해서. 1.5리터들이 삼다수와 반쪽짜리 오이와 배달 음식 찌꺼기뿐인 휑한 냉장고가 있는 작은 원룸이 떠오른 건 한참 후였다.
그 일이 있고 다음 수업 날, 현관문 안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벨을 누르자 그녀의 남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각팬티 한 장만을 걸치고서였다.
“오늘 수업 있는 날인데, 어떻게 집에 계셨네요?”
지나치게 꾸며낸 말투로 내가 묻자 그는 ‘아, 오늘은 못해요, 못해, 가세요.’ 마치 귀찮은 잡상인을 내쫓듯 손사래를 쳤다. 전혀 부끄럽고 아쉬울 게 없다는 투였다. 쫓겨나다시피 건물 밖으로 나오며 언짢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도 그의 행색에 대한 인상은 오래갔다. 번들번들하게 빛나고 울끈불끈 불거진 가슴 근육이 실룩이던 게 떠올랐다. 몸뚱어리 하나가 위협이 될 수 있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 부러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전신을 드러내는 그의 야만성이.
아내의 외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이 저러하다면 그보다 더한 분노는 어떤 식으로 표출할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문득 그녀의 두려움을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현재가 내가 욕망하던 것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깨닫는 순간의 두려움.
숙소 앞에서 하차하고 아파트 로비로 들어서다가 아파트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는 뭐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간혹 가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오토바이들이 떼로 나오는 것은 보았지만 사람이 드나드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좁고 허름한 길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길 한쪽으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작은 점포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갓 낳은 듯한 계란들을 산처럼 쌓아놓은 가게와 스낵류를 판매하는 구멍가게 사이에 ‘sop buntut’이라는 팻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sop’은 인니어로 국을 의미했다.
티셔츠 뒷부분이 땀으로 흥건해져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장염과 식중독에 유의하라는 지인의 말이 문득 상기될 정도로 남루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가게였다.
이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가게 내부에는 퀴퀴한 냄새와 습기가 손님처럼 앉아 있었다. 에어컨 같은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열악한 곳이라 바깥과 온도차가 확연히 나진 않았지만 세라믹 타일로 마감한 바닥이 지면으로부터의 열기를 어느 정도 차단해 주는 듯했다.
시커먼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선풍기 날개가 마지못한 움직임으로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열 평 남짓한 가게는 크고 작은 균열들로 어수선한 회백색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 얼룩처럼 새겨져 있는 한쪽 벽에는 낙서하듯이 조악하게 휘갈겨 쓴 메뉴들이 붙어 있었다.
그중 하나의 메뉴에 시선이 머물렀다. 소또 아얌.
잠시 후 등이 구부정하고 슬퍼 보이는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게 주인인 모양이었다. 미간에 피곤이 짙게 내려앉은 노파의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소또 아얌을 시키자 대답도 안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미리 만들어 놓았는지 5분도 채 안 되어 소또 아얌이 투박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노인이 작은 접시에 라임 두 개를 내오며 손으로 짜는 시늉을 했다.
나는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라임 하나를 국물에 짜 넣었다.
잠시 나비야가 만들어줬던 밋밋한 맛의 닭고기 국물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면을 후루룩 먹은 뒤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 넣었다. 그날 나비야가 완성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맛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묘한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여러 향신료가 조합되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의존하지는 않는 주체적인 맛과 라임의 새콤한 맛이 입 안을 알싸하게 감돌았다. 이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면의 감촉과 숙주의 아삭함, 명료한 맛들의 오묘한 결합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모두들 이런 완전한 순간을 꿈꾸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겠지. 저마다가 꾸는 꿈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그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욕망으로부터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가면서.
고요한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정적은 한 이방인이 면과 국물을 먹는 소리와 그에서 비롯된 기묘한 활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문득 숙소의 냉장고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베샤멜 소스를 떠올렸다. 유통기한은 바로 내일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용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 이주 노동자 복지회, 영등포 글로벌 빌리지에서 근무했다. 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최우수상, 제5회 적도문학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