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8호
재미 한인 모국어 문학잡지의 새로운 정체성 수립을 위해
박덕규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 수는 200만 명 이상, 최대 260만 명에 이른다.1) 1900년대 초 하와이로 가서 오아후섬 등 여러 지역 사탕수수농장 노동자가 된 이들로부터 시작한 한인 이민 역사는 이제 120년을 넘겼으며, 1982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Korea Town’이 지정돼 구역 표지판을 세운 것도 40년이 넘었다. 한인들은 미국 내 거의 모든 주에 흩어져 사는데, 그중 한국산을 파는 가게나 음식점 등이 늘어선 한인 밀집 지역도 여러 곳이다. 한인을 고객으로 하는 카페, 마트, 주유소, 백화점, 호텔, 약국, 병원, 종교 시설, 기타 크고 작은 회사, 나아가 한국어 신문사나 방송국까지 있는 도시도 있다. 이들 한인 인구 중 모국어를 구사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한 기록은 찾기 어려우나 이민 시기, 인구 분포, 혼혈 정도 등을 따져봐서 50퍼센트는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들의 모국어 문학 활동은 이런 문화와 인구를 바탕으로 하는바, 그 중심에 문학잡지가 자리한다.
잡지는 특정한 인구 집단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집적해 간행하는 인쇄물이다. 그중 문학잡지는 문학작품과 더불어 다양한 문학 정보를 수록하면서 담론을 생성한다. 특히 이민자들의 모국어 문학잡지는 지속적인 발표 지면으로서 문학의 개별적·집단적 성장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민자의 정체성 회복이나 창조적 자긍심 고취, 민족적 소속감 공유에 기여한다. 또 모국 문화와 언어의 수용·보존·전파·전승 등의 사회문화적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반면, 이 일은 그들의 현지 적응을 늦추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민지에서 모국어 문학잡지를 발간해서 소통하고 연대하는 일은 보다 특별하게 이해해야 한다.
2024년 현재 미국(북미)에서 발행하는 문학잡지는 25여 종인 것으로 집계된다.2) 그러나 이 수치 자체나 미국 이민 아닌 옛 소련 지역 중앙아시아 및 중국, 일본 등의 예에 견주어 ‘많다’는 것 등에 큰 의미를 둘 것은 없다. 미국은 지난 세기 동안 국제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인종 사회를 표방해 국가 규모를 크게 확대한 나라다. 이런 주류적 배경에서 한인들은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유민으로서 ‘유민 감성’, ‘향수’, ‘국권 회복 의지’ 등을 모국어 활동으로 표출하고 집단화했다. 이때 한글이 강력한 구심력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또 특유의 응집력이나 개척 정신 등도 큰 동력이었을 것이다. 이후 광복을 맞은 조국은 6·25 전쟁을 겪어 분단국이라는 민족적 약점을 안은 채로 미국과 전면적인 교류 상태를 유지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재미동포가 급증하고 모국어 문화도 그만큼 활발해지자 이를 토대로 여러 매체들이 생겨났다. 1980년대 들어 본격적인 의미의 문학잡지들이 연이어 창간되면서 ‘미주 한국문학’이라는 범주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3)
인류는 21세기 들어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유무형의 제품을 생산·소비, 제조·공유, 수요·공급을 각각 즉각적인 관계로 일원화하는 글로벌 사회를 구축했다. 문학의 글로벌화 역시 이런 변화와 함께한다. 100년 이상 양과 질에서 깊이를 더해 온 한국 근대문학은 세계문학의 수요와 평가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전개한 재외 한인문학은 이런 국제적·문화적 변동 과정에서 크게 쇠퇴한 반면 미국에서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그런 기미가 없다. 국내와 교류하는 내용도 많고 다양해져서 지역·장르 등에서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 코로나19 이후 원격 교류까지 크게 확대돼 기획·편집·제작 등 여러 면에서 발간도 순조롭다. 한편 이주자로서의 고립감이나 정체성 혼란 같은 이민 정서는 이전에 비해 한결 덜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상태로 모국을 떠나 살면서 현지의 주류적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모국을 향한 그리움과 애국 정서를 모국어로 표출하며 공유하던 시기의 그들과는 분명히 다른 상태에 놓인 셈이다. 이들의 문학, 이들의 문학잡지는 이 새로운 상황에 부딪쳐 나가야 한다.
당연한 것이지만, 재미동포의 모국어 문학이 이민사 초기부터 전문적인 문학잡지로 지면을 확보했을 리 없다. 1904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동포의 지식계발과 자주독립을 위한다는 취지’로 출범하며 창간한 《신죠신문(新朝新聞)》의 예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신조신문》은 국문 표기로 동포 사회의 정보 전달, 지식 고취, 조국 독립 의지 표현 등을 담은 다양한 글을 실었다. 이듬해 경영난으로 폐간할 때까지 수기(手記) 등사판으로 1년여 동안 월 2회 발간을 지속했다. 이 신문에 문학작품이 실린 기록이 남아 있는데 실제 어떤 규모와 형태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시기, 재미동포 이민시의 최초로 보이는 「이민선 타던 전날」(이홍기, 1905)4) 등을 통해 그 유형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과 매체는 불가분의 관계인바, 한국문학사가 바로 이를 잘 증명해 왔다. 1908년 《소년》에 이어 《태서문예신보》(1918), 《개벽》(1920), 1920년 전후 《창조》·《백조》·《폐허》·《금성》 등은 시, 소설, 평론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글을 선보이며 한국 현대문학의 형태와 방향을 잡은 매체다. 이와 직접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재미동포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한 매체가 몇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13년 하와이에서 시사교양 증진과 주권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발행한 월간 국문 잡지 《태평양잡지》다. 정치·종교·교육·과학·문학 등을 망라한 종합지의 성격으로, 문학란에 이민자의 처지를 감안한 흥미 본위 번안소설을 중심으로 전래설화 스토리를 살린 장편소설 및 창작소설, 애국계몽을 표방한 창작시 등을 실었다. 재정난으로 도중에 12년간 휴간하는 풍파를 겪으면서도 1930년 12월까지 발행했고 모국어 문학의 주요 발표 지면으로 기능했다.5)
이어 주목할 매체는 1909년 2월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 단체인 ‘국민회’ 기관지로 창간한 《신한민보(新韓民報)》다.6) 처음부터 ‘민족의 대변기관’을 자처하며 주 1회 수요일마다 발행했다. 국권회복운동 관련 논설과 기사를 비롯해서 국내외 동포 소식을 폭넓게 실었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는 내용도 빼놓지 않았다. 문학 분야는 이민 과정과 그 어려움, 항일 정서, 민중 계몽 의지 등을 담은 시·창가·민요·한시·한문 산문·시조·개화 가사·소설 등을 실었다.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국내 창작물과는 달리 검열이 없는 상태에서 식민지 현실을 묘사하고 항일 정신을 담는 등의 자유로움을 누렸고, 국내 신소설류에서 보이던 봉건적 가치관을 벗어나 달리 자유연애 등 새로운 풍속을 스토리화하기도 했다. 또 장인환·전명운 등 두 의사(『兩義士合傳』)와 안중근 의사(『大東偉人安重根傳』) 등 항일 애국 투사를 다룬 전기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도 특기할 만하다. 《신한민보》는 재정 부족 등 여러 사정을 겪으며 몇 차례 휴간하기도 하지만 광복 이후까지도 존속해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매체로 기능하면서 문학에서 애국주의에 입각한 낭만적 정서를 거듭 드러냈다.
1925년 한인 유학생들이 결집해서 창간한 《우라키(The Rocky)》도 재미동포 모국어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면으로 기록할 만하다. 통상 재미동포 이민 역사를 하와이 노동자로부터 설명하는데 시기를 앞당겨 1882년 한미수호조약 이듬해 방미해 유학생이 된 유길준과 몇 년 사이 윤치호·서재필·서광범 등으로 이어진 유학·망명파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후 유학생은 1910년 30명에 이르렀고, 1919년에는 77명, 그 이후 수백 명이 되는 과정에 유학생 집단 ‘북미학생총회’를 결성했다. 로키산맥을 뜻하는 말인 ‘우라키’는 ‘R’ 발음을 의식해 ‘우’라는 말을 앞에 붙여 원음에 가깝도록 표기했다. 연간 잡지로 1933년 총 7호로 종간하기까지 종교철학·교육·사회과학·자연과학·문예 등 다양한 분야를 수렴했는데 이중 문학작품은 시 29편, 수필 37편, 소설 6편, 평론 12편 등과 설명 58편, 논설·연설 69편, 번역을 포함한 기타 63편 등이었다. 《우라키》는 문학을 특별히 전문화해서 수렴한 잡지라 할 수는 없고, 종간호에 가까울수록 문예란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고국에 대한 향수, 새로운 문화와의 가치 대비, 미국에서의 차별 등 다채로운 정서와 가치관을 드러낸 작품들로써 그 시대 한인들 특히 유학생들의 내면을 표출하는 문학 지면으로 기능을 수행했다.
《신조신문》에서 《우라키》에 이르는 여러 종의 매체는 대체로 종합지 성격이었고 문학을 할애했지만 목적성이 강했다. 일부 한글문학의 현장성과 변화 과정을 드러낸 자료적 측면 외에 한국문학사에서 새롭게 인식할 만한 내용은 드물었다. 문학작품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감정의 표출, 주제의 나열, 흥미 본위의 서술 등의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1924년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을 금지하고 동구로부터의 이민자 수에 할당량을 설정한” 이민법 개정으로 수십 년간 한인 인구의 유입이 크게 늘지 않은 것이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미주 전 지역의 한인들이 조국 광복 운동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결집하고 실질적인 홍보 기능까지 담당해야 했던 시대적 요구와 더불어 이해해야 바람직하다. 도리어 국권 상실의 시기에 척박한 이민지에서 그 회복을 위한 굳건한 의지를 중심으로 진솔한 이민 정서, 모국에 대한 향수 등을 드러내 식민지 시대 한인 디아스포라의 면면을 집단적으로 실증하면서 민족정신과 ‘한글문학’에 대한 자긍을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재삼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재미동포 한인 문학이 크게 달라진 것은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다. 이때부터 한인 이민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1970-1980년대에는 연평균 2만 명을 상회했다. 그런 만큼 거주 지역도 넓어졌고 여러 주에 걸쳐 인구 밀집 지역도 나타났다. 국내 언론사로서 현지 법인으로 설립한 《미주한국일보》(1969), 《미주중앙일보》(1974) 등은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전 지역 한인 밀집 도시로 외연을 넓혀가면서 ‘문예공모전’ 등을 개최해 모국어 문학 활동의 촉매가 되고 그 자체로 문학 매체 기능을 담당했다. 이런 배경에서 재미동포 사회에서 보다 진전된 문학잡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미동포 중 소위 전문 작가라 할 만한 문인들의 작품만으로 지면을 채운 첫 사례는 1973년 12월 창간한 《지평선》이다. 김진춘, 김시면, 김병현, 석진영, 정용진, 박영숙, 고원, 마종기, 황갑주, 최연홍 등 시인들이 함께한 동인지로 총 4호까지 결실을 남겼다. 시 장르로 한정했고, 그나마 1, 2호는 타자기 활자 상태의 수공업 제본이었다. 그러나 모국에서 등단 시인으로 활동한 시인들이 참여해 높은 문학적 수준을 유지한 점, 2호 이후 이들 중심으로 1975년 『재미시인선집』까지 발간해 문학 전문 매체의 가능성을 연 점 등 의의가 상당하다.7)『재미시인선집』은 활판 인쇄 제본이고 요즘 말하는 ‘선집’이 아닌 ‘공동시집’으로서 이후 시기 여러 ‘공동시집’의 모태가 되었다.
《지평선》과 『재미시인선집』으로 촉발된 전문 작가들의 움직임은 1982년 미주한국문인협회(Korean Literary Society of America)의 창립과 《미주문학》의 창간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미주한국문인협회는 미주 전역 한인 문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문단 단체로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두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인가를 받아 출범했다. “미주에 거주하는 문인들이 올바른 문학의식을 가지고 한국문학으로 한국문화를 계승하는 한편 교포사회에 필요한 정신적 풍요로움을 문학을 통해 공급”(협회 ‘설립취지문’에서)한다는 취지에 미국, 캐나다의 한인 문인 총 100여 인이 함께 뜻을 합했다. 이들은 소위 ‘등단 문인’으로 이전의 동호인이나 애호가 집단과는 성격이 달랐다. 1982년 9월 2일 창단식을 가졌고 초대 회장으로 모국 문단의 소설가·언론인 출신 송상옥을 선출했다. 그해 12월 이 협회 기관지로 창간한 《미주문학》은 이후 재미동포 사회에서 보다 공적이고 집단적인 의미에서 ‘미주문학’의 구심점이 되었다.
“
우리가 태어나서 이만큼 살아올 때까지 우리의 思考를 지배해 온 것은 母國語다. 우리는 母國語로 생각을 하며, 온갖 오묘한 감정표현도 母國語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태어나 이곳 언어로만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한국인을 부모로 하여 태어난 이상, 그의 부모가 사용하는 言語를 한갓 먼 他國語로 취급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들도 결국 돌아갈 곳은 母國의 文化圈 이외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흔히 말하는 문학의 세계성이란 별다른 뜻이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야말로 세계문학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문학에의 하나의 디딤돌로 《미주문학》을 감히 내놓는다.
여기 몇 사람으로 시작한 《미주문학》의 탄생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하나의 큰 사건이다. 그 성과가 앞으로 어디까지 미치게 될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출발이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라는 이상한 땅에서, 母國語로 표현되는 우리의 문학이 앞으로 어떤 빛깔과 모습의 꽃으로 만개될지 지켜보며, 끊임없이 보살피고 가꾸면서, 아울러 깊이와 폭을 넓히며, 우리는 이왕 시작한 이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계속할 뿐이다. - 송상옥, 「세계 문학에의 디딤돌로」(권두언)에서
”
《미주문학》 창간호는 이 단체 결성의 산파역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전달문의 「두 개의 바다」를 비롯해 총 20인의 시를 앞세웠고, 송상옥·김광주·서승해의 단편소설, 최백산 외 12인의 수필, 오영민·황영애의 동화, 이사주·장소현의 희곡, 최금산·김명환·강달수의 평론 등 북미권 전 지역 문인 필진과 문학의 전 장르를 아우르는 구성으로 뒤를 받쳤다. 연간지로 시작했다가 2002년 제19호부터 모국 정부로부터 연간 1,000만 원 정도의 발간지원금을 받게 돼 계간지로 전환했고, 미주문학상과 신인상, 한글 백일장, 모국 문인 초청 특강과 문학 캠프, 세미나와 시화전 등 직접 주관한 연례행사를 통해 모국어 문학의 발굴·확산에 기여한 내용을 포함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모국 지원금은 중단됐지만 그만큼 자생력이 생겨 2010년 봄호로 제50호, 2022년 가을호로 제100호를 넘겼으며 2024년 가을호로 통권 108호가 된다. 창간호 162쪽이던 분량은 그사이 매호 300쪽에 달하고, 101명 회원이던 주소록은 총 400명을 넘어섰다.
재미동포 나아가 재외동포 이주사에서 미주한국문인협회와 《미주문학》은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대륙 재외동포 문단에서는 없었던 규모와 전문성이라는 점, 북미권 전 지역의 한인 사회를 아우르는 대규모 집단이라는 점, 동포 사회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앞선 인적 자원들이 핵심을 이루었다는 점, 창립 후 상당 기간 이러한 규모와 전문성을 심화하고 확산해 오면서 이민 사회에서 모국 문학의 새로운 현장으로 자리해 왔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그 의미는 간단히 ‘미주 한인 문학사는 《미주문학》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미주문학》 이후 미주 문단은 주목할 만한 다수의 문학 전문 잡지로 더욱 풍성해졌다. 1983년 《미주크리스찬문학》(미주크리스찬문인협회), 1987년 《외지(外地)》(재미시인협회) 등은 문인 단체 결성과 더불어 창간한 종합문예지다. 1988년에 창간한 《문학세계》는 단체 없이 미주 전역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문예지로 출범했다. 그 외에 1985년 동인지 《신대륙》, 같은 해 시카고의 동인지 《백양목》, 1986년 종합문예지 성격의 《객지문학》, 같은 해 북미권 시선집 『바람의 노래』 등도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특히 지역적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문학잡지의 등장을 보았다. 즉, 1989년 창립한 미동부한국문인협회의 《뉴욕문학》(1991), 1991년 워싱턴문인협회의 《워싱턴문학》과 애틀란타한인문학회의 《한돌문학》, 1995년 오렌지문학회(오렌지글사랑)의 《오렌지문학》과 샌프란시스코문인협회의 《샌프란시스코문학》, 1996년 시카고문학회의 《시카고문학》 등이 각각 뉴욕, 워싱턴, 애틀란타, 오렌지카운티,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의 거점으로 창간했다. 이 외에 1997년 해외문학회의 《해외문학》, 1999년 재미수필가협회의 《재미수필》, 그 밖에 《해외한국시》(1993), 《미주기독교문학》(1996), 《한뿌리》(1997), 《四海》(1999) 등이 창간의 줄을 이었다.
이어 2000년대는 《미주동백》(시사랑동백회, 2000), 《미주아동문학》(미주한국아동문학가협회, 2002), 《오레곤문학》(오레곤문인협회, 2002), 《예지문학》(시카고예지문학회, 2004), 《미주시학》(미주시인협회, 2005), 《달라스문학》(달라스한인문학회, 2005), 《애틀란타시문학》(《한돌문학》의 후신, 애틀란타문학회, 2006), 《시애틀문학》(시애틀문학회, 2007), 《버클리문학》(버클리문학협회, 2013), 《미주가톨릭문학》(미주가톨릭문학협회, 2016), 《미주한국소설》(미주한국소설가협회, 2018), 《한솔문학》(달라스한솔문학회, 2019), 《미주시조》(미주시조시인협회, 2022), 《K-Writer》((재)나무달, 2022) 등으로 이어졌다.8)
모국어 매체는 모국어 집단의 삶을 재조정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재미동포 사회의 모국어 문학잡지는 이민지 미국에서의 모국어 생활에 상당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재미동포의 정체성 유지와 자부심 고취, 개별적 창의력 개발과 실현, 모국 문화의 인문학 자양 수급, 커뮤니티를 통한 연대 강화 등 유무형의 이익도 발생한다. 한국문학사는 모국어 문학의 확장과 관련한 새로운 현장 자료를 얻고 함께 담론을 도출해 왔다. 그러나 이제 재미동포 사회는 전체적으로 장기 상주하는 인구수가 늘어나지 않고 있고 문인 집단 자체도 고령화하고 있다. 모국과의 유대와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이민자로서의 감성적 체험의 폭도 날로 좁아 드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에 문학잡지의 기획과 발간 형태 나아가 그 내용 등에서 대응하고 있는 기미는 아직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유지해 온 기존 재외동포 모국어 문단이 와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나라의 새로운 교역지대에 생겨나는 작지 않은 규모의 모국어 집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변화는 21세기형 모국어 문단의 새로운 열림을 기대하게도 한다. 실제로 호주나 유럽,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곳의 기존 모국어 문단은 이렇듯 20, 21세기 형태가 공존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재미동포 모국어 문단 역시 이런 공존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문학의 전통과 이민문학의 현장에서 모두 재미동포 모국어 집단을 여전히 20세기형 디아스포라로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면서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문학과 재미동포 모국어 문학은 서로 ‘초국가적 장거리 민족문학’9) 으로서의 한글문학이다. 재미동포 모국어 문학은 그동안 한국문학의 전통과 현장에 대한 고립과 단절을 모국을 향하는 구심(球心)과 향일(向日)의 정서로 극복하려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 모국과 손쉽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초국가적 장거리에서 원심(遠心)과 향월(向月)을 아우르는 상상력을 요청한다. 모국어 문학잡지의 개안과 분발을 기대한다.
1) 재외동포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외 거주자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소지한 적이 있는 사람과 그 직계 혈족’으로(종래는 3대까지) 규정되며, 이중 재미동포 수는 2023년 기준 262만 명으로 집계됐다(외교부).
2) 이형권, 「미주문학의 발전과 한글 문예지의 역할」, 《너머》 제4호, 한국문학번역원 웹진, 2023. 9. 1. 참조.
3) 재미동포 모국어 문학의 전개와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박덕규 외, 미주 한인문학(해외 한인문학 창작현황 자료집 1)(한국문학번역원, 2020)을 저본으로 했다.
4)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하와이 시심 100년』, 관악, 2005.
5) 《태평양잡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해수, 「하와이 이주와 태평양 잡지」(《너머》 제6호, 한국문학번역원 웹진, 2024. 3. 1.)를 참조했다.
6) 《신한민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기택, 「미주의 디아스포라 한글 문학」(《너머》 창간호, 한국문학번역원 웹진, 2022. 11. 14.)을 참조했다.
7) 《지평선》을 동인지로서 1940년대 초 만주에서 발행한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 이후 ‘해외동포 문단의 두 번째 결실’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전 일본 도쿄에서 나온 《창조》(1919) 등을 감안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
8) 이형권의 앞의 글에서 ‘미주 문단의 한글 문예지’를 정리하면서 미주 권역을 넓혀 캐나다의 《캐나다문학》(캐나다한인문인협회, 1977), 아르헨티나의 《로스안데스문학》(재아르헨티나문인협회 1996)까지 포괄했다.
9) 홍용희는 「한인 문학의 창조적 소통을 위하여」(《너머》 제4호, 한국문학번역원 웹진, 2023. 9. 1.)에서 ‘속지주의’의 논의 차원을 넘어 ‘장거리 민족주의’ 개념의 ‘상상의 공동체’를 설명하고 있다.
1980년 《시운동》 시,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1994년 《상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날 두고 가라』,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평론집 『문학과 탐색의 정신』 등을 펴냈다.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소장 및 같은 과 초빙·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