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8호
고려인 잡지 문학: 기로에 선 문예지에서 세대교체에 따른 맞춤형 플랫폼으로
이은경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들은 자신을 ‘고려 사람’이라고 일컬으며 민족적 자존감과 긍지를 지켜왔다. 이런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신문과 잡지 문학이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새롭게 정착했던 타지의 생활환경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러시아는 문학의 역사가 깊은 곳인 만큼 이들에게 미친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신문과 잡지는 러시아 근대문학을 태동시킨 연단이었다. 이들 매체는 문학의 양식과 미학, 재생산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일종의 사회 제도나 다름없었다. 특히 잡지의 시대로 불리던 18세기 중반에는 근대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문학을 소개하고 유통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훈육하는 공격적 장치로 활용되었다.1) 이런 러시아 문예지 전통은 러시아 땅에 정착한 한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구한말에서 1920년대 초까지 극동에서는 동포들에게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시대정신을 견인하는 다양한 한글 매체들이 성행했다. 그중에서도 1923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한글 신문 《선봉》은 고려인의 역사와 사회문화, 고려인 문학에 대한 구체적 증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의의가 깊다.
1923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1운동 제4주년을 기념하여 《삼월일일》이라는 신문이 발간됐다. 이후 신문은 제4호부터 《선봉》으로 제호가 바뀌었고, 1938년에는 《레닌기치》로, 그리고 1991년에는 《고려일보》로 변경됐다. 시대별로 달라진 제호처럼 이 신문은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동하면서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또한 선구적 문예지로서 역할도 담당했다. 이 지면을 통해 고려인 작가들은 다양한 문학작품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삶을 그려냈다.
고려인 잡지 문학이 러시아의 환경에서 발원했다는 것은 내용과 실천 방식에서 증명된다. 러시아 작가들은 잡지 지면을 통해 여러 사회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잡지의 이런 성격은 때로는 진보적이거나 혁명적이었고 또 때로는 관제언론의 역할을 자처하며 보수 이데올로기를 이끌었고, 또한 세속문학을 무기로 독자층으로부터 대중성을 확보해 나가는 등 다양한 모습을 제시했다. 러시아 잡지 문학은 교훈성, 비판성, 사회성이라는 강한 특징과 함께 사회의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해 나갔다. 《선봉》, 《레닌기치》, 《고려일보》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던 점, 그리고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중심축이었다는 점에서 러시아 잡지 문학으로부터의 영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선봉》 시기는 소련 정치 이념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소수민족으로서의 고려인 사회를 보여준다. 《선봉》에 실린 문학 작품들은 주로 ‘3·1운동’과 ‘항일 민족 운동’이 주를 이뤘고, 산업현장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헌신과 계몽운동, 남녀평등 등 고려인 사회의 삶과 가치를 주제화했다. 대중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사회 이상을 설파하고 계몽해 나가는 데 앞장서면서, 동시에 고려인 작가들의 한글 작품을 널리 소개했으며 한국어의 바른 표기법이 확립될 수 있도록 어문학자들을 후원했다. 《선봉》이 문예지로서 지위를 얻는 데에는 1938년 연해주로 망명해 온 포석 조명희의 역할이 컸다. 투고자가 부족해서 존폐 위기를 겪던 문예란에 조명희는 직접 운율과 리듬이 뛰어난 풍부한 내용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지면의 위상을 높였다. 「짓밟힌 고려」, 「볼셰비키의 봄」, 「십월의 노래」, 「맹세하고 나아서자」, 「여자 공격대」, 「‘오일’ 시위운동장에서」, 「조선의 놀애들을 개혁하자」 등 《선봉》에 실린 조명희의 작품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고양된 파포스가 특징으로, 조선적 민족주의와 소련적 사회주의의 결합체라는 평가를 받았다.2) 그러나 《선봉》에 실린 시, 소설, 평론 등의 작품들은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한국적 정서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당시는 당 이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선봉》 시대가 소수민족인 고려인 사회에서 실질적인 ‘고려화’ 정책이 쉽지 않았던 만큼 고향과 민족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토양은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3)
1938년 5월 15일 카자흐스탄에서는 《선봉》을 기반으로 4면짜리 타블로이드판 신문 《레닌기치》가 창간된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와 더불어 시작된 이 시기는 한층 강력한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레닌기치》는 1954년 1월 1일부터는 주 5회에 걸쳐 7,000부를 발행했으며 지면 확대와 함께 ‘문예지란’이 활성화되면서 한글문학이 점차 꽃피우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 기존의 1세대 작가들과 신예작가들의 참여로 다양한 작품이 실렸고 1958년에서 1990년 사이에 출간된 한글문학 단행본만도 15권에 이를 정도였다.
신문 발행 기간이 길었던 만큼 작품 주제도 시기별로 크게 구분되었다. 강제 이주 직후인 1938년부터 1954년 스탈린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사회적으로 경색된 분위기 속에 소련 정치 이념을 찬양하는 주제의 작품들이 주종을 이뤘다. 그 이후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등장하는 1985년까지의 시기에는 고려인 문학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니키타 흐루쇼프의 해빙기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기가 열리면서 고려인 사회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점점 띠기 시작한다.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이전에는 전혀 등장할 수 없었던 스탈린 정치의 부조리와 강제 이주 역사가 이들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취임한 1985년부터 소련이 붕괴하는 1991년까지의 시기는 개혁·개방의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이와 함께 1990년 한·러 수교로 조국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고려인들은 민족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유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시기 고려인 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점에서 쇠퇴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탓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글문학 지형이 좁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글세대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후속세대를 배출해 내지 못하면서 고려인 문학은 찬란했던 걸음을 멈추고 만다.
1991년 《레닌기치》는 시대의 선언과도 같은 또 한 차례의 변신을 꾀한다. 제호를 《고려일보》로 바꾸고 이제 그들이 정착한 땅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편집인과 발행인, 구독자의 민족적 정체성을 선포하고 그것에 더욱 충실해질 것임을 천명했다. 《고려일보》는 수필과 소설, 평론이 간간이 소개되기는 했으나 앞서 《선봉》이나 《레닌기치》에 비해 문예란이 상대적으로 많이 축소됐다. 이 시기 특징적인 것은 고려인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한국 현대문학도 소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려일보》 시기 문학작품의 주요 주제는 고향과 역사적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고향은 조국(한국)과 더불어 돌아갈 수 없는 연해주 지역이었다. 기억과 그리움을 모티프로 삼은 수많은 작품이 등장했고, 연해주를 상징하는 ‘바다’는 고려인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이미지 중 하나였다. 《고려일보》는 한국과의 교류·협력과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한국의 고전과 전래동화, 문학작품, 한인 디아스포라의 작품을 소개했다.
고려인 잡지 문학은 모국어와 한글문학으로 민족 얼을 계승하고자 했던 선각자들의 의지로 어느덧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아이러니하지만 고려인 잡지 문학의 최대 위기는 소련 붕괴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30여 년의 지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외압이 사라지고 경제적 어려운 시기도 잘 극복했지만, 현재 고려인은 또 다른 시대의 큰 파도를 넘고 있다.
스탈린 시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 가운데 소련 붕괴 이후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연해주로 재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더해 중앙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독립 이후 러시아어 대신 자국어 우선 정책을 펼침으로써 이들의 이주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배타적 민족주의의 대두로 고려인들은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고 다시 러시아로 재이주하기에 이른다. 소련 시민으로 살던 이들에게 이는 큰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거주 고려인은 현재 50만 명에 달한다. 인구 비율은 전보다 줄었지만, 이것이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오늘날 이들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인 1, 2세대만 하더라도 모국어, 즉 한국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들은 비록 몸은 타국에 있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했으며 이런 민족의식의 일부로 한글 매체를 탄생시키고 이어왔으며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다. 정규교육은 러시아어로 이뤄졌지만,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했고, 고려인 학교에서 한글 공부는 아주 중요한 과목이었다. 현대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사용하는 독특한 한국어 억양과 어휘가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한 고려인 시인 스타니슬라브 리는 고려인들의 한국어가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맹과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에 살지 않아서 현대 한국어를 모를 뿐, 러시아로 이주해 올 당시였던 조선 후기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4)
이들 스스로 ‘고려 말’, ‘고려 사람’이라고 명명한 것 역시 우리가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순수 한국어’를 고집하는 민족정신에 기인한다. 그러나 3세대에서 4세대, 5세대를 점차 거치면서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잊어가고 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세대들이 사라지고 적절한 교육 지원마저 이뤄지지 못해 한국어 습득이 늦어지면서 신세대 고려인들은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식 교육과 러시아 문화의 세례를 받은 고려인으로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어 교육과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보다는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자신이 그곳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류의 영향으로 K-팝, K-드라마에 매료되는 세대이지, 과거처럼 현지에서 출간되는 한글 매체를 공유하는 세대가 아니고 한국어로 읽고 쓰는 세대가 더는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 세대들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인과는 다른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어찌 보면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스타니슬라브 리의 「고려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칠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려 사람에게는 성(姓)과 외모만이 남았을 뿐이다. 러시아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타민족에게서 가장 좋은 것(문화)를 흡수하고 흉내를 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견디기 힘든 슬픔은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마치 우리가 고유한 민족성을 잃어버리고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낯선 얼굴을 한 사람이다.
나는 또다시 그곳
오랫동안 가보지 않던
저녁 황혼 속에
은하수가 흐르고
쑥 냄새 나는 매운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
저 멀리 나 역시
친척들과 지인들과 둘러앉아
집중하며 숨을 죽인 채
노인들이 나누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네
아아, 가난과 고난의
머나먼 길이
젊은 나의
영혼에 드리워져 있네
쓰라린 말들
할아버지의 미소
그리고 꺼져가는 모닥불…… 5)
”
그러나 스타니슬라브 리처럼 한국어를 이해하고 민족적 정체성이 작품 속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고려인 작가들이 점차 줄고 있다. 스타니슬라브 리는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카자흐스탄을 넘어 러시아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아주 드문 경우이다. 고려인 작가 대다수가 민족정체성,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한국적 소재만으로 해당 국가의 문학 중심으로 들어가기에는 주제와 소재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재능 있는 고려인 중견작가와 신진작가 중에는 한국어와 한국적 정체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적 소재를 갖고 러시아식 문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고 러시아어에 능통한 러시아 작가 또는 중앙아시아 작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세대 변화로 인해 고려인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매체가 안은 미래의 과제가 간단치만은 않다. 독립을 위해 앞장서고, 낯선 외부 환경 속에서 민족적 단결을 외치고 자존감을 이어오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대다수 고려인이 러시아어 매체로 전환한 가운데 《고려일보》는 2016년부터 4면에 걸친 간지 형태로 한글판을 싣고 있다. 한국어로 읽지 못하는 세대들이 등장한 만큼 러시아어를 통해서라도 민족적인 것을 이어가려는 결단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매체는 러시아어로 발간되기는 해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민족 전통의 수호자 역할을 이어오면서 동시에 세대교체에 따른 맞춤형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3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6호가 발간된 잡지 《키스토리(KISTORY)》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65쪽 안팎 분량의 컬러판 러시아어 잡지인 《키스토리》는 고려인 중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군 과거와 현재 인물의 인터뷰, 한국 소식, 다양한 한국 문화와 전통, 언어 표현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아쉬운 점은 고려인 작가의 글을 한 편씩 싣던 잡지의 코너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과 연결할 수 있는 고려인 작가층이 그리 두텁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문자 세대의 퇴장과 함께 순수문학의 지면도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신 영화와 연극 등 시각 매체 중심의 문화란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키스토리》 창간호는 첫 페이지에 스타니슬라브 리의 시를 실었고 뒤이어 카자흐스탄과 한국에 관한 다양한 소식으로 지면을 채웠다. 《키스토리》 제2호의 마지막 부분에는 시집 《판소리의 메아리》(2014)를 통해 「처용가」와 「서동요」 등을 선보이고, 「고구려가(歌)」 등 한국 역사와 문학을 소재로 한 시들을 꾸준히 발표해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 시인 류드밀라 지니나-초이(최)의 「고려 사람에 관한 생각」이라는 시가 실렸다. 그녀의 시는 이전의 고려인 작가들이 묘사하던 역사적 조국과 달리 새로 정착한 땅을 고향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한다.
“
나는 내 민족, 나의 영원한 민족에 대해 노래하고 싶어요.
그들의 드라마를 멋진 전설로 만들고 싶어요……
그들은 은하수보다도 더 오래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랍니다.
새끼 곰 단군은…… 어미를 잃었어요.
(……)
수많은 고되고 명예로운 노동을
고려 사람은 여러 세대에 걸쳐 겸손하게 이어왔습니다.
돈도 칭찬도 아닌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름으로
그 사랑은 우리 아이들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는
이 땅과 이곳 사람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뗄 수 없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6)
”
이 시에서 고려인들은 어미를 잃은 새끼 곰 단군으로 묘사된다. 새로운 땅에 잘 정착해서 살아온 고려인들의 삶에 자부하면서 물욕이 우선이 아닌 그저 수고했음을 칭찬하는 칭호만으로도 감격하고 살아왔음을 전한다. 이 시에는 한국 역사와 고려인 역사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몇 가지 오해와 거리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에 휩싸이고 일본인을 증오하며 살았던 조국의 사람들과 달리 고려인들은 그저 일하면서 겸손히 사랑으로 세대를 이어왔음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들이 사는 땅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이며 자신들을 포용해 준 이웃 민족들이 사랑의 대상이라고 선포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세계에 대한 승리처럼 울려 퍼진다.
과거 1, 2세대 고려인 작가들이 조국과의 연계를 노래했다면, 새로운 세대는 조국인 한국에 대한 낯섦과 이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역사의 과정을 다르게 밟아왔다는 이유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멀리하는 조국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마저 느껴진다. 이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더는 이상적이지 않다. 조상의 나라가 있었기에 한 뿌리임을 여전히 느끼고 있을지라도 역사의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이유로 먼 남이 되어버린 서글픈 현실을 그린다. 그런 가운데 삶을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과 정신적 우월감이 웅장하게 울린다.
고려인 잡지 문학은 고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 삶의 궤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터전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노력과 애국적 열정, 조국을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 현상인 문자 세대의 소멸이라는 요인 외에도 한글 작가 세대가 퇴장하면서 새로운 세대들로 전환되지 못했던 것이 고려인 문학의 치명적인 쇠퇴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인 공동체에 대한 한글 지원과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고려인 작가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 사라져가는 고려인의 언어(조선 후기 언어)에 대한 보존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려인이 역사적 조국인 한국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한국문학 소개와 번역 사업 등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1) 강수경, 「18세기 러시아 여성잡지와 여성의 독서: 월간유행, 부인용 문고(Модное ежемесячное издание, или Библиотека для дамского туалета)(1779)를 중심으로」, 《러시아학》, 제19호, 2019, 1쪽.
2) 우정권 편저, 『조명희와 『선봉』』, 서울: 역락, 2005, 11-59쪽.
3) 김환기, 「구소련권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형성과 전개양상: 『선봉』/『레닌기치』/『고려일보』를 중심으로」, 《동악어문학》 제82집, 2020, 54쪽.
4) Станислав Ли, Заметки на рисовом зёрнышке(Алматы, 2024), с. 9.
5) Там же, с. 8. 이은경 옮김.
6) Людмила Зинима-Цой, “Дума о корё сарам”, 《Kistory》 № 2, 2023, с. 66-67. 이은경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EBS 라디오 「입에서 톡 러시아어」를 진행했으며, 저서로는 『포시에트에서 아르바트까지: 러시아 속 한국 문화 발자취 150년』(공저), 『극동의 부상과 러시아의 미래』(공저), 『알록달록 유라시아 문화로!』가 있다. 한국계 카자흐스탄 시인 스타니슬라브 리와 공동으로 고은 시인의 『만인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