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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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의 더 큰 의미와 역할을 찾아
조해진
‘이산’의 의미가 있는 디아스포라, 내게 디아스포라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열쇠 같은 단어였다. 이곳이 아닌 곳,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서사, 지역과 시대를 뛰어넘는 소통과 유대……. 디아스포라는 그렇게 더 큰 범주로 확대되거나 연쇄됐고 나는 언제부터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시점부터 세상의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있었다.
2023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2023 미주권역 디아스포라 한글문학 교류행사’에 초청되었을 때나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출국 전날 여행 가방을 싸면서도, 나를 사로잡은 건 디아스포라, 그 단어 하나였다. 행사를 통해 내 소설을 소개하고 낭독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익숙한 언어와 문화, 관계가 있던 땅을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작은 역사를 어서 빨리 알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그건, 비교가 불가능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물론 한국에서 나는 행사 기간 내내 디아스포라의 의미와 범주를 둘러싼 논쟁과 고민이 불거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를 매혹했던 그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부정적인 의미이거나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나는 출국 준비를 했던 셈이다.
나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로기완을 만났다』(2011)와 『단순한 진심』(2019)을 소개했는데 프로그램이 끝난 뒤 많은 참가자가 드러낸 의아함에서 그 논쟁과 고민이 시작되었다.
의아함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우리는 과연 디아스포라인가. 이 의아함은 소외감이랄지 허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주와 캐나다, 그리고 호주에서 시와 소설, 수필과 비평, 시조 등을 써온 작가들이자 일상에서는 그야말로 적응과 극복이라는 생래적인 과제를 통과하며 안정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행사 참가자들에게 디아스포라는 마이너리티의 어감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인데, 나는 그런 부정적인 어감을 행사를 통해 새롭게 배운 셈이다. 어쩌면 내가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소설이 유럽에서의 난민 지위를 얻으려는 탈북인의 고투를 그린 『로기완을 만났다』와 프랑스로 입양된 뒤 삼십여 년 만에 한국에 오게 된 주인공이 본래 이름의 의미를 찾아가는 『단순한 진심』이어서 그런 의아함이 더더욱 증폭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디아스포라는 고향을 잃고 떠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유래된 용어인 만큼 얼핏 마이너리티, 혹은 핍박이라든지 차별과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어원에 디아스포라를 한정하기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의 그릇이 이미 너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어진 좌담회에서도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었고 ‘파종’이라는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어원이 언급되기도 했다. 파종, 씨앗을 뿌리는 것……. 씨앗이 뿌려지면 싹이 날 것이고 그 싹에서 자란 나무에서는 다시 씨앗을 품은 열매가 열릴 터이다. 고향이라든지 고국이 아닌 곳에서 정착해 가는 과정은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남기는 통과의례에 다름 아닐 것이고 그 자손은 한 세대 이후 또 다른 자손으로 이어질 테니, 디아스포라의 정착이란 파종된 씨앗이 나무가 되어 또 다른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 해도 무방한 셈이다.
공식적인 프로그램에서의 질문과 대답 시간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바깥에 마련된 사적인 자리에서도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둘러싼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들 사이에서 공감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가 되지 않기 위해 평생을 애쓰며 살았고 마침내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그런데 그런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명명하니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것도 사실이라고, 퇴직 후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하며 마음이 많이 안정됐는데 그것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디아스포라가 있어서였을 거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에게 그 말은, 열심히 살았기에 이제는 누구도 흔들 수 없을 만큼 강한 뿌리를 내려 정착했지만 근원적인 불안과 결핍은 남아 있으며 문학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두 번째 의아함은, ‘우리의 문학은 디아스포라 문학인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행사 참가자들 대부분은 생애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이민자로 살아왔다. 이민 국가에서 수십 년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민자라든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생활인으로서 겪는 하루하루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실제로 북미와 호주에서 발간되고 읽히는 문예지에는 가족과 관계, 추억과 일상, 일이라든지 개인적인 성과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았다. 당연히 이런 소재의 작품을 두고 단지 그 작품의 작가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디아스포라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거나 그 생각이 희미해져 있던 행사 참가자들에게 디아스포라 문학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 작가라든지 미국 작가와 다를 것 없는 문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특별히 우리가 쓴 글에 대해서만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어요.”
또 다른 참가자가 들려준 이 말은 참가자들 모두의 고민을 대변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작가로 행사에 참석한 나로서는 새삼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경우는 행사 참가자들과 입장이나 상황이 또 다르다. 나는 이민자가 아니고 이민자의 자녀도 아닌 것이다. 난민이나 입양인으로 떠돈 적 없으며 이중 국적자이거나 이중 언어 구사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민자나 이민자의 자녀, 난민과 입양인,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써왔다. 때로는 고국에서 추방된 정치적 망명자라든지 합법적인 신분증이 없어 국경과 국경 사이를 떠도는 경계인 같은 극단적인 디아스포라를 소설에 담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나는 작가로서의 조건과 무관하게 쓰는 소설의 내용에 따라 디아스포라 작가로 분류되었고 행사 참가자들은 이민자라는 그 외적인 조건에서부터 이미 디아스포라 작가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행사 참가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디아스포라이고 우리의 문학은 다른 차원의 디아스포라 문학인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담은 소설이나 에세이, 시와 시조가 디아스포라 문학이듯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작품들도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그런 내 생각을 행사 참가자들에게 피력했을 때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기도 했다. 그 내용이 평범하든 비범하든, 안정된 인물이든 표류하는 인물이든, 작품 속 인물들이 해외에서 거주하며 겪는 크고 작은 혼돈과 경계성은 모두 디아스포라 문학이 품는 내용이 될 터이다.
행사 기간 중 ‘노마드(nomad)’가 디아스포라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가 되지 않을까, 의견을 주신 분도 있다. 노마드와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와 강제일 것이다. 노마드는 자유 의지로 국경을 넘어 제약 없이 활동하는 사람의 의미가 연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감의 차이 때문에 디아스포라 문학을 노마드 문학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공간과 민족, 혹은 인종을 초월하여 자신의 문학을 하고 있다. 모두가 실제로, 혹은 상상으로 월경(越境)하며 떠도는 인물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국적이 하나여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고 평생 모국어만을 구사해 왔을지라도 국경을 넘어 파종하는 인간이란 누구에게나 매혹적인 서사이기에. 누구에게나 이방인이랄지 경계인의 고민이 있고 또한 누구에게나 매혹과 고민을 표현할 자유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탈경계의 시대이다. 이민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여건이 허락된다면 해외여행과 체류가 가능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자발적이고 일시적인, 때에 따라서는 영구적인 이주를 꿈꾼다. 한국 문단에서 활동하는 기성 작가들 중에 해외를 떠도는 한국인 인물이나 한국에 온 외국인이 등장하는 소설, 시, 에세이를 써보지 않은 작가는 거의 없다. 어쩌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디아스포라 작가라고 불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디아스포라 작가,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해서 소수의 작가와 그 작품에만 국한할 수는 없으며 탈경계 문학은 이제 하나의 주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현재 나는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출신 중에 문단을 이끌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실제로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라고……. 헝가리 혁명 때 고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여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같은 역작을 쓴 아고타 크리스트포처럼, 가난과 독재로 점철된 루마니아를 벗어나 독일에서 독일어로 소설을 썼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헤르타 뮐러처럼,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익혀 아름다운 작품들을 쓰고 있는 인도계 미국인 줌파 라히리처럼, 이민을 온 미국에서 장르를 교란하고 뛰어넘는 위대한 작품 「딕테」를 남긴 차학경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민 1세대의 문학은 다음 세대의 문학과 작가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행사 참가자들의 자녀들, 그 자녀의 자녀들이 일구어갈 또 다른 문학적인 파종을 도울 수 있는 역할……. 그 큰 의미로 가닿게 될 그들의 문학을 나는 행사 기간 내내 응원하고 싶었다. 물론 그 응원과 별개로, 문학은 이미 그들에게 삶의 일부이고 위로이고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문학이 엮어준 가족,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마다 사연과 이유가 있어 한국을 떠나와 이국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행사 참가자들에게 문학은 그들 자신의 삶을 표출하는 도구이자 서로에게서 불안과 결핍을 발견하며 공감하는 매개였을 것이다. 피와 유전자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글을 쓰고 읽는 것, 함께 힘을 모아 주기적으로 문예지를 출간한 것, 그 모든 것은 문학이 주는 커다란 유대와 기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저마다 생활인이자 작가이며 문학 공동체의 일원이어선지 행사 참가자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온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번역원 직원들을 환한 얼굴로 환대해 주었다. 내 손을 잡으며 자신이 사는 곳으로 놀러 오라고, 그들은 그야말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곤 했다.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 뉴욕과 시애틀과 알래스카, 오레곤과 하와이, 캐나다와 호주, 행사 기간 동안 내가 앞으로 발을 딛을 수도 있는 땅은 수없이 늘어났다. 그런 말은 그리 쉽게 발화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 사이에 문학이 있기에 가능한 초대였다는 것도……. 확실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문학을 믿기에 가능했던 그 기꺼운 초대들이 나는 무척 고마웠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비행기가 어느 순간 국경을 넘는지 확인하기 위해 틈틈이 의자 등받이에 설치된 스크린을 지켜봤다. 결과적으로, 그 순간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화면에서는 비행기의 이동 경로뿐 아니라 비행 고도와 비행 속도, 남은 비행 거리까지 실시간으로 구현되고 있었지만 월경의 순간엔 아무런 표시도 뜨지 않았다. 고도 만 킬로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구름을 가르는 비행기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뿐이었다, 새처럼 혹은 고래처럼, 바람과 해류처럼.
국경을 나누고 국적을 구분하고 인종과 종교, 계급과 성별, 그 외 수많은 기준으로 우리를 가르는 것은 사람의 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그 사람의 일을 재현하지만, 때로 어떤 문학은 재현 그 자체를 뛰어넘어 우리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라든지 보편적인 공감과 대면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문학, 더 큰 질문과 공감을 가져오는 문학을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뛰어넘는 문학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라고, 우리가 살아서 계속 문학을 하는 한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고 말이다. 파종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 아니던가.
2004년에 등단했다. 저서로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 단편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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