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하여
정은경
1. 들어가며: 마이너 필링스에 대하여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화제가 된 「성난 사람들(Beef)」의 시작은 로드레이지(난폭 운전)이다. 실패한 도급업자인 대니(스티븐 연)는 자살을 위해 화로를 샀으나 이내 마음이 변해 대형 마트에서 영수증 없이 환불하려다가 망신을 당하고, 잘나가는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는 오래 준비한 회사 매각 협상이 어그러져 잔뜩 화가 난 상태이다. 둘은 주차장에서 충돌할 뻔하고 대니는 에이미의 번듯한 흰색 SUV 차량과 ‘가운뎃손가락’에 폭발해 에이미를 쫓아 광란의 질주를 벌인다. 대니는 자신을 조롱하고 빠져나간 에이미를 추적, 그녀의 화려한 집 화장실에 오줌을 갈기고 에이미는 대니의 차에 낙서를 하고 대니의 남동생과 불륜을 벌인다. 이들의 ‘로드레이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정서로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보다 내밀한 감정적 폭발점은 아시아계 이민자라는 이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재미 한인 2세 대니는 모델 사업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쫓겨난 부모님을 다시 모셔 와야 하고 한탕주의에 몰두하는 철없는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K-장남의 책임감 때문에 잔뜩 움츠려 있다. 그의 주변에는 범죄자에 가까운 한인 친구들과 루저들뿐이다. 중국계 이민자의 외동딸 에이미는 플랜테리어(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로 사업에 성공해 번듯한 집과 가정을 꾸렸지만, 딸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과 이상주의 예술가이자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로 경직되어 있다. 이들이 벌이는 ‘난폭 운전’은 이들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감정적 임계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원제인 ‘Beef’는 ‘불평, 불평을 해대다’의 속어로 이들 이민자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감정적 지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한인 작가를 대표하는 시인 캐시 박 홍은 이러한 감정을 문화 이론가 시앤 나이의 말을 빌려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이라 명하고 에세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탐색한 바 있다. 그녀에 따르면 ‘소수적 감정’이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감정”1)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거듭되는 인종차별적 모욕과 태도를 접하면서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말을 들을 때 발동하는 것으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고 자기를 혐오하게 된다. 소수적 감정은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 같은 감정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못난 감정(ugly)―부러움, 짜증, 지루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같은 약자의 정서로 이어지면서 “카타르시스 없는 감정 상태”를 지속한다. 「성난 사람들」의 대니와 에이미의 분노는 탈출구 없는 현실 속에 놓인 이민자들이 자기학대에 가까운 감정적 통제를 일시에 상실해 버리는 사건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 불가해한 인종혐오적인 태도와 과잉 복수의 질주로 연결된다.
이렇듯 폐쇄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에 대해 캐시 박 홍은 이렇게 언급한다. “인종적 자기혐오는 백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것은 나를 자신의 최악의 적으로 만든다. 유일한 방어책은 자기를 심하게 다그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이것이 강박적으로 되면서 거기서 위안을 찾게 되고, 결국 자신을 죽도록 구박하게 된다.”2) 대니와 에이미의 복수극은 결국 자기혐오의 투사이고 이는 그들이 날마다 마주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백인성’에 대한 열등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도발적인 시인 캐시 박 홍은 이러한 소수적 감정을 멀리하는 대신,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이를 통과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발언하는 실험을 시도한다. 그것의 결과물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의 각종 상을 수상하고 매스컴에 화제가 된 『마이너 필링스』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실험 방식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프라이어의 모방이다. 유색 인종 프라이어는 자신의 ‘인종’을 기피하는 게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한 코미디로 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는데, 캐시 박 홍은 이 연기를 필사하는 일을 하면서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예컨대 순수함은 흑인은 체험하지 못하는 특권이라는 통렬한 고백성사 같다는 것을 “나는 여덟 살 때까지 아이였어요. 그 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3)라는 익살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캐시 박 홍은 이러한 사유를 로빈 번스틴의 「인종적 순수: 노예제에서 민권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어린이가 아동기를 보낸다는 것」과 더불어 더욱 심화한다.
인종적 순수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로서 “음, 나는 인종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데”와 같은 언급 속에 엉켜 있으며, 여기서 ‘나’는 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 순수는 하나의 특권이자 인지 장애, 즉 잘 보호된 무지의 상태이며 일단 이것이 성인기까지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굳어진다. 순수는 성적인 것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굳이 특정해서 “표시되지 않으며(unmarked)” “자유롭게 본연의 너와 나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에 기대 사회경제적 위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순수가 초래한 아이러니한 결과는 백인이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학자 찰스 밀스는 말한다.4)
요컨대 순수란 일종의 강자의 것이라는 통찰이다. 당파성 없는, 객관적인, 보편적인, 이러한 용어들이 함축하는 바로 그 특권과 맹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시민권’에서 배제된 이민자, 장애인, 소수자 들이 그렇듯, 순수란 곧 표준에 미달하는 것을 배제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순수는 타자성의 도래와 더불어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프란츠 파농이 통찰한 바 있듯, 흑인의 의존성과 콤플렉스는 마다가스카르 항에 도착한 백인들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시아계 이민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유색 인종, 여성, 장애인, 퀴어 등등)의 피해망상, 짜증, 우울, 원한 같은 마이너 필링스는 사회 제도가 제시하는 숱한 보편 기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마이너 필링스는 니체가 말하는 르상티망(ressentiment)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니체는 혐오로 향하는 이 원한의 감정을 노예의 도덕으로 칭하면서 반동적인 것으로 비판한 바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위대한 마음은 양성적’이라는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말을 들어, 자신의 성을 의식한 글쓰기는 치명적인 것이라며 여성적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기를 요구했다. 필자 또한 과거에는 니체의 르상티망, 편향된 젠더 의식 등이 약자의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를 넘어서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설파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강자와 주인 의식, 무해한 양성성은 캐시 박 홍이 지적한 ‘순수’를 의미하고, 그것은 개인의 의지에 의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마이너 필링스』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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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공정한 실력주의 사회라는 관념은 저소득층 흑인 및 갈색인 6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 회의와 행동 장애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어느 교사가 말한 대로 “아이들이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었다. 5)
즉 미국 혹은 한국이 공정한 실력주의 사회이자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관념은 약자들로 하여금 마이너 필링스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개인은 사회구조와 제도를 그렇게 쉽게 넘어설 수 있는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고, 그 소수의 성공 신화는 불공정 사회를 가리는 스크린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캐시 박 홍처럼 능동적으로 마이너 필링스를 타인과 사회를 향해 표출시켜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캐시 박 홍에 따르면, 그것은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촉발한 무수한 사회제도의 격자와 미신적 순수 이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캐시 박 홍은 그러한 글쓰기의 예로서 대표적인 재미 디아스포라 작가인 차학경의 『딕테』를 예로 들고 있다. 백인의 영어와 백인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 방식대로 말하기. 이와 더불어 캐시 박 홍은 차학경을 주목하는 많은 예술문화적 담론이 그녀가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거의 삭제하고 있다는 것을 의문시한다. 살해까지는 언급해도 ‘강간’이라는 용어를 차학경의 생애사에 집어넣기를 꺼려하는 것과 사건 당시 매스컴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았던 것은 곧 아시아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마이너 필링스의 위치에 대한 겨냥으로 나아간다. “아시아 문화에서 여자들이 이유 없이 사라지거나 실성하는 이유는 무성하다. 노출되는 부분은 기껏해야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뿐이다.”6) “그냥 또 다른 아시아 여자로 본 거죠. 만약 차학경이 어퍼웨스트사이드 출신의 젊은 백인 아티스트였다면 아마 온갖 뉴스에 오르내렸을 거예요.”7) 이러한 탐색에서 볼 수 있듯, 차학경이라는 디아스포라 작가를 둘러싼 미국의 담론 또한 저렇듯 정확하게 디아스포라적이다. 차학경의 예술은 예술계에서 순수하게 ‘타자성’과 ‘실험성’의 놀라운 성취로 논의되어야 하지 그녀의 훼손된 육체가 놓인 여성과 소수자의 현실 지형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유민주주의 신화에 입각한 미국 사회 제도의 음험한 실재를 드러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개관은 과거에 썼던 관련 원고들을 수합하여, 수정·보완한 것들이다. 돌이켜 보면 애초에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면서 나는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듯 가볍게 출발했으나 이내 곤혹스러운 지점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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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를 주제로 글을 써나가면서 나는 배낭여행자처럼 자유롭게 그들의 ‘이상’의 경험 주변을 떠돌았지만, 뜻하지 않게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가령,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라든가, 혹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제3세계, 소수민족과 약소자, 망명과 유배, 난민, 자본의 이동과 탈국경, 이주 노동자, 해외 입양아, 모국어와 모어 등등의 수많은 난제들, 디아스포라인들에게 ‘이산’은 그야말로 여행이 아니라 고단한 삶이고, 그렇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이방인 혹은 이중 정체성은 절대로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산은 능동적이고 유쾌한 ‘유목적 삶’이 아니라 고통과 소외로 점철된 신산함이고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역사적 문제였던 것이다. 글을 써나가는 동안 나는 애초에 가볍게 꾸린 나의 행장이 점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8)
과거에 했던 위의 고백은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목격한 것도 캐시 박 홍이 지적한 마이너 필링스라는 정념들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피해망상, 열등감, 짜증과 원한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이 못난 감정을 지지한다. ‘순수’와 ‘보편’에 도달하지 못한 더 많은 인종적 정체성과 타자성을 드러내는 발언들이 ‘편견’과 ‘당파성’이라는 지탄 대신 돌봄과 고려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 이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한 줌의 도덕’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2. 디아스포라의 개념과 현실 지형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를 넘어서)와 동사 ‘speiro’(뿌리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보통 대문자 ‘Diaspora’를 써서 ‘팔레스타인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최근 디아스포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유대인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국제 이주, 망명, 난민, 이주 노동자, 민족 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문학이란 민족 국가적 기원에서 벗어난 이들이 겪은 이산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이를 사유하는 문학으로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용어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민족 이산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유대인의 경우뿐 아니라 유사 이래 지속된 인간의 이동과 이주는 끊임없이 세계 대륙의 지정학적 경계를 바꾸면서 그 흔적을 남겨 왔다. 우리 역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가깝게는 일제 식민지 시기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유민과 일본으로 강제 징집된 한인들, 그리고 최근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지역의 재외교포들과 탈북자들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넘는 이산의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시야를 세계로 넓혔을 경우, 민족 이동과 이주의 양상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노예무역에 희생되어 서구로 팔려 간 아프리카인들,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침탈로 인해 대서양, 태평양 등지로 반강제적으로 이주당한 아시아인들, 냉전 이데올로기와 정치 이념에 희생된 망명자들, 전쟁과 기아를 피해 개인 또는 집단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난민과 유민들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기 폭력적인 세계사를 명백히 드러내는 민족 이산의 흐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여전히 현재적 문제로 남아 있다.
근대 이후 ‘한민족 이산인’의 발생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방 후 한반도의 한국인들은 ‘국민’을 회복했으나 7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외동포들은 ‘시민권’을 얻기 위해 다양한 험로를 겪어야 했다. 1945년 종전 직후 일본에 있던 230만 명의 한국인 중 귀국하지 않고 남은 60만 명은 일본이 강제했던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외국인’으로 등록해야 했다. 이들은 외국인인 까닭에 오랫동안 지문날인을 해야 했고, 사회적 차별로 인해 파친코와 야쿠자의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야 했으며 참정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일본 사회에 점차 동화되었지만,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 극우 세력이 만든 또 다른 차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중국에는 210만 명(2021년 기준) 정도의 ‘조선족’이 만주 지역의 조선족 자치구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중국으로의 이주 시기와 계기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일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거나, 혹은 일본이 건립한 ‘만주국’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동부를 차지한 일본은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만주국’(1932)을 건립하고 ‘오족협화’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워 만주의 허허벌판에 식민 조선인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현재 한국에는 70만 명(2022년 기준)이 넘는 조선족이 재외동포의 자격으로 들어와 살고 있으나 영화나 대중문화에서 ‘범죄자’의 대명사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고려인’이라는 한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17만 명이라는 엄청난 무리가 일본 첩자라는 혐의로 하루아침에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 극동에서 6,00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옮겨진 것이다. 일본과 중국, 소련에서 험로를 겪어야 했던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유명한 시인 윤동주처럼 교도소에서 ‘불령선인’으로 고문당해 죽거나 만주 관동군 747부대에서 생체 실험의 마루타로 죽거나 혹은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에는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봉오동 전투의 독립군 홍범도 장군도 포함되어 있다. 조명희는 1928년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스탈린 정권에 의해 체포, 1938년 총살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홍범도 장군 또한 1937년 강제 이주되어 1943년 카자흐스탄의 극장 청소부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이즈음 디아스포라가 새롭게 조명되는 데에는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화(globalization) 현상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UN에 따르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국제 이주민은 2010년 기준 약 2억 1,700만 명(세계 인구의 3.1퍼센트)에 이른다. 이를 국가로 치면, 중국-인도-미국-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9)가 된다. 이 숫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퍼센트에 불과하나 과거 이민자들의 후손과 그들의 이주민 네트워크까지 감안하면 이산의 체험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외교통상부의 통계에 따르면(2021년 기준) 재외한인은 세계 193여 개국에 약 732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의 수는 불법 체류까지 포함하여 대략 224만 명(2022년 기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경을 허물고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디아스포라 현상이 전 지구적 자본화와 더불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결국 디아스포라는 특정 소수 민족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이후’의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미국 보스턴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인 케빈 케니가 쓴 『디아스포라 이즈is』는 디아스포라의 어원과 기원에서부터, 이주의 역사, 관계, 귀환, 세계화 등의 범주로 나누어 디아스포라의 외연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유대인의 이주(770만 명),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디아스포라, 대서양 노예무역(1,100만 명), 아일랜드인 이주(850만 명), 아시아인 이주 등의 범주로 구성된다. 대체로 유대인과 아프리카 이주민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아시아인의 이주에 대해서는 소략되어 있다는 것이 다소 아쉽지만 디아스포라 개념의 기원과 전 세계적 흐름, 관련 문제 들을 폭넓게 살피고 있다. 특히 민족이나 인종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디아스포라 양상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문제의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가령, 유대인의 이산에는 ‘신학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신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죄를 저질렀고 그 벌로 추방과 고통을 겪어야 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 혹은 팔레스타인의 경우 유대인에서 기원한 이 용어 대신에 ‘쫓겨나 이동하는 것, 즉 추방을 가리키는 알 샤타트(al-Shatat, 재앙의 날)’를 쓴다는 것, “정착하지 않고 그 지역에 소속되지 않는” 유대인 특유의 문화는 유대인 연구자 측에서 보면 “민족 정체성을 넘어서는 문화적 차이의 인정과 개방적인 공존”의 강조와 디아스포라의 긍정성을 의미하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반유대주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개의 ‘귀환’은 실질적인 귀국을 뜻하기도 하지만 정서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령 1935년 이후의 ‘라스타파리 운동’(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를 새로운 메시아로 섬기며 흑인들의 아프리카 복귀를 제창)은 특정 장소인 에티오피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이 라스타파리는 범아프리카주의로 이어져 흑인에게 자긍심을 고취할 뿐 아니라, 자메이카의 밥 말리의 레게 음악과 연계되어 새로운 대중문화를 낳기도 했다.
위의 세계사적 흐름은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우리 또한 디아스포라의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다양한 디아스포라인들을 만날 수 있다. 쉽게는 이주 노동자들, 탈북자들이 그 예들이다. 한국말을 못한다고 정신병원에 6년이나 수감된 네팔의 찬드라의 사연(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3))에서부터, 베트남 처녀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들은 수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축구를 들여다보더라도, 이러한 디아스포라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2010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북한 축구 대표인 ‘정대세의 눈물’이었는데, ‘불도저’, ‘인민 루니’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는 재일교포 3세로 원래 국적은 한국이다. 음악, 패션을 즐기는 ‘멋쟁이 청년’이기도 한 그는 경북 의성이 고향인 아버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민족학교’를 거쳐 J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가 북한 국가대표가 된 것은 이데올로기 선택이라기보다는 그가 줄곧 조총련계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고, ‘조선’이라는 상징적 조국에 대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참고로 종전 후 재일교포는 한국,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국적을 선택해야 했는데, 여기서 ‘조선’이란 일본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통일된 ‘조선’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 2010년 월드컵 독일 축구 팀은 23명 중 11명이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2세 출신이다. 폴란드 출신 클로제, 브라질 출신 카카우, 가나 출신의 흑인 수비수 제롬 보아탱 등. 프랑스 축구 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중에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지네딘 지단이다. 아트 사커로 유명한 지단은 부모가 알제리인으로 베르베르족 출신이다. 지단 부모는 알제리 독립10) 후 1968년에 파리로 이주, 마르세유에 정착한다. 지단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가난한 시절 지단은 볼보이를 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 이후 프랑스 축구의 월드컵 우승(1998)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알제리인’ 지단의 정체성은 가끔 이슈가 됐는데, 2006년 월드컵 때는 알제리 경기를 보려고 나타난 그의 모습이 보도된 적도 있고, 그의 아버지가 식민지 시절 프랑스 편에 있던 ‘아르키(harkis)’였다는 비난, 그리고 알제리 방문 등이 그 예다. 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마테라치 박치기 사건(이탈리아-회교도 매춘부로 어머니를 조롱) 등은 ‘알제리 출신 프랑스 대표’라는 딱지에 함축된 민족, 국가, 인종 차별과 갈등을 짐작하게 한다.
알제리 하면, 또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를 빼놓을 수 없다.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인으로, 1913년 알제리 몽드비에서 태어나 알제대학교를 졸업했다. 전사한 아버지와 귀머거리 어머니 밑에서 자라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1954년 이후 진행된 알제리 독립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방인』이라는 작품은 프랑스와 알제리의 아랍인과의 갈등이라는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다시 읽을 수 있다. 아랍인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뫼르소의 경계 넘기는 아랍인 살해 사건에 대한 법정의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볼 수 있듯, 프랑스 쪽에서 보자면 전혀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인구의 10퍼센트인 약 600만 명의 무슬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슬람 관련 테러로 사망한 이는 2012년 이후 260명 이상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집계했다. 2015년 1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는데, 이 사건의 테러범은 알제리계 이민자와 말리 이민자(쿠아치 형제와 아메디 쿨리발리)이다. 그해 11월 축구장과 극장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130명의 사망자를 낸 테러 사건의 주범 또한 무슬림이었다. ‘표현의 자유’ 논란은 고아, 사회 낙오자로 살아야 했던 이민자들의 차별적 현실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3. 디아스포라 의제들
위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조건과 맥락에서 이뤄지는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는 뚜렷한 목적과 지향성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수많은 난제들과 복잡한 상황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각각의 의제들은 그 공통의 보편성을 떠나 디아스포라의 특수성과 개별적 상황 속에서 물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 해결에 대한 모색 또한 복잡한 지형 속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탈식민주의. 디아스포라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식민주의(colonialism)란 힘이 센 나라가 무력으로 자신보다 약한 나라의 땅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식민지에 자국민을 옮겨 심는다는 뜻이다. 일제 식민주의는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인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대만, 오키나와, 사할린 등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를 낳았다. 제국주의(imperialism)는 식민주의보다 상위 개념으로 힘이 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체제 및 욕망을 아우르는 말이다. 영토 확장과 이권 챙기기가 제국주의의 주된 목적이다. 15세기 말 이후 유럽이 주요 해상로를 확보하면서 세계 지배에 나선 이후 확대된 제국주의는 19세기 후반에 본격화된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체제(남아공, 알제리, 인도, 베트남, 미얀마, 홍콩 등등), 그리고 17-18세기의 유럽 열강의 노예무역으로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한 결과, 현재 ‘이산’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post’라는 접두사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식민지 예속 상태를 벗어나 주권 수립과 해방을 향한 이념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를 다원주의, 탈근대성, 탈민족주의와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21세기 들어 ‘민족주의’가 지닌 배타성을 지적하며 국민국가의 동일성이란 상상에 불과하다는 논의가 보편화되었지만, 디아스포라인의 현실 문제는 결코 탈민족주의로 풀 수 없는 것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 서경식이 “민족을 폐기 처분해야 할 개념이라는 말은 불모의 지적 게임”라고 지적한 바 있다.
둘째, 디아스포라의 리얼리티. 글쓰기를 통해 재현되는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문화적 층위 이전에 우선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산인의 이질성과 혼종성은 분명 문화적 다원주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피부색, 종족 및 국가적 기원,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정은 단지 톨레랑스 차원에 머물 수 없다. 그들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차이’로 인해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국가 장치 및 제도, 실정법, 경제적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이들을 보편적 ‘인권’ 안에 포함한다는 것은, 장애인의 불편함을 일체 없애기 위해 모든 시스템에 이들의 차이를 배려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셋째, 이중적 정체성. 코리언 디아스포라 문학, 특히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문학은 그간 재외한인 문학, 해외동포 문학 혹은 외국 문학으로 간주되면서 국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즉 이들 문학은 주변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중 정체성은 실상에 있어서는 두 개의 동일성이 아니라 차라리 두 개의 타자성, 즉 분열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민 1.5세대인 이양지나 차학경은 일본과 미국에서 의식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타자성과 동시에 모국에서 발견한 자신의 또 다른 타자성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 동일성의 외부에서 보는 타자성은 하나의 가능성일 수 있으나, 내부에서 보자면 이질성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다. 이는 이중 언어가 어느 누구에게도 가장 이상적인 언어 운용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중의 ‘타자성’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무정체성, 분열적 정체성, 유동하는 정체성(flexible identity), 사이성(inbetweeness)의 정체성은 어떻게 긍정될 수 있는가?
넷째, 문화적 혼종성.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이 이중적이듯, 이들 문화 또한 혼종성(hybrid)을 특징으로 한다. 이 혼종성은 서구와 비서구, 보편과 특수, 주류와 비주류 등의 이분법적 연쇄를 환기하는 것으로 단적으로 세계주의적 근대성과 인종적 전통주의의 혼합으로 볼 수 있겠다. 디아스포라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나 비평가들, 예들 들어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스피박, 호미 바바를 비롯하여 카리브의 V.S. 나이폴, 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 아프리카 출신 응구기 와 티옹오(케냐),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 인도 출신의 살만 루시디, 홍콩 출신 레이초우,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 그리고 재미교포 이창래, 이민진, 캐시 박 홍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작가들은 모두 새로운 정착지, 혹은 식민 지배자의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동화주의의 혐의를 들씌워 토착적 내셔널리즘을 주장한다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4. 디아스포라 작가들
한인들의 실질적 이주 역사는 186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흉년이 들자 일부 농민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만주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국권을 상실한 1910년을 전후로 이러한 이주의 행렬은 더욱 증가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의 이민 행렬은 중국, 만주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뻗었으며, 한편으로는 일제에 의해 징용되어 일본 본토와 사할린 등지로 끌려가기도 했다. 한편 일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보호 아래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이 장에서는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대표적인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들, 외국 이론을 살펴본다.
1) 한인 디아스포라 작가: 이회성, 서경식, 강상중, 차학경, 노라 옥자 켈러
재일 한인 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기에 조선 농민층의 몰락으로 이농민들이 일본의 노동 시장에 유입됨으로써 시작되어, 1939년부터 시작된 강제 연행에 의해 그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일본의 패전 후 귀환하지 않고 잔류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현재(2020년) 약 45만 명으로 추정되는 재일 한국인들은 그러나 모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희생되었다기보다 그 이동 시기와 원인에 있어 다양한 편차를 보이며, 따라서 재일 한인의 문학도 세대별, 작가별로 다양한 층위를 형성한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은 ‘1935년 사할린 출생’이다. 그가 태어난 ‘가라후토’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영토로 점령되었던 사할린 남반부에 위치한다. 러일 전쟁에서 사할린 남부를 획득한 일본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탄광에서 일하게 했고, 또 그곳에서 ‘황국 신민화 교육’을 받게 했다. 가난한 이회성의 부모는 이런 경로를 거쳐 사할린에 정착했다가 종전을 맞는다. 그러나 종전 후, ‘가라후토’가 소련 땅으로 귀속되자, 일본인들의 귀국 행렬이 이어졌고, 이회성 일가는 여기에서 제외된다. 일본과 소련 사이에서 이뤄진 협정에서 ‘조선인’은 없었던 것. 이회성 일가는 1947년에 사할린에서 비밀리에 탈출하여 일본 규슈로 그리고 다시 홋카이도로 옮겨 정착하게 된다. 홋카이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이회성이 와세다대학 노문학부에 입학하여 도쿄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55년이므로, 그의 생애 초반은 ‘사할린→규슈→홋카이도→도쿄’로 구성된다. 1947년까지 12년을 사할린에서, 그리고 1955년까지의 8년을 홋카이도에서 보낸 이회성의 성장기는 식민지 조선 바깥에서 체험한 일본 제국주의 현장,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는 ‘반쪽발이’로 성장한다. 초기 작품 중 재일 조선인의 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 「반쪽발이」는 ‘조선적’ ‘일본 국적’으로 편가르기하는 재일 동포 사회의 비극, 그리고 일본 사회의 차별을 온몸으로 고발한다.
‘나’의 정체성→재일의 상황→한반도의 조국 분단으로 이어진 작가의 민족 비극의 추적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을 다룬 『유역(流域)』(1992년 4월 《군상》에 전재)과 사할린 조선인을 다룬 『백 년 동안의 나그네』(1994년 7-8월, 《신조》)에 이르러 세계사적 지형으로 확대된다. 『유역』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개방과 개혁 바람에 휩싸인 1989년의 소련 방문기이자 르포이다. 소설가 임춘수와 르포 작가 강창호는 재일 조선인으로 연해주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1937년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재소 고려인들을 만난다.
서경식은 대표적인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의 저자이다. 그의 두 형 서승, 서준식은 한국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범으로 각각 19년, 17년을 옥살이했고, 이를 통해 서경식은 ‘재일’의 문제를 숙명적으로 고뇌하게 된다. 그는 도쿄게이자이대학 법학부에 교수로 재직했고 비교적 성공한 재일 조선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의 삶과 저서에는 ‘추방당한 자’의 불행한 역사와 그 신산함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은 망명 예술가들의 생애와 흔적을 추적한 기행문인데, 서경식이라는 재일 디아스포라인의 시선은 예술작품들의 그 개개의 미학적 탁월성을 분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의 연원, 그 역사적 배경과 기원으로 향한다.
서경식의 시선에 포착된 망명 예술가들의 생의 면면은 프리모 레비의 저서의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탄식, 바로 그것이다. 아우슈비츠행 마지막 열차에 실려 결국 사망한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Felix Nussbaum), ‘유대인 민족의 피난처’로서 이스라엘 건설을 지지했으나 그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다가 결국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인 프리모 레비(Primo Levi), 광기와 자살로 생을 마친 비극적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2차 세계대전과 나치에 의해 물리적·정신적으로 살육당한 비극적 디아스포라의 백성들이다. 우연한 생에 의해,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언어와 문화를 육화했으나, 그들은 바로 ‘그곳’에서 추방당하고 끝끝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근대 국민국가 이데올로기와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 의한 희생은 이들의 죽음으로써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서경식에 의하면, 이러한 과거의 야만적 역사가 가져온 디아스포라인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자폭 테러, 폭력이 넘쳐나고 있다.
강상중은 일본 도쿄대 최초의 한국인 정교수, 애초의 일본식 이름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를 ‘강상중’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 지문날인을 거부한 외국인, 일본 TV에 자주 등장하는 비판적 지식인 등으로 이미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강상중은 1950년 규슈 구마모토의 한국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강대우는 창원 출신으로 15세에 만주사변 때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 근교의 군수 공장을 거쳐 구마모토에 정착한다. 강상중의 정체성은 토건, 광산 등의 인부로 건너온 사람들이 패전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양돈이나 막걸리 암거래, 폐품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한국인 집단촌에서 형성된 것이다.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는 점, 콤플렉스와 이중적 성격, 말더듬이였다는 것, 어머니의 문맹 등에 대한 고백 등에서 소외받는 경계인의 초상을 읽을 수 있다.
폐품 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난 강상중은 와세다대학 정치학과를 거쳐 독일 유학 후 도쿄대 교수, 세이카쿠인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다. 그는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이름을 ‘강상중’으로 바꾸고 사이타마 지역에서 지문날인을 거부한 최초의 외국인이 되었으며, TV 토론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여 현안의 일본 문제뿐 아니라 미묘한 국제 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해 왔다. ‘재일’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재일 강상중』 『어머니』 등의 자전적 에세이와, 『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등의 학술서를 냈으며, 『사랑할 것』 『마음』 『고민하는 힘』 등의 대중적 인문서를 통해 일본 독자들은 물론 한국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매스컴에서의 발언으로 일본 우익의 반발을 사기도 했던 그는 테러에 대비해 옷 속에 신문을 넣어 다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강상중은 ‘재일’임을 표방하지만 아웃사이더로서 ‘재일’에만 머물지 않고 ‘인사이더’로서 ‘재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를 펼쳐 왔고, 또한 ‘재일’의 특수성을 동북아시아의 정치학과 내셔널리즘, 세계화, 그리고 근대적 삶과 ‘타자’와 함께 하는 지점으로까지 확장하여 새로운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김석범, 이회성, 이양지 등으로 대변되는 앞선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들과도 다를 뿐 아니라, 재일의 고통을 가족의 실존적 차원에서 경험하고 체화한 서경식의 문제의식, 의식적으로 탈민족주의적 코드를 내세우고 일본의 보편적 사회 문제로 나아간 유미리, 그리고 재일의 고통을 유머로 풀어내는 신세대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 등과도 변별되는 것이다. 밀리언셀러로 자리 잡은 『고민하는 힘』, 그리고 『마음』 연작은 불안한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삶의 메시지이지만, 이 메시지의 근원에는 재일의 삶의 과정에서 체득한 강상중의 디아스포라 의식이 들어 있다. 즉 강상중에게 있어 재일이라는 특수성과 ‘경계성’, ‘이중성’은 이전의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차별과 고통’의 기원, ‘방어적’ ‘폐쇄적’ 호소, ‘르상티망’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일성의 원리와 폐쇄성을 지닌 내셔널리즘과 ‘자아’를 비판하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리’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재일 작가 1세대가 작품을 통해 강렬한 민족의식과 한반도 정세와 밀접하게 잇닿아 있는 비극적인 현실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면, 재미 1세대 작가들의 민족의식은 다소 ‘회고’적이며 개인적, 미래 지향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초창기 한국계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강용흘(Younghill Kang, 18981972)의 『초당(The Grass Roof)』(1931)이나 『동양인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1937)와 같은 작품에서 미국은 자아를 실현하고 신학문을 통해 조국의 독립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자 이상향으로 설정된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김은국, 김용익 등이 있다. 미국은 물론 국내에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김은국(Richard E. Kim, 1932-2009)은 『순교자(The Martyred)』, 『심판자(The Innocent)』 『빼앗긴 이름(Lost Names)』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 작품은 한국전쟁, 군사 쿠데타, 일제강점기 등 한민족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 시선이 보다 보편적이며 초월적인 것을 향하고 있다는 데서 재미 한인 문학의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계 미국 문학은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많은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그런 만큼 이들의 작품 세계는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다양하다. 이창래(Chang-Rae Lee), 수잔 최(Susan Choi), 캐시 송(Cathy Song), 게리 박(Gary Park),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 하인즈 인수 펜클(Heinz Insu Fenkl),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 이민진(Min Jin Lee)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계 미국 문학의 모습을 차학경과 노라 옥자 켈러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차학경, 미국명 테레사 학경 차(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는 미국에서 활동했던 시인이자 작가, 퍼포먼스와 비디오 미술가, 영상 제작자였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른바 1.5세대에 속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을 떠난 차학경의 가족은 하와이를 거쳐 1964년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 열세 살. 이후 그녀는 사립 가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대학을 거쳐 1969년 버클리대학에서 미술과 문학을 공부한다. 이때부터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그녀는 1978년에 이르기까지는 비교문학, 미술사, 미술, 영화 이론 등 네 개의 학위를 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학력에서 보듯, 그녀의 예술 활동은 1982년 사망 이전까지 미술, 문학, 영화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수제 책 작업, 퍼포먼스와 비디오 제작에서부터 영화 이론서(Apparatus-Cinematographic Apparatus) 편집, 창작집 『딕테(Dictee)』 출간 등 그녀의 예술적 오브제는 하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미지, 영상, 언어, 타이포그래피 등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러한 탈장르적인 혼종성을 많은 이들은 포스트모던의 성공 사례로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례적인 성공은 그녀의 탁월한 예술적 환경에 힘입은 바 크겠으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산’이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기인한 분열과 해체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유일한 창작집인 『딕테』는 미술 작품 못지않게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된 텍스트를 이루는 영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조합한 조어들, 라틴어, 그리고 주로 독립된 이미지로 제시되는 한글과 한자(예를 들면, 첫 장에 등장하는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라는 낙서, 텍스트라기보다는 이미지로서 삽입되어 있는 ‘男 女’라는 붓글씨체와 ‘太極, 四象, 八卦……’ 등) 등 다중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와 기호, 이미지를 통해 형식적으로 무국적성, 탈장르성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이 천착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 즉 ‘나’의 존재와 언어의 뿌리에 대한 탐색이다.
딕테는 프랑스어의 dictée에서 나온 말로(출판 과정에서 dictee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어의 dictation, 즉 받아쓰기 혹은 구술을 의미한다. 즉 이 책 전체가 일종의 ‘받아쓰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첫 장에 들어 있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구절을 보자.
“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 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따옴표 닫을 것11)
위의 텍스트는 프랑스어와 함께 영어로 쓰여 있는데, 받아쓰기로 보자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구절이 작품 전체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즉, “period, quotation mark, comma” 등으로 상징되는 문장 부호의 생략을 내포하는 받아쓰기의 관습과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혹은 더 나아가 언어의 문법 체계로 상징되는 타자의 완강한 규율과 체계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차학경의 전략은, 완전히 전복된 형태로 나타난다. 즉, 받아쓰되, 또 이를 통하여 타자를 수용하고 ‘전달’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되, 자기식의 받아쓰기를 통해 자신이라는 추출물을 보겠다는 것. 타자들의 언어와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만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매개를 통해 하나의 문장 부호로 상징되는 입법자의 언어를 점검하고 장애를 일으키는 일종의 ‘경계의 표시’가 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녀는 그 무수히 들끓는 타자들의 언어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에 걸러지는 순수한 결정체를 찾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 스스로 택한 전략,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라는 삼중 언어의 의도적인 구사, 그리고 분열 의식에의 자기 방치는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그녀의 ‘말하고자 하는 고통’은 웅얼거림으로 표출된다. 분명하게 발성되지 않는 이 웅얼거림은 이방인, 그것의 표식이기도 한 동시에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또한 말하는 고통 그 자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웅얼거림(murmur)’이야말로 이산의 체험, 그것을 상징하는 ‘디아스포라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학경의 『딕테』는 이러한 이산의 고통을 타자의 언어로 ‘받아쓰기’하면서 분류되지(identify) 않는 한 인간 존재를, 분류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혼종성을 통해 형상화한 탁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노라 옥자 켈러(Nora Okja Keller, 1966-)의 첫 번째 소설 『종군위안부(Comfort Woman)』(1997)는 출간되자마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전미도서상(1998)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놀라운 데뷔, 시적이고 잊혀지지 않는 소설”, “엄마와 딸의 유대와 열정에 대한 강력한 책”이라는 비평적 찬사를 보냈고, 이러한 매스컴의 조명은 켈러를 스타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고, 미국 대중으로 하여금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했다.
노라 옥자 켈러의 소설은 주로 아시아계 미국 작가의 계보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지만, 위 리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녀의 문학적 성취는 ‘주제’나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종적, 민족적 배려와 무관하게 그녀의 영어는 ‘위안부’라는 낯설고 불편한 주제로 미국 사회와 문단을 강타했고, 유사한 소재를 담고 있는 이창래의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와 더불어 비교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라 옥자 켈러의 소설에는 민족·국가적 자취와 흔적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녀, 굿, 삼신할미’ 같은 것이 비록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할지라도, 샤머니즘을 비롯한 한국 전통이 이 소설의 주제인 ‘위안부’를 더욱 섬뜩하고 기괴하고 강력하게 의미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노라 옥자 켈러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줄곧 하와이에서 지내며 하와이대학에서 심리학과 영문학을 마친 켈러는 호눌룰루에서 주로 기자와 영어 교사로 일했는데, 1993년 하와이대학에서 우연히 위안부 출신 ‘황금자’ 할머니의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을까?”라는 놀라움과 충격에 사로잡혀 작가인 친구에게 소설로 써보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국인인 켈러에게 써보라고 권했고, 그녀는 짧은 단편으로 시작하여 이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종군위안부’보다는 차라리 ‘위안부(Comfort Woman)’라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종군위안부』12)의 주인공은 브레들리 여사와 딸 베카이다. 브레들리 여사의 본명은 김순효로 압록강변 가난한 집의 넷째 딸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큰언니의 결혼 지참금 마련을 위해 12세에 일본군에 팔려 간다. 둘째, 셋째 언니가 평양의 공장을 찾아 나서는 등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속임수에 의해 팔려 간 김순효의 사연은 숱한 위안부 서사의 전형을 대변한다. 12세의 어린 그녀는 ‘레크리에션 센터’라 불리는 위안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결국 ‘아키코 41’이라는 위안부로 전락한다. 그녀는 이 위안소에서 ‘인덕’이라는 이전 아키코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한다. 그렇게 죽은 인덕을 대신하게 된 순효는 2년 동안 군인들의 성 노리개로 고통받다가 아이를 배고, 마취제도 없이 아이를 낙태하게 된다. 그날 밤 순효는 피가 흠뻑 묻은 누더기를 허벅지에 끼고 막사를 빠져나와 도망치게 되고, 선교사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평양의 선교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해방 뒤 선교원의 목사와 결혼, 미국으로 가게 되고 20년 뒤에 ‘베카’라는 딸을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아키코(순효)’는 삼신 할머니와 만신 아지매에게 제사를 지내고, 죽은 혼령을 불러 위로하는 치유사로 등장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소설에서 구원과 애도는 ‘아키코’를 향해 있으며 그것을 해내는 이는 딸 ‘베카’이다. 소설의 액자를 이루는 것은 딸 베카가 맞닥뜨린 ‘엄마’의 죽음이다. 베카는 엄마가 남긴 유품을 통해 과거 그녀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들려 미쳐 있던 엄마의 생애를 이해하게 된다. ‘말하지 못하고’ 맨 밑바닥에서 죽어간 이 위안부들의 영혼을 위해, 베카는 기꺼이 ‘바리공주’가 되어 자신의 엄마와 여성들을 지옥에서 구출해 낸다. 저러한 노래를 통한 ‘초혼’에 의해 위안부들의 영혼을 세상에 불러내고 진심으로 그녀들에게 사죄하고 애도하는 것, 그렇게 떠도는 영혼을 좋은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 소설은 그러한 의미에서 일종의 씻김굿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는 남성/여성, 제국/식민, 일본-미국/한국, 기독교/샤머니즘, 산 자/죽은 자 등의 대립항들이 심층 구조로 들어 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한국의 미군 기지촌을 다룬 『여우사냥(Fox Girl)』에서 변주된다. 이러한 대립 항에서 남성과 제국, 일본이 무참히 살해한 여성과 그녀들의 혼을 진정으로 ‘위무’하고 구원하는 것은 샤머니즘과 망자의 세계이다. 노라 옥자 켈러의 이 낯선 구원 서사가 미국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힘은 이 애도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옥에서 새어 나오는 그녀들의 비명일 것이다.
2) 외국 디아스포라 이론가: 프란츠 파농
탈식민주의 대표적인 이론가 프란츠 파농의 고국은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섬인 ‘마르티니크’이다. 인구 30만이 조금 넘는 마르티니크는 서인도 제도의 다른 섬들이 그렇듯 제국 열강의 점령지로 복속되어 1635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현재도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으로 남아 있다. 1925년 출생한 파농은 서인도 제도로 끌려온 서부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으로 프랑스를 흉내 낸 ‘포르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크리올(creole)’13)과 프랑스어를 쓰면서 자랐다. 프랑스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알제리로 건너가 정신분석의로 활동한다. 의사를 그만두고 알제리 독립운동에 투신한 파농은 1961년 백혈병으로 숨을 거둔다. 스물일곱에 쓴 그의 처녀작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현대 아프리카 저작 중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포스트콜로니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파농은 1952년 리옹의 학창 시절에 알게 된 프랑스 여자 마리 조셉 뒤블레와 결혼한다.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일종의 정신분석학적 임상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 그는 안틸레스(Antilles, 서인도 제도의 섬) 흑인들, 즉 프랑스 식민지령의 흑인 정신 병리를 탐구하는데, 그 결과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파농에 의하면 안틸레스 흑인들은 프랑스어 구사 능력에 따라 백인화의 정도를 평가받는데, 중산층은 하인에게 말할 때만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크리올을 사용하지 않는다. 표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프랑스에서는 ‘교과서처럼 말한다’고 놀리는 반면, 마르티니크에서는 “저 친구 좀 봐, 거의 백인에 가깝게 말하는데”라고 부러워한다.
둘째, 파농은 백인 남성과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유색인 여성이 등장하는 두 권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흑백의 멜로드라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녀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어 내려고 하는 백인성”은 곧 흑인이라는 비존재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그리고 유럽 땅에 발을 디딘 흑인 남성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백인 여성과의 성교에 대한 집착은 백인 여성들을 상대로 그들의 식욕을 채우려는 일종의 교만한 복수심에 다름 아니라고.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그럴 경우 거기에는 자동적으로 낭만적인 관점이 개입된다. 백인 여성과 사귀는 남성 흑인의 경우, ‘감정적인 자기 포기’ ‘포기 신경증 환자’인 경우가 많다.
셋째, ‘흑인’을 둘러싼 관념은 성적 정력, 운동선수 등으로 상징되는 ‘원시성’, ‘야만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흑인 공포증은 흑인을 생물학적 존재, 생식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흑인 정신병리학을 연구하면서 파농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안틸레스 흑인의 의존성과 콤플렉스는 백인의 노예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흑인의 타자성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다. 마다가스카르 항에 도착한 백인들은 한량없는 상처를 가져왔다.” 더불어 파농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이성에 대한 호소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르 로베르에 자리 잡은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투쟁’뿐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선발대가 쓰러진 자리까지만 열릴 것이다.” 파농이 의사직을 그만두고 ‘폭력론’을 앞세워 알제리 독립 투쟁에 가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의 저서는 오래전에 출간되었지만, 그가 남긴 실존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탄자니아의 ‘백색증’을 둘러싼 살해 사건 등이 파농 분석의 실증적 예가 될 수 있고, 수단의 출신 작가 타예프 살리흐가 쓴 『북으로 가는 계절』(1966)에 등장하는 백인 여성 킬러의 이야기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의 영어 강박증, 서구형 미인 등도 모두 이러한 분석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보편적 차원의 인권 옹호나 평등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누구나 동의하는 이념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나의 상황’에서 물어야만 그것은 진정한 물음일 수 있다.
5. 나오며
디아스포라 문학이 지니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들 문학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노스탤지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에 공통되게 드리워진 그들의 ‘이중 정체성’은 끊임없이 ‘온전한’ 자아로서 살아갈 수 있는 조국과 고향을 염원하게 만들다. 그러나 그들이 작품을 통해 그리는 ‘고향’은 실체로서의, ‘현실적인 조국’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꿈꾸는 ‘차별과 고통이 없는 조국’이라는 점에서 ‘상상된 조국’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세계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영원한 노스탤지어와 ‘이방인’ 의식에 의해서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문학’이 서구 중심의 코드화된 ‘정전’이 아니라, 세계와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보편성’에 바탕한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그 의식은 코스모폴리탄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코스모폴리탄은 가라타니 고진14)이 지적하듯,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산이라고는 하지만 디아스포라인들이 항상 떠도는 것은 아니다.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그’ 국가나 문화에 속해 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인들의 반(半)정체성과 노스탤지어는 ‘그’ 국가나 문화를 ‘괄호’에 넣을 수 있게 한다. 즉 그들의 이방인 의식은 스스로를 보편을 ‘추구’하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동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아니라 소수자로서, ‘타자’로서 발언할 수밖에 없는 그들 디아스포라 ‘개인’들은, 따라서 칸트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진정으로 ‘공적’인 코스모폴리탄들이다.
각주
1)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 마티, 2021, 84쪽.
2)
같은 책, 26쪽.
3)
같은 책, 63쪽.
4)
같은 책, 108쪽.
5)
같은 책, 85-86쪽.
6)
같은 책, 213쪽.
7)
같은 책, 235쪽.
8)
정은경, 『디아스포라 문학』, 이룸, 2007, 8-9쪽.
9)
케반 케니, 최영석 옮김, 『디아스포라 이즈is』, 앨피, 2016, 162쪽.
10)
알제리는 1830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1954년부터 본격적인 독립 투쟁을 거쳐 1962년 독립했다.
11)
차학경, 김경년 옮김, 『딕테(DICTEE)』, 어문각, 2004, 11쪽.
12)
노라 옥자 켈러, 박은미 옮김, 『종군위안부』, 밀알출판사, 1997.
13)
크리올(creole)은 피진(서로 의사소통되지 않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인 등에 의하여 자연스레 형성된 언어)이 그 사용자들의 자손들을 통하여 모어화된 언어를 말한다.
14)
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옮김, 『윤리 21』, 사회평론, 2001,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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